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고대사

  • 패배했는데 '대승' 보고…마드리드 전체를 속인 스페인 장군의 사기극

    1743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은 3년째에 접어들었다. 전화는 유럽 끝에서 끝까지 번졌을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와 아시아까지 뻗쳤고, 많은 이들이 이 전쟁을 제1차 세계대전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라고 평했다. 이탈리아 역시 이 전쟁의 중요한 전선 중 하나였다. 스페인군, 나폴리군, 프랑스군이 오스트리아군과 피에몬테 왕국 연합군과 맞섰다. 발롱 출신 장군 콩트 드 가주(Comte de Gages)가 지휘하는 스페인·나폴리 혼성군은 모데나 북쪽 파나로 강까지 진격해 있었다. 이 군대는 보병 11,400명, 기병 2,600명, 대

  • 기근을 무기로 삼아 수백만 소련인을 죽인 스탈린의 '홀로도모르'

    우크라이나에서는 지금도 이 비극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독일군에게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고, 오늘날까지 반러시아 감정이 강하게 남아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홀로도모르. 한 단어 속에 모든 공포가 담겨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어로 이 단어는 기근에 의한 살인이라는 표현에서 변형된 것으로, 곧 기근을 무기로 삼은 집단살해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2006년부터 현재까지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15개국이 이를 집단학살(제노사이드)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희생자 수, 추정조차 어려운 참상 희생자

  • 신참 기관총 사수 '애네도트'의 기적…일본 에이스를 격추한 치명적 공중 결투

    전쟁과 과신은 함께 가지 않는다1942년 5월 22일, 일본군은 인도 국경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장악한 상태였고, 낙관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전쟁과 과신은 결코 함께 가지 않는 법. 일본군 에이스 조종사들은 이 교훈을 단 한 대의 적기로부터, 이론상으로는 아주 쉬운 표적이었던 그 기체로부터 가장 뼈아프게 배우게 된다.이날 영국 왕립공군(RAF) 제60폭격비행대대 소속 경폭격기 브리스톨 블렌하임은 버마의 일본군 비행장 공습을 마치고 기지로 귀환하는 중이었다. 워런트 오피서 해거드가 조종하고, 동료들이 애네

  • 히틀러와 싸우라던 연합국, 모든 것을 요구한 터키… 2차 대전 중립 외교의 실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터키는 영국·프랑스와 동맹 조약을 맺고 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1940년 6월 26일, 터키는 중립 선언이라는 선택을 한다. 히틀러 역시 그리스와 유고슬라비아 침공에 앞서 앙카라에서 터키의 중립을 존중하겠다고 공언하며 분위기를 조성했다.독일과의 우호 협정, 그리고 서방의 계산이러한 흐름 속에서 1941년 6월 18일, 독일과 터키 사이에 우호 조약이 체결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영국과 미국조차 터키의 중립을 묵인했다는 사실이다. 터키군이 전쟁을 치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양국

  • 아마존 여전사는 실존했나? 기원전 600년 무렵 '13세 소녀 전사' 미라 유전자 분석 결과 공개

    러시아 연구진이 약 2600년 전에 매장된 전사의 미라에 대해 유전자 분석을 진행한 결과, 이 유해가 단 13세 소녀에 해당하는 스키타이 여성 전사의 것임이 확인됐다. 해당 유적은 1988년 러시아 투바 공화국의 고고학 발굴지에서 발견되었다.13세 소녀 전사의 유전자 분석연구팀은 학술지 고고학 및 문화인류학(Archeology and Cultural Anthropology)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이러한 결론을 발표했다. 미라는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 고고학자들이 소녀의 왼쪽 얼굴에 남은 흔적까지 식별할 수 있었으며, 복부에 남아 있

  • 스탈린과 제2차 세계대전: 소련 '승리' 뒤에 숨겨진 쓰라린 진실

    나치 독일에 대한 소련의 승전 75주년 기념 열병식이 2020년 6월 24일,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수천 명의 병사가 행진에 참여한 이 행사는 러시아의 국경일인 승전일(5월 9일)을 대신해 연기된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붉은군대와 수백만 명의 소련 군인들, 그리고 전쟁의 향방을 가른 전장에서 흘린 처참한 희생을 기리며 국가적 자긍심을 드러내는 자리였다.그러나 이 화려한 승리의 서사 뒤에는 오랫동안 공식 역사에서 지워지거나 축소되어 온 어두운 진실이 숨어 있다.

