사이먼 위원회 보고서
1930년, 사이먼 위원회(Simon Commission)의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이 보고서는 몽태규-첼름스포드 개혁 이후 인도 헌정 구조의 근본적인 개편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주(州) 단위의 이중 통치 체제(다이알키)를 폐지하고 책임정부를 수립해야 한다.
- 인도 전역을 아우르는 연방정부를 수립해야 한다.
- 고등법원을 인도 정부 관할 하에 두어야 한다.
- 소수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주지사와 총독에게 특별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 군대의 인도화를 추진해야 한다.
- 버마를 인도로부터 분리하고, 신드와 오리사를 새로운 주로 승인해야 한다.
- 10년마다 반복해 온 인도 헌정 발전 검토 절차를 폐지하고, 스스로 진화·발전하는 유연한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존 사이먼 경은 공동체별 선거제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이 제도가 정작 그것으로 해결하려던 병폐를 오히려 양산하는 역겨운 시스템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몽태규-첼름스포드 개혁 때와 마찬가지로, 사이먼 위원회 역시 국민회의와 무슬림 연맹 간 합의에 담긴 공동체적 요소를 수용하여 무슬림을 위한 별도 대표제, 즉 중앙 입법의회와 주 입법부에서 무슬림에게 의석을 따로 배정하는 방식을 받아들였다.
사이먼 위원회 보고서는 미래 인도 연방의 하원(오늘날 로크 사바에 해당) 의석을 250석으로 제안했는데, 그중 150석(60%)은 비무슬림에게, 100석(40%)은 무슬림에게 배정할 것을 골자로 했다.
무슬림 별도 국가 분리에 대한 반대
진나의 공동체주의적 요구는 네루 위원회에 제출된 '14개 항목 요구서'라는 형태로 표면화되었다. 국민회의는 이 요구를 거부했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진나에 대한 공개적인 반대 움직임이 뚜렷하지 않았다. 1930년 11월 제1차 원탁 회의가 개최될 예정이었기에, 힌두 마하사바의 권한대행 총재였던 시브람 문제(Shivram Munje) 박사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헌법 개정과 관련해 인도 정부에 다음과 같은 제안을 제시했다.
- 모든 공동체는 모든 주에서 동등하게 선거권을 행사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 모든 입법기관 선거는 공동선거제로 실시해야 한다.
- 어떤 종교나 교파를 기준으로 한 의석 배정도 있어서는 안 된다.
- 어느 주에서든 의석 배정이 다수 공동체에게 유리하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 필요하다면 인도의 주들은 실력을 기준으로 대표성을 가져야 한다.
- 종교적 다수·소수를 근거로 주를 신설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인도는 무슬림 인도, 시크 인도, 기독교 인도, 힌두 인도로 분열되어 국민통합의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 공직 임용에서는 종교나 카스트가 아니라 경쟁과 실력을 우선해야 한다.
- 중앙 및 주 내각에서 무슬림 장관의 수를 고정해서는 안 되며, 공동 대표를 통해 참여해야 한다.
- 중앙정부는 남은 권한을 주에 넘겨서는 안 된다. 강력한 중앙정부가 필요하다.
- 모든 교파는 사상·예배·표현·교육·단체 설립의 자유를 포함한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런던 원탁 회의에서 드러난 영국 정부의 실패
1930년 11월 12일, 영국 정부는 사이먼 위원회 보고서에서 제안한 '연방 인도'의 건설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런던에서 제1차 원탁 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국민회의는 이 회의를 보이콧했다. 회의장에서는 무함마드 알리 지나와 빔라오 암베드카르 박사 사이의 격한 대립이 벌어졌고, 결국 인도 연방정부 구성에 대한 어떠한 결론도 도출되지 못했다.
제2차 원탁 회의는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렸다. 국민회의를 대표해 참석한 사람은 간디 단 한 사람뿐이었으나, 이 회의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이어 1932년 11월 17일에는 제3차 원탁 회의가 런던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당시 국민회의는 불법 단체로 규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회의에 참여할 수 없었다. 세 차례의 회의 모두 뚜렷한 성과 없이 끝나면서, 인도 헌정의 미래는 여전히 미궁 속에 놓이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