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2년 2월 28일은 카스티야 왕관에 있어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수년간 자녀를 얻지 못했던 엔리케 4세에게 드디어 상속자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왕자가 아닌 공주, 훗날 아스투리아스 공주가 될 후아나였다. 엔리케 4세가 무능왕이라 불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의 딸이 벨트라네하(벨트란의 딸)라는 조롱 섞인 별명으로 불리게 된 것도 당연했다. 소문에 따르면 그녀는 왕이 아닌 왕비와 왕의 총신 벨트란 데 라 쿠에바 사이의 사생아라는 것이었다. 갓난아기 후아나의 세례 대모는 겨우 열 살 난 왕녀 이사벨, 그녀의 고모였다.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