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와 왕비들은 인생에서 가장 사적인 순간조차 프라이버시를 박탈당했습니다. 바로 아이를 낳는 순간이었습니다. 후계자의 탄생은 곧 국가의 대사였기에, 갓난아기가 바뀌어지는 일을 막아야 했고, 이를 위해 출산 방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궁정 신하들, 귀족 대표들, 정치인들이 출산 현장을 참관했으며, 이러한 프라이버시 부재는 진통과 왕조의 존속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이미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산모에게 더욱 가혹한 시련이었습니다. 특히 17~18세기 프랑스 왕비들이 겪은 대우가 가장 혹독했다고 전해집니다.프랑스: 루이 1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