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펀트(Punt): 고대 이집트가 찾던 홍해 연안의 전설의 땅

펀트(Punt)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지리학에서 홍해 남부 연안과 그에 인접한 아덴만 연안을 가리키던 역사적 지역으로, 오늘날의 에티오피아 및 지부티 해안에 해당합니다.

전설과 우화 속의 땅

고대인들에게 펀트는 전설과 우화의 땅이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 헤로도토스가 저술한 『역사』 2권에는 이집트 파라오 세소스트리스(Sesostris)가 함대를 이끌고 에리트라해(홍해와 인접 해역) 연안을 따라 정복 사업을 벌인 뒤, 나아가 "아시아 대륙 전역을 횡단했다"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러한 서사는 펀트를 둘러싼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층 짙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료로 확인된 이집트의 원정

역사적으로 검증된 원정 중 하나는 기원전 2200년경 이집트 파라오 페피 2세 네펠카레(Pepi II Neferkare) 통치 시기에 펀트로 파견된 탐험이며, 제11왕조(기원전 2081~1938년) 시기에도 펀트 방문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하트셉수트(Hatshepsut) 여왕(재위 약 기원전 1472~1458년)은 직접 펀트를 방문했고, 그 원정의 상세한 기록을 테베 근교 데르 엘바하리(Deir el-Bahri)에 세운 자신의 신전 벽면에 남겼습니다. 이후 '신성한 땅'이라 불린 펀트로의 항해는 점차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한편 기원전 716~656년에 남쪽에서 들어와 이집트를 다스린 소위 '에티오피아 왕조', 즉 제25왕조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사이의 더욱 긴밀한 관계를 입증하는 근거로 종종 인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실제로는 누비아(쿠시) 출신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라는 명칭의 유래

'에티오피아(Ethiopia)'라는 이름은 본래 고대 그리스 작가들이 피부색이 비교적 어두운 아프리카인들을 일컫기 위해 처음 사용한 용어입니다. 그리스인들에게 이 흑인 주민들의 고향이라는 개념은 때로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포함하기도 했고, 때로는 오늘날의 에티오피아 지역만을 가리키기도 하는 등 그 범위가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 시대의 무역로 개척과 탐험

기원전 4세기 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고대 이집트의 왕위에 오르면서 비로소 펀트로 향하는 무역로가 그리스인들에게 열렸습니다. 이 시기에 항해 안내서가 편찬되었고, 해안을 따라 상아·가죽·타조 깃털, 심지어 살아 있는 코끼리까지 보관하는 저장소들이 세워졌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재위 기원전 285~246년) 통치 시기에 이집트에서 세워진 뒤 피톤(Pithon)에서 발견된 상형문자 비석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에리트라해 연안에 프톨레마이스 테론(Ptolemais Theron)이라는 도시를 건설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후 에라토스테네스는 에티오피아의 것으로 추정되는 타나 호(그리스인들은 프세보 또는 콜로에라고 불렀음)와 그 안에 있는 섬 다크(Dak)를 언급했습니다. 기원전 2세기의 그리스 역사가이자 지리학자인 아가타르키데스는 펀트 동굴 거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관찰하여 기술했으며, 기원전 100년경의 그리스 지리학자 아르테미도로스는 해안선의 형태를 묘사하면서 여러 항구와 단나킬 사막 지대를 특정지었고, 그곳에 호수들이 존재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호수들은 오늘날 지부티의 아살 호와 에티오피아의 아우사 호로 추정됩니다.

그보다 더 안쪽에는 유향을 생산하는 지역이 있었고, 그 너머로는 하러르 지구와 아와시 계곡(모두 현재의 에티오피아 영토)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당시 누구도 이 나라의 내륙에 대해 실제로 알지 못했습니다. 아스타보라스(현 테케제 강) 같은 큰 강과 프세보 같은 호수 외에는 추측만이 존재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