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의 승리, 1973년의 충격
1967년 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안도감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1973년, 아랍 연합군이 기습적으로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면서 모든 것이 뒤바뀌게 된다. 골란고원에서 이스라엘은 이미 장악한 지역을 철저히 요새화해 두었었다.
이들은 깊이 4m, 폭 6m의 대전차 참호를 구축했고, 전초기지 17개와 기타 112개의 요새 진지를 건설했다. 광범위하게 매설된 지뢰밭이 전체 방어선을 보호하고 있었다.
양측의 전력
각 지원 거점 뒤에는 준비된 진지에 전차 3대씩 배치되어 있었고, 더 후방에는 최후의 예비대로 제7기갑여단과 제188기갑여단 등 두 개 기갑여단이 총 177대의 전차와 함께 주둔하고 있었다. 지원 거점을 담당한 병력은 '골라니' 여단 소속 제13 '기디온' 대대였다. 포병 지원은 44문의 야포가 맡았다.
반면 시리아는 '작전 110'의 일환으로 증강된 3개 보병사단(제5, 제7, 제9)과 2개 기갑사단(제1, 제3)으로 공격할 계획이었다. 총 7만 명의 병력(기계화 보병 2만8천 명)과 전차 1,400대를 투입했으며, 950문의 포병 화력이 지원하고 지대공 미사일 부대 100개가 공중 위협으로부터 엄호해 주었다.
전초기지 107은 소규모 지원 거점 중 하나였다. 1973년 10월 6일, 이곳은 엘리멜렉(Elimelech) 중위와 그의 부하 19명이 방어하고 있었다. 마주 보는 쪽에서는 시리아 제85보병여단과 제1기계화여단이 다가오고 있었다. 소수의 이스라엘군은 제188 '바라크' 기갑여단 제74대대 소속 전차 3대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포격의 폭풍과 전차전
10월 6일 13시 50분, 포탄의 폭풍이 이스라엘 진지를 강타했다. 엘리멜렉 중위는 요새 밖에서 무전으로 상황을 파악하려던 중이었다. 포격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쌍안경 너머로 다마스커스 방향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적 전차 부대를 목격했다.
전초기지 107을 지원하던 전차 3대는 1,800m 거리에서 사격을 개시했다. 자킨(Jakin) 중위가 지휘하는 이 전차들은 그 수에 비해 과도하게 큰 피해를 시리아군에게 안겼다. 이내 이스라엘 전차 7대가 추가로 도착해 적에게 처참한 피해를 입혔고, 정작 시리아군은 단 한 발의 유효타도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시리아 전차들은 최면에 걸린 듯 계속 전진하며, 불타고 있는 아군 전차들을 그저 돌아가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시리아군이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스라엘군의 사거리 밖으로 빠져나간 것은 무려 전차 30대를 잃고 난 후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전선의 다른 지역에서는 상황이 급격히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고립된 거점의 밤낮
저녁이 되자 시리아군이 되돌아와 전초기지 107에서 불과 300m 지점까지 접근했다. 엘리멜렉은 자킨의 전차들에게 목표를 직접 지정해 주었다. 이스라엘 전차 승무원들과 거점 병력들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고, 무리하게 취약한 대형으로 진격하던 적에게 막대한 손실이 집중됐다. 그러나 작전 상황상 포병과 공군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거점 병력들의 사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다음 날, 엘리멜렉은 1,500m 거리에서 적 보병을 발견했다. 자킨의 전차 3대는 시리아군이 약 500m까지 접근하자 거점의 기관총 사격과 함께 일제히 불을 뿜었다. 수십 명의 시리아 병사가 쓰러졌고, 나머지는 느릿느릿 물러났다. 그들은 기동을 시도하지도 않았고, 자신들의 전차로부터 어떠한 엄호도 받지 못했다.
오후에는 시리아 T-54/55 전차 7대가 전초기지를 향해 정면 돌격해 왔다. 엘리멜렉이 지원을 요청하자 I셔먼 전차(현대식 주포를 장착한 2차 세계대전형 셔먼) 6대가 거점으로 달려왔다. 이후 시리아군은 후퇴했지만, 이스라엘 전차들 역시 모두 떠나면서 거점 병력들은 완전히 홀로 남겨지고 말았다.
저녁, 시리아 전차 한 대가 장갑차(APC)를 대동하고 거점에 접근했다. 차량에서 하차한 시리아 특공조가 거점의 철조망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스라엘 병사 요세프 자독(Yosef Zadok)은 엄폐도 없이 앞으로 돌진해 대전차 로켓을 발사, 시리아 전차를 파괴했다. 동시에 아비단(Avidan) 하사가 시리아 병사들에게 사격을 가해 5명을 사살했다. 살아남은 병력들은 장갑차에 올라타 도주했다. 이어 접근하던 또 다른 장갑차는 지뢰를 밟아 탑승자 전원과 함께 파괴되었다.
포위전의 극한
다음 날, 격렬한 포격이 거점을 덮쳤다. 한편 다른 전선의 이스라엘 방어선이 돌파되면서, 이제 전초기지 107은 어느 방향에서든 공격받을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엘리멜렉은 원주 방어 체계를 조직했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기관총 4정, 휴대용 대전차 발사기, 그리고 부하들의 개인 화기인 FN 돌격소총과 UZI 기관단총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시리아 전차 한 대가 접근하다 지뢰를 밟아 파괴되었다. 생존 승무원들은 흰 손수건을 흔들며 뛰쳐나와 경계소를 향해 "자신들은 강제로 징집된 시리아 유대인"이라고 외쳤다. 저녁 무렵 엘리멜렉은 거점을 버리고 후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같은 시각, 거점 북쪽 200m 지점에 새로운 시리아 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스라엘군은 사격하지 않았고 시리아군도 그냥 지나갔다. 엘리멜렉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사방이 시리아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시리아 전차 한 대가 집중 사격으로 거점의 기관총 4정을 모두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전차가 떠난 후 이스라엘 병사들은 거점 밖으로 나와 손상된 시리아 전차들을 샅샅이 뒤져 작동 가능한 무기를 거두어 들였다. 기관총, 돌격소총, 대전차 발사기 등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새로운 물결을 앞두고는 턱없이 부족했다. 시리아군은 대통령 친위대 소속 T-62 전차 70대의 지원을 받으며 제7, 제9 기계화사단으로 새로운 대규모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이병 자독은 순식간에 그중 5대를 파괴했지만, 그 과정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말았다. 주목할 점은 시리아군이 끝내 거점 점령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막대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그저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계속 진격했다.
구원의 손길
한편 거점과 연락이 두절된 '기디온' 대대는 상황을 확인하고 포위된 병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병력을 파견했다. 나프시(Nafsi) 중령 지휘 아래 전차 3대와 병력을 실은 M3 하프트랙 2대로 구성된 이 구원 부대는 시리아 방어선을 돌파해 전초기지 107에 도달했다. 전초기지 107의 병사들은 마침내 구원받았다.
같은 시각, 시리아의 대공세는 점차 무너져 갔다.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군의 유일한 인명 손실인 중상을 입은 요세프 자독마저 목숨을 건졌다.


시리아군이 버리고 간 전차들.

골란고원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요새, 전쟁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