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 글라이비츠 사건과 폴란드 침공

전쟁의 배경: 뮌헨 협정과 히틀러의 야망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직후인 1938년 9월 30일, 뮌헨 협정이 체결되면서 프랑스와 영국은 체코슬로바키아를 아돌프 히틀러의 손에 넘겨주었다. 윈스턴 처칠은 이 협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경고했다.

"그들은 평화를 얻기 위해 불명예를 감수했다. 그러나 그들이 맞이할 것은 불명예와 함께 찾아오는 전쟁이다!"

실제로 총성 한 번 울리지 않은 채 거둔 승리에 고무된 히틀러는 자신이 전능하다고 확신했다. 그로부터 6개월 후인 1939년 3월 15일, 하켄크로이츠 깃발이 프라하 상공에 게양되었고, 체코는 단 한 번의 저항도 없이 제국의 지배 아래 놓였다. 이제야 유럽 열강들은 다가오는 위협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1939년 9월 1일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 글라이비츠 사건과 폴란드 침공

주요 인물

  •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 하인리히 힘러
  • 아돌프 히틀러
  • 하인리히 뮐러
  • 알프레트 나우요크스
  • 요제프 스탈린

전쟁의 경과

히틀러가 단치히(베르사유 조약 이후 폴란드령이 된 옛 독일 자유도시)와 폴란드가 발트해로 통하는 출구인 단치히 회랑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자, 런던과 파리는 강경히 반대했다. 그러나 1939년 여름, 히틀러는 소련과 손을 잡고 폴란드 분할을 전제로 한 독소 불가침 조약(1939년 8월 23일)을 체결하며 최대의 걸림돌을 제거했다.

대독일의 꿈을 품은 히틀러는 이제 아무런 부담 없이 오른팔 힘러에게 폴란드군이 독일 영토를 기습한 것처럼 위장한 사건을 연출하라고 지시했다. 힘러는 계획을 수립한 뒤 하이드리히(SS 장교)와 뮐러(게슈타포 수장)에게 실행을 맡겼다.

'힘러 작전' 또는 '글라이비츠 사건'으로 불리는 이 작전은 SS 장교 나우요크스가 지휘했다. 1939년 8월 31일 밤, 폴란드 군복을 입은 무장 SS 대원들이 글라이비츠(현 폴란드 글리비체)의 라디오 방송국을 습격해 독일에 대한 봉기를 호소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이렇게 만들어 낸 침공 구실을 앞세운 히틀러는 1939년 9월 1일, 국경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국방군 48개 사단을 폴란드로 진입시켰고, 1,400여 대의 루프트바페 전폭기가 폴란드 전역을 폭격했다.

이른바 '블리츠크리크(번개전)'는 겨우 몇 주 만에 결말을 냈다. 이 전략은 교통·통신망, 공장 등 전략 거점을 집중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끊임없는 폭격에 몰린 폴란드군은 후퇴를 거듭했고, 9월 5일 폴란드 정부는 바르샤바에서 루블린으로 옮겨갔다. 9월 15일에는 수도 바르샤바가 함락되었으며, 17일에는 소련 붉은 군대까지 동쪽에서 폴란드를 침공했다. 결국 1939년 10월 6일, 스탈린과 히틀러는 폴란드 공화국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전쟁의 결과

독일에서 '백색 작전(Fall Weiss)'이라 불린 폴란드 침공은 독일의 일방적인 침략 행위로, 20세기 최대의 분쟁 중 하나를 여는 도화선이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1939년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독일에 맞선 연합군은 이후 '가짜 전쟁(Phoney War)'이라 불리는 침체기에 빠졌고, 전환이 진행됨에 따라 이 충돌은 곧 전 세계를 휩쓰는 세계 대전으로 확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