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제3제국의 올림픽: 외국 선수들이 목격한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 독일의 실상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20세기 스포츠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대회인 동시에, 퓌러가 능숙하게 활용한 탁월한 선전 도구였습니다.

제3제국의 수도 베를린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불과 3년 전인 1936년 8월 1일부터 16일까지 개최되었습니다. 이 대회에는 베를린 역사상 가장 많은 외국인이 방문했습니다. 독일은 불가리아 차르 보리스 3세, 이탈리아 왕세자 움베르토, 스웨덴 왕자 구스타프 아돌프 등 저명한 인사들을 맞이했으며, 헤르만 괴링, 요제프 괴벨스,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등 히틀러의 핵심 측근들이 매일 화려한 환영 행사를 주관했습니다.

개막식 직후 미국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 에이버리 브런디지는 베를린 올림픽을 크게 찬양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이래로 독일처럼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표현해낸 국가는 없었다."

제3제국의 올림픽: 외국 선수들이 목격한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 독일의 실상

베를린 올림픽에서 사용된 종에는 독일 독수리와 함께 올림픽 상징이 새겨져 있고, "세계 청소년에게 부른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미국 선수들의 감탄

미국 선수단은 호화로운 여객선 SS '맨해튼'호를 타고 올림픽에 도착했습니다. 항구에 몰려든 환호하는 독일인들은 미국 손님들을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한 수구 선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본 적이 없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 장면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미국 선수들은 베를린 곳곳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머무는 동안 수도 시민들이 대거 그들을 따라다녔습니다. 허버트 와일드먼은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군중은 우리를 한 걸음도 놓치지 않고 따라오며 우리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았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우리가 웃으면 함께 웃어주었다."

올림픽 선수촌

선수들은 남자 국가대표팀 전원을 위해 마련된 여가 시설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핀란드 선수들은 직접 사우나를 지었고, 식당에서는 출신이나 종교와 관계없이 모든 참가자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는 풍성하고 다양한 메뉴가 제공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질서 정연했고 완벽하게 깨끗했습니다.
그러나 숙박 공간에서 선수들은 훨씬 열악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딱딱한 침대와 소박한 식사라는 스파르타적인 조건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제3제국의 올림픽: 외국 선수들이 목격한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 독일의 실상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1936)

독일을 가로지르는 길

나치는 외국 방문객들이 자국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조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선수들은 나치 독일의 진실한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올림픽의 조직력에 감탄했던 허버트 와일드먼은 몇 살 된 어린아이들이 더럽고 차가운 물에서 놀고 있는 것을 목격했고, 선수들을 태운 버스 지붕에 설치된 난간은 기관총을 장착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과, 머리 위를 날던 무해한 글라이더가 얼마나 쉽게 군용기로 개조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기로는, [글라이더의] 기수를 분리하고 엔진을 부착하기만 하면 전투기가 된다고 했다."

제3제국을 여행하는 예리한 관찰자에게는 실제 상황에 대한 중요한 단서도 곳곳에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대규모 제복 집단과 마주쳤고, 숲에는 무장한 젊은이들이 배회했습니다. 미국 체조 선수 케네스 그리핀은 그것이 "독일인들이 정말로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불길한 인상"을 줬다고 증언했습니다.

베를린의 흑인 챔피언들

베를린에서 금메달 4개를 획득한 미국 흑인 육상 선수 제시 오언스는 아돌프 히틀러의 축하를 받지 못했지만, 독일 팬들이 오언스를 열렬히 응원하며 큰 반전을 선보였습니다. 800m에서 금메달을 딴 또 다른 흑인 올림피언 존 유이 우드러프도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어떤 차별도 겪지 않았으며, 주변 팬들이 사인을 요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드러프는 수년 후 미국의 흑인 차별 정책을 비판하며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 나는 역겨운 나치를 만난 적이 없다. 친절한 독일인들만 만났다. 그리고 나는 버스 뒷자리에 타야 할 필요도 없었다."

유대계 미국인 마티 글릭먼도 비슷한 맥락에서 베를린에서의 경험을 언급했습니다.

"예선에 출전하기로 했던 날을 제외하고는 반유대주의적인 것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그것이 내가 경험한 처음이자 유일한 반유대주의였다. 그리고 그것은 현지인이 아니라 미국 코치들에게서 경험한 것이었다."

제3제국의 올림픽: 외국 선수들이 목격한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 독일의 실상

제시 오언스, 세계 신기록을 여러 차례 세운 미국 육상 선수이자
베를린 올림픽 4관왕

불이 꺼진 후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베를린 올림픽 폐막 후 귀국했지만, 독일에 더 오래 머물기로 결정한 선수들은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한 명인 리투아니아계 미국 야구 선수 프랭크 J. 루빈은 유대인 식당에는 다윗의 별 표식이 붙어야 하고, 유대인은 공공 수영장 이용이 금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델라웨어 개혁 성공회 주교 필립 쿡은 미국으로 돌아온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일은 미국 관광객에게 훌륭한 곳이다. 그들의 관습을 따르고 시키는 대로 하면 최고의 대접을 받을 것이다."

제3제국의 올림픽: 외국 선수들이 목격한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 독일의 실상

퓌러의 성공

올림픽이 끝난 후 나치 독일은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아돌프 히틀러는 성공적으로 치러낸 선전 캠페인에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 언론은 막 끝난 스포츠 축제의 영향으로 제3제국의 정책이 변화하고 더 나은 내일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담아 보도했습니다. 영국 이브닝 포스트는 이렇게 썼습니다.

"독일인들이 손님을 매료시키려는 의도를 실현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3년 동안 외국인을 경계하도록 교육받은 현지인들에게 손님들이 남긴 인상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처음에는 정중하지만 거리감 있게 맞이하던 그들이, 첫 번째 얼음장이 깨진 후에는 손님들에게 큰 호의만을 보냈다."

참고 문헌

  1. J. Boyd, 『휴가는 제3제국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 본 파시즘의 탄생』, Prószyński i S-ka, 2019.
  2. New York Times, 1936년 7월 25일
  3. Herbert A. Wildman, G.A. Hodak 인터뷰, 1987년 10월
  4. Kenneth P. Griffin, G.A. Hodak 인터뷰, 1988년 8월
  5. San Francisco Chronicle, 1984년 6월 12일
  6. Marty Glickman 인터뷰, 1966년
  7. Brooklyn Daily Eagle, 1936년 9월 15일
  8. New York Times, 1936년 9월 16일
  9. Evening Post, vol. CXXII, ed. 34, 1936년 8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