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Renaissance)는 15~16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일어난 위대한 사회·정치·예술 현상으로, 중세의 낡은 규범을 버리고 삶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받아들인 문화적 변혁을 가리킵니다.
이 운동에 '르네상스', 즉 '재생(再生)'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인류가 중세 시대 내내 정체된 후진기에 머물러 있다고 믿었고, 가장 발전된 문명이었던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화를 되살려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15~16세기 유럽에서는 그리스·라틴 정신이 지배적인 흐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르네상스가 일어난 원인
르네상스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있습니다.
- 동방·서방과의 새로운 교류: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유럽과 동방 사이에 상업적·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졌고, 대항해시대의 신대륙 발견은 서방과도 새로운 연결을 열었습니다.
- 그리스 학자들의 이주: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많은 그리스 예술가와 학자들이 고전 문화를 품고 유럽으로 피신했습니다.
- 인쇄술의 발명: 활판 인쇄술의 등장으로 지식과 문화가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넓게 확산되었습니다.
- 귀족들의 후원: 부유한 영주들이 예술가와 작가를 적극적으로 보호·후원하여 창작 활동이 융성할 수 있었습니다.
르네상스의 선구자들
르네상스는 중세 말기부터 그 싹이 트기 시작했으며, 이 위대한 운동을 앞서 이끈 예술가와 작가들을 '선구자'라고 부릅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빛나는 선구자 네 사람은 단테 알리기에리,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조반니 보카치오, 조토입니다.
단테 알리기에리 (1265–1322)
단테는 문학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작가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그의 대표작 『코메디아』는 훗날 사람들이 『신곡(The Divine Comedy)』이라 부른 방대한 환상적 서사시로, 지옥(34곡), 연옥(33곡), 천국(33곡)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이 명작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당대 이탈리아어를 문학의 언어로 완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 실존 인물들을 지옥의 각 층에 배치하는 파격적인 구성으로 당대의 풍습과 권력자들을 신랄하게 풍자했습니다.
-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마치 꿈이 아니라 실제로 겪은 듯한 느낌을 주며,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줍니다.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1304–1374)
페트라르카는 로마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월계관을 수여받은 영광의 시인입니다. 그는 '라우라(Laura de Noves)'라는 여성에게서 영감을 얻어 수많은 시를 남겼으며, 14행으로 이루어지고 4행시 2연과 3행시 2연으로 구성되는 아름다운 시 형식 소네트의 창시자로 여겨집니다. 이 형식은 오늘날까지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서사시 『아프리카』를 저술했습니다.
조반니 보카치오 (1313–1375)
보카치오는 르네상스 피렌체가 배출한 천재적 작가입니다. 그의 경쾌하고 밝은 문체는 자연스러움과 건전한 풍자 비평의 모범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습니다. 대표작 『데카메론』은 페스트가 도시를 휩쓸던 시기, 피렌체 근교로 피신한 귀부인과 청년들이 나눈 유쾌한 이야기 모음집입니다.
조토 (1266–1336)
조토는 중세 말기를 살았던 가장 뛰어난 회화의 거장입니다. 인물 표현의 자연스러움과 화려하고 풍부한 색채 덕분에 그는 진정한 회화의 대가로 추앙받습니다. 아시시 성당의 프레스코화와 파도바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담은 프레스코화는 그의 이름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르네상스의 정신, 인문주의
르네상스의 철학적 기반은 인문주의(Humanism)였습니다. 이는 유럽 전역을 뒤흔든 거대한 개혁 운동이었습니다. 16세기 작가들은 중세의 예술과 과학이 비인간적이고 인위적인 성격으로 기울었다고 비판했습니다.
- 철학은 스콜라주의에 빠져 경직되고 변하지 않는 추론 규칙에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 예술은 그리스·로마 시절의 우아함을 잃고, 성당과 성인상 제작만을 목적으로 하는 신비주의적 경향에 갇혀 있었습니다.
- 과학은 연금술사의 실험실에서 정체된 상태였고, 교회 학자들은 가톨릭 교리에 반하는 어떤 진리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화는 '인간 중심'으로 되돌아가야 했고, 그 방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철학의 해방: 스콜라주의에서 벗어나 정신이 모든 사유의 길을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도록 합니다.
- 예술의 해방: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더욱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예술로 만듭니다.
- 과학의 해방: 종교적 교리에 반하더라도 모든 현상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문주의였으며, 이를 전파한 지식인들을 '인문주의자(Humanist)'라고 불렀습니다. 수많은 인문주의자 가운데서도 특히 두드러진 인물이 바로 에라스무스(Erasmus of Rotterdam, 1469–1536)입니다. 그는 풍자적 통찰과 폭넓은 학식으로 유럽 전역에 인문주의 정신을 널리 퍼뜨린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