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리(Huari, Wari로도 표기)는 오늘날 페루 중부 고원 지대, 아야쿠초(Ayacucho) 인근에 자리한 대표적인 고고학 유적지입니다. 이 유적지는 중기 지평기(Middle Horizon, 약 서기 600~1000년)에 안데스 중·북부 고원에서 번성했던 위대한 문명에 그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티와나쿠와 깊은 연관
화리의 예술 양식은 볼리비아 북서부 티티카카 호수에 위치한 거대 유적지 티와나쿠(Tiwanaku)의 기념물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학자들은 화리가 중기 지평기 전반부에 페루 고원과 해안 지역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던 군사적 성격의 제국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영향력은 남부 해안의 후기 나스카(Ica) 문화와 중부 해안의 파차카막(Pachacamac) 유적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문의 신'과 도자기 예술
화리 도자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장식 모티프는 문의 신(Doorway God)입니다. 이는 정면을 향해 사각형 얼굴과 빛을 발하는 머리 장식을 한 채 묘사되는 의인화된 형상으로, 흥미롭게도 티와나쿠에서도 동일한 모티프가 발견됩니다. 이는 두 문화 간의 긴밀한 교류를 보여주는 증거로 평가받습니다.
건축과 공예 기술의 수준
화리 건축은 거대한 석재 축조 구획이 특징입니다. 신전의 기념비적 조각은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며, 정교한 헤어스타일을 한 남성과 여성 인물상이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크기 1~10cm에 이르는 청록색 미니어처 조각들도 다수 출토되었습니다.
화리인의 뛰어난 금속 가공 기술은 황금 가면과 의인화된 고양이 형상의 구리 조각상을 통해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부유층은 석조 무덤에 안치되었는데, 이는 계급 사회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유적지의 역사
화리 유적지에 처음 사람들이 정착한 시기는 초기 중간기(Early Intermediate Period, 약 기원전 200년~서기 600년)에 해당하는 와르파(Huarpa) 단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나 유적지가 인상적인 도시 규모로 확장된 것은 티와나쿠의 영향을 받은 중기 지평기의 화리 단계였으며, 바로 이 시기에 화리의 지도자들은 제국 확장의 길에 나섰습니다. 이후 화리는 잉카 제국 이전 안데스 최대의 제국 중심지로 성장하며 후대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