  • 스톤헨지의 신비를 밝히는 놀라운 발견…직경 2km 거대 구덩이 원형 유적

    스톤헨지(Stonehenge) 인근 고대 정착지를 둘러싸며 직경 2km에 달하는 거대한 원을 이루는 깊은 구덩이들로 구성된 유례없는 선사시대 구조물이, 수수께끼에 싸인 이 선사시대 기념물의 기원과 의미를 밝히는 새로운 연구의 길을 열고 있습니다.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University of St Andrews)를 비롯한 여러 대학 고고학자 팀의 최근 연구와 분석 결과, 더링턴 월스(Durrington Walls) 신석기 시대 정착지와 목책 둘레를 감싸는 지름 10m 이상, 깊이 5m에 달하는 선사시대 구덩이 20개 이상의 존재가 확

  • 클라우젠 전투(1735): 압도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소수 제국군의 역공에 흔들린 프랑스군

    우세한 자가 오히려 흔들린 전투 1735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중 벌어진 클라우젠 전투는, 병력상 우위에 있던 측이 비극적인 무모함을 보이며 사실상 적과 진지하게 교전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담한 역공에 흔들린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모젤 지역을 둘러싼 양군의 대치 1735년 강력한 프랑스군이 독일 지역을 침공해 트리어(Trier) 방면으로 진격했다. 같은 지역에는 제국 백작 겸 장군 폰 체켄도르프(von Zeckendorf)가 이끄는 오스트리아-독일(제국)군 35,000명이 활동 중이었다. 제국군의 목표는 프랑스군 축출

  • 1982년 제닌 전투: 전차에서 내려 도보전을 벌여 시리아 특공대를 격파한 이스라엘 기갑부대

    제1차 레바논 전쟁의 발발1982년 6월 6일,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을 침공하면서 제1차 레바논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침공의 배경에는 레바논을 거점으로 삼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이스라엘 내 군사 표적과 민간인들을 반복적으로 공격해 온 사정이 있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팔레스타인 테러범이 주영 이스라엘 대사 암살을 기도한 사건이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레바논 기독교 세력을 동맹으로 삼아 싸웠고, 맞서는 진영에는 시리아, 팔레스타인 세력, 레바논 무슬림 세력, 그리고 각종 좌파 단체들이 있었다.전략적 요충지 제닌제닌 전투는 이 전

  • 풀리지 않는 역사 미스터리… 1933년 네덜란드 전함 '데 제븐 프로빈시엔' 반란 사건

    세계 해군사에서 가장 역설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1933년 네덜란드 연안 방어 전함 데 제븐 프로빈시엔(De Zeven Provinciën, 일곱 개 주)에서 벌어진 반란이다. 함명은 네덜란드를 구성하는 일곱 개 주를 의미한다.이 배는 1910년 함대에 합류한 소형 연안 방어함으로, 전장 101.5m, 배수량 6,530톤, 최고 속력 16노트였다. 무장은 283mm 주포 2문, 150mm 포 4문, 75mm 포 10문, 37mm 포 4문, 그리고 75mm 곡사포 1문을 갖추었으며, 승조원은 452명이었다.1911년

  • 유럽 초강대국 프랑스의 첫 굴욕, 콘처브뤼케 전투

    1672년 당시 유럽의 초강대국이었던 프랑스가 작은 나라 네덜란드를 상대로 벌인 군사 원정으로 시작된 전쟁은, 1675년에 이르러 완전히 양상이 바뀌었다. 제한적인 규모의 분쟁으로 출발했던 네덜란드 전쟁은 합스부르크 제국과 독일 민족 신성로마제국까지 휘말리는 범유럽 전쟁으로 확대된 것이다.튀렌 원수의 전사, 전황의 급변7월 27일, 뛰어난 지휘관 몬테쿠콜리(Montecuccoli) 원수가 이끄는 제국군은 작스바흐에서 프랑스군과 조우했다. 그러나 단 한 발의 포탄이 전투의 향방을 결정지었다. 포탄은 프랑스군 총사령관 튀렌(Turenn

