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안료인 울트라마린(ultramarine)이 11세기에 살았던 독일 여성의 치석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이 값비싼 물질이 그녀의 입안에 들어갔을까요? 의문을 품은 연구진은 실험에 나섰습니다.
천 년 전 금보다 귀한 파란색
청금석(lapis lazuli)은 천 년 전에는 금보다 더 귀하게 여겨지던 암석이었습니다. 이 암석에서 얻은 선명한 파란색 안료 '울트라마린'은 세밀화가들이 가장 귀중한 책 속 그림에 색을 입힐 때만 아껴 썼습니다. 그런데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가 주도한 과학자들이 당시 식생활을 연구하기 위해 중세 유골의 치석을 조사하던 중, 뜻밖에도 울트라마린 입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고가의 안료는 어떻게 한 여성의 입안까지 들어간 것일까요?
잊혀진 여성 필사가들
이 여성의 유골은 독일 달하임(Dalheim)의 수도원 폐허 인근에서 발굴되었으며, 997년에서 1162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녀는 폭력으로 살해당하지 않았고, 무거운 육체노동에 종사하지도 않았습니다. 45세에서 60세 사이에 세상을 떠난 이 여성의 뼈에는 마모 흔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대체 어떤 일을 했던 걸까요?
중세의 수사들이 책을 베껴 쓰고 아름다운 세밀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들의 이름은 대부분 전해지지 않습니다. 더욱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여성들 역시 이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입니다. 12세기 이전에 제작된 책 중 여성 제작자의 손길이 닿은 것으로 확인된 경우는 지금까지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연구진이 여성의 입에서 안료를 발견하고 처음 느꼈던 놀라움은 바로 이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수도자의 작업이었던 필사와 채색
필사본이 주로 남성 성직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통념은 사실 매우 19세기적인 발상이라고 미하 리프랑(Micha Leeflang)은 지적합니다. 카타리네콘벤트 박물관의 큐레이터이자 세밀화 연구자인 그녀는 이번 연구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중세 수도원 공동체에서는 성경 문헌을 갖추는 일이 중요했고, 초기에는 자체 도서관을 구축하기 위해 견본 책들을 베끼곤 했습니다. 글쓰기와 책 제작은 하나님을 기리는 명상적 활동으로 여겨졌으며, 이는 남자 수도원과 여자 수도원 모두에서 이루어졌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현재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책이 여성의 손으로 만들어졌어야 한다는 간접적인 증거이기도 합니다.
최근 연구들은 특히 독일에서 수녀들이 문자를 읽고 쓸 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책 제작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그들의 작업 흔적은 8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이번 연구는 여성 성직자들이 책 제작에 종사했다는 기존의 그림을 한층 강화할 뿐 아니라, 독일에서 여성이 울트라마린을 사용한 가장 이른 시기의 증거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마도 뛰어난 실력자였을 것입니다. 귀한 울트라마린을 다룰 수 있었던 이는 단순한 그림 그리는 이가 아니라 진정한 명장이었으니까요.
치석 속 파란 입자를 밝힌 실험
치석 속 작은 파란 입자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여러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먼저 초음파 처리(ultrasonication) 기술로 치석에서 파란 알갱이를 분리해냈습니다. 이는 조사 대상 입자가 들어 있는 용액에 음파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입자를 화학적으로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치석을 진동시켜 파란 알갱이를 떼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연구진은 다양한 분석 기법으로 파란 알갱이를 정밀 조사해 정확한 화학 조성을 규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특성을 중세에 실제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여러 파란색 안료와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알갱이가 청금석의 주성분이며 강렬한 파란색을 내는 광물인 라주라이트(lazurite)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그녀의 치석에는 실제로 울트라마린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안료가 입안에 들어간 경로
다음 질문은 작업 중 붓 끝을 습관적으로 핥는 행위 외에, 울트라마린 입자가 어떻게 그녀의 입안에 들어갔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안료 흔적은 앞니 뒤편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미세한 분진이 입안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해 청금석을 직접 갈아보는 실험도 시행했지만, 그 결과는 앞니 근처 치석에만 국한된 안료 흔적과는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리프랑은 "이 여성이 필사본 채색(illumination) 작업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가장 설드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안료가 워낙 귀했기 때문입니다. 색을 조제할 때는 물감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처리되었고, 그래서 이 작업은 흔히 한 사람이 전담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왜 수도원의 여러 수녀 중에서도 이 여성만이 치아에 울트라마린 흔적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설명해 줍니다.
그녀는 또한 "유골에서 마모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그녀는 육체노동을 거의 하지 않았을 것이며, 이는 채색 활동과 정확히 부합합니다. 안료 생산은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원료로 쓰인 (준)보석들을 막자사발에서 갈아야 했는데, 저도 한 번 직접 해본 적이 있는데 정말 격렬한 노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분쇄 과정에서 안료를 삼켰다는 추측은 저에게는 크게 설드력이 없어 보입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세밀화를 그린 여성들
채색 수녀가 살았던 시대의 책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기록을 통해 실제로 제작되었음은 분명합니다. 집중적으로 사용된 탓에 책들은 자주 교체되고 유실되곤 했습니다. 리프랑은 "현존하는 사본들에도 금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의 장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희 박물관 소장품 중에도 멋진 사본들이 몇 권 있는데, 베르눌푸스 코덱스(Bernulfus Codex)가 대표적입니다. 1050년경 독일 남부 로이헤나우에서 제작되었으며 아름다운 세밀화를 담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합니다. 이 코덱스의 제작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수사였을 수도 수녀였을 수도 있습니다.
13세기까지 수사와 수녀들은 세속 상류층을 위한 화려하게 장식된 책들도 제작했습니다. 리프랑은 "여성으로서 저는 여성이 세밀화 제작에 매우 적합하다고 믿습니다. 특히 수도원의 여성들은 강한 규율과 집중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필사본 채색에서 깊은 만족감을 얻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13세기부터는 수도원 밖에도 필사본 제작 공방이 생겨났고, 그곳에서도 여성들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리프랑은 "15세기 길드 장부를 보면 책 채색과 세밀화 작업에 종사하던 화가들 사이에도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라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