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에 싸인: 대서양 횡단 비행의 초창기
프랑스가 호응을 얻지 못했던 해상 중계 기지 운영 방식을 마침내 포기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라테코에르 300 '크루아-듀-쉬드(남십자성)'호는 다카르에서 브라질 나탈까지 우편물을 실어 날랐다. 이 기체는 '아르상시엘(무지개)'을 개량해 완성한 유일한 기종으로, 그 뒤를 이어 블레리오 5190 '산투스-뒤몽'호와 육상 4발기 '상퇴르'호가 하늘에 올랐다.
남대서양, 위험과의 끝없는 싸움
속도는 프랑스가 앞섰고, 정시 운항은 독일이 앞섰다. 하지만 위험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었다. 예측 못한 고장, 거센 바람, 그리고 광활한 바다. 독일기 '토네이도'호가 행방불명되었고, 며칠 뒤인 1935년 2월에는 '시티 오브 부에노스아이레스'호마저 소식이 끊겼다. 그리고 그해 말, 안타깝게도 전설적 조종사 장 메르모즈가 탑승한 '크루아-듀-쉬드'호마저 남대서양 어딘가에서 자취를 감추고 만다.
잔혹할 정도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항공 우편 노선은 계속됐다. 그렇다면 북대서양은 어떠했을까? 물론 판돈은 훨씬 더 컸다.
북대서양이라는 더 험난한 도전
독일 역시 부유 기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는 낡은 화물선을 개조한 것으로, 선수와 선미에는 캐터펄트를, 선체 중앙에는 거대한 크레인을 갖춘 일종의 해상 공항이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블레리오가 바다 한가운데 인공섬을 영구적으로 설치하자는 파격적인 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팬 아메리칸 항공(Pan Am) 기술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던 찰스 린버그는 거대 비행정이 미래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1937년 7월 7일, 거대 비행정들이 대서양을 동시에 건너는 역사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미국의 클리퍼호는 뉴펀들랜드에서 아일랜드로, 영국의 캘레도니아호는 그 반대 방향으로 날아올랐으며, 두 기체 모두 우편 자루를 가득 실은 채였다. 프랑스도 뒤지지 않아 라테코에르제 거대 비행정 '리외테낭 드 베소 파리(해군중위 파리)'호를 건조해 1935년 12월부터 아조레스 제도를 경유하는 남부 항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거대 비행선의 시대
그러나 이러한 비행들은 아직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북대서양을 승객을 태우고 건넌 것은 오직 거대 비행선 힌덴부르크호뿐이었다. 이 비행선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미국 레이크허스트까지 논스톱으로 스무 차례를 오가며 다양한 항로를 시도했는데, 그중 하나는 그린란드까지 북쪽으로 크게 우회하는 코스였다.
유빙에 걸린 잔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이 북쪽 바다를 지날 때면 승객과 승무원들은 표류하는 유빙에 걸려 있는 지상 항공기의 잔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저마다 입술에 이름이 맴돌았다. 그것은 과연 뉑게세르의 비행기였을까? 샤를 뉑게세르와 프랑수아 콜리는 1927년 5월, 파리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최초의 무착륙 대서양 횡단에 도전했다가 '백색 새(L'Oiseau Blanc)'호와 함께 홀연히 사라진 인물들이다. 아니면 길을 열다가 수수께끼처럼 증발해 버린 또 다른 개척자들의 것일까? 지금까지도 그 잔해가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대서양의 안개 속에 묻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