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큰 원숭이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다고 전해지며, 현지 주민들은 가끔 발자국을 발견하거나 목격담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위 '혐오스러운 눈사람(Abominable Snowman)', 즉 설인 예티의 정체는 사실 아시아곰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프로시딩스 오브 더 로열 소사이어티 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게재되었다.
히말라야에서 수집한 예티 표본 9점
전직 수의사이자 방송 진행자인 마크 에반스(Mark Evans)는 자신의 프로그램 『예티 오어 낫(Yeti or Not)』(애니멀 플래닛, 2016년)을 위해 히말라야 곳곳을 누비며 '무서운 눈사람'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의 증언과 단서를 수집했다. 그가 모은 것은 뼈 조각, 이빨, 털, 심지어 배설물까지 포함된 총 9점의 '예티 표본'이었다. 에반스는 이 표본들을 미국 뉴욕 버펄로대학교의 생물학자 샬럿 린드크비스트(Charlotte Lindqvist)에게 넘겼다.
개 한 점과 곰 여덟 점
린드크비스트는 '예티 표본'의 DNA를 분석한 끝에, 그중 한 점은 개에서 나온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머지는 아시아흑곰(목도리곰), 히말라야곰(이자벨곰), 티베트갈색곰의 조각이었다. 과학이 미확인 생물의 실체를 밝혀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세기 초 영국 과학자들은 '아프리카 유니콘'으로 불리던 동물의 정체가 오키피라고 주장한 바 있다.
영국의 유전학자 브라이언 사이크스(Bryan Sykes) 역시 앞선 2014년 예티로 추정되는 두 개의 표본을 조사해, 갈색곰과 북극곰 사이에서 태어난 교배종인 멸종된 북극곰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적 있다. 그러나 이 연구는 큰 비판을 받았다. 다른 과학자들이 연구 재현을 시도했을 때,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DNA 양이 부족하다는 판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린드크비스트가 더 정밀한 접근법을 택했다. 그녀는 9점의 '예티 표본' 외에도 히말라야 지역에서 채취한 다양한 곰의 표본 15건까지 함께 분석했다. 덕분에 여러 곰 종의 진화 계보도 함께 그려낼 수 있었다. 히말라야곰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서 '위급(Critically Endangered)' 등급으로, 티베트갈색곰은 '위기(Endangered)'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아시아흑곰은 '취약(Vulnerable)' 등급이다. 린드크비스트는 논문에서 이들 동물을 보호하려면 유전적 다양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빙하가 갈라놓은 종
분석 결과 티베트갈색곰은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갈색곰과 공통 조상을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흑곰과 히말라야곰의 조상은 약 66만 년 전에 다른 갈색곰 계통에서 갈라져 나왔다. 티베트갈색곰은 34만 년 전에야 북아메리카·유럽의 곰들과 갈길을 걷게 되었고, 히말라야곰 계통은 47만 5천 년 전에 다른 아시아흑곰들로부터 독립적인 진화 경로를 밟기 시작했다.
린드크비스트는 이러한 종분화가 당시 형성된 빙하의 영향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니아냐슝라 빙하기(Nyanyaxungla Ice Age)는 약 50만 년 전부터 30만 년 전 사이에 걸쳐 일어났는데, 히말라야곰과 티베트갈색곰의 분화 시기가 모두 이 기간에 해당한다. 빙하가 곰들의 서식지를 가르며 무리를 격리시켰고, 긴 세월의 고립 속에서 유전적 차이가 커져 비록 직선거리로는 그리 멀리 떨어져 살지 않음에도 별개의 종으로 분화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