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년 그리스 혁명이 모레아(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이미 시작되었음에도, 동부 중부 그리스에서는 망설임이 팽배했습니다. 그 주된 이유는 현지 지도자 미초스 콘토기안니스(Mitsos Kontogiannis)가 디아코스, 디오보우니오티스, 파누르기아스 등 혁명파 지도자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오스만 제국에 대한 그리스인의 봉기가 시기상조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얏티(Ypati) 공격의 결단혁명을 지지하던 세 지도자는 콤포타데스 마을에 모여 당시 파트라치키(Patratziki)로 불리던 얏티를 공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더 이상 외면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