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로 잉글랜드를 손에 넣은 정복왕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 역사 교과서에서는 위대한 정복자로 기억되지만, 당시 잉글랜드 사람들의 눈에는 결코 정당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겨진 이유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살펴봅니다.
1. 그는 침략자였습니다
윌리엄의 잉글랜드 왕위 계승 주장은 선대 국왕인 에드워드 참회왕(Edward the Confessor)의 먼 친척이라는 혈연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잉글랜드 출신의 에드거 애델링(Edgar the Ætheling)을 비롯해 더 정통성 있는 왕위 계승 후보들이 존재했습니다. 윌리엄은 협상이나 합법적 절차가 아닌 무력 침공을 선택했고,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고드윈슨(Harold Godwinson)을 격파함으로써 국민 대다수의 의사에 반하는 통치를 강요했습니다.
2. 그는 무자비한 정복자였습니다
잉글랜드에 대한 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해 윌리엄은 극도로 잔혹한 정복 작전을 펼쳤습니다. 여성과 아이들까지 포함해 수천 명의 색슨인을 학살하라고 명령했고, 저항하는 마을과 도시 전체를 불태웠습니다. 특히 북부 지방의 반란 이후 자행된 '북부 유린(Harrying of the North)'은 광활한 지역을 황폐화시켜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게 만든 대표적인 폭정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3. 그는 외래 통치 체제를 강요했습니다
윌리엄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앵글로색슨 방식의 통치 체제를 폐지하고 노르만 봉건제를 도입했습니다. 봉건제는 영주와 가신 간의 종속 관계를 기본 원칙으로 삼는 제도로, 노르만 귀족들에게 잉글랜드 백성을 지배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부여했습니다. 토지 대장인 둠즈데이 북(Domesday Book)을 통해 모든 토지와 재산을 조사하고 과세한 것 역시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4. 그는 잉글랜드의 언어와 문화를 억압했습니다
윌리엄은 노르만의 언어와 문화를 우대하는 한편, 기존의 잉글랜드어와 문화를 밀어냈습니다. 정부 기관, 법정, 학교에서는 프랑스어 사용이 장려되었고, 수백 년간 잉글랜드 상류층의 공용어는 프랑스어로 유지되었습니다. 또한 노르만식 교회와 성채가 곳곳에 세워지며 잉글랜드 고유의 건축과 문화 전통은 점차 주변으로 밀려났습니다.
5. 그는 불평등한 신분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윌리엄의 정복은 노르만인이 지배 계층이 되고 잉글랜드인이 피지배 계층이 되는 사회 구조를 낳았습니다. 거의 모든 토지와 요직이 노르만인에게 돌아갔고, 잉글랜드인은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기회에서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이러한 계층 간 격차는 단순한 통치 차원을 넘어 민족적 억압으로 느껴졌습니다.
결국 그는 '찬탈자'로 기억되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겹치면서 정복왕 윌리엄은 많은 잉글랜드 사람들에게 정당한 왕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침략자이자 정복자, 그리고 찬탈자로 여겨졌습니다. 윌리엄은 생전에 잉글랜드 백성들의 진심 어린 신뢰와 충성을 얻지 못했으며, 그의 통치 기간 내내 반란과 저항, 불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