  • 오스만에겐 자비가 없었다… 복수와 몰살로 끝난 1716년 페트로바라딘 대전투

    1715년, 합스부르크 제국의 동쪽 국경에서 다시금 튀르크(오스만)의 위협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튀르크의 팽창 야망은 1711년 프루트 강 전투에서 메흐메트 파샤가 이끄는 26만 명의 대군이 표트르 대제의 4만 명을 격파하면서부터 되살아난 상태였다. 늘 같은 팽창주의 노선을 걸어온 튀르크는 1714년 카를로비츠 조약을 위반하고 그리스의 베네치아령을 공격했다. 베네치아의 방어선은 급속히 무너졌고, 이윽고 펠로폰네소스 반도 전체가 오스만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그들의 다음 과녁이 발칸의 제국 영토임은 자명해 보였다. 그러나 선전포고를 한

  • 전멸의 전투… 오스트리아 땅에서 몰살당한 터키 약탈 기병 8천 명

    빈 성벽 앞에서 패배한 뒤에도 절세 군주라 불린 술레이만은 황금 사과 빈을 정복하고 이슬람을 유럽의 심장부로 전파하려는 야망을 접지 않았다.12만 대군의 재원정1532년 술레이만은 12만 대군을 직접 이끌고 다시 북상했다. 크로아티아의 드라바 강을 건넌 그는 빈으로 통하는 통상적인 경로 대신 페르디난트 대공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영토로 진로를 돌렸다.진군 도중 터키군은 17개의 소규모 마을과 요새를 차례로 함락시키며 죽음과 공포를 뿌렸다. 페르디난트는 황급히 후퇴했고, 작은 방벽 도시 귀스(Güns, 오늘날 헝가리 쾨세그)에는 겨우

  • 스톤헨지 미스터리 하나 해결…거석 52개 중 50개의 출처는 '웨스트 우즈'

    영국 과학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선사시대 기념물 중 하나인 스톤헨지(Stonehenge)의 오랜 미스터리 하나를 해결했습니다. 영국 브라이튼대학교 지형학자 데이비드 내시(David Nash) 교수가 이끈 연구팀은 수십 년간 미국에 보관되어 있던 샘플을 분석해, 스톤헨지를 구성하는 회색 사암 거석 대부분의 출처를 특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톤헨지를 이루는 52개의 사암 거석 가운데 무려 50개가 스톤헨지에서 약 25km 떨어진 웨스트 우즈(West Woods)라는 지역에서 채석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성과

  • 후시네 전투…기병 돌격으로 소련 사단을 무찌른 폴란드 영웅들

    양면에서 무너지던 폴란드, 마지막 저항의 현장 1939년 후시네(Husine) 마을에서 벌어진 전투는 고난에 시달리던 폴란드가 1939년에 치른 마지막 전투 중 하나였습니다. 9월 17일부터 폴란드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과 생존을 걸고 싸우던 중, 소련의 침공까지 받아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 마을은 루블린 주 흐루비에주프(Hrubieszów)에서 북동쪽으로 약 7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부그 강을 건넌 소련 제8소총병군단 1939년 9월 23일, 소련 제8소총병군단이 흐루비에주프 인근에서 부그 강을

  • 1991년 스플릿 해전… 유고슬라비아 해군에 남긴 뼈아픈 굴욕

    사흘간의 해상 교전 달마티아 해협에서 벌어진 이 해전은 세르보크로아트 전쟁 기간 해상에서 치러진 몇 안 되는 교전 중 하나였다. 전투는 1991년 11월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이어졌다.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의 갈등은 중세 초기부터 시작되어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절정에 달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유고슬라비아를 이끈 티토의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상황이 잦아들었지만, 그가 사망한 후 마찰이 다시 표면화되었다. 1990년 최초의 충돌이 일어났고, 1991년 10월 독립을 선언한 크로아티아와 해체되어 가던 유고슬라비아 사이

  • 페트리코프카 전투(1941)…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가 거둔 가장 큰 승리

    이탈리아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위 열강으로 불린 나라들 가운데 전력이 가장 취약한 축에 속했다. 병력은 충분했고 전술 교리 자체도 나쁘지 않았지만, 장교와 병사들의 훈련 수준, 무기와 군수물자는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유능한 지휘관 아래에서 이탈리아 병사들은 놀라운 전과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위대한 승리는 바로 당시 소련의 영토였던 우크라이나 땅에서 거두어졌다.이탈리아 원정군단프랑스, 그리스 본토,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화려한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독일의 소련 침

  • 다하우 수용소 해방: 미군이 목격한 지옥의 실상

    미 제7군 ‘무지개 사단(Rainbow Division)’은 뷔르츠부르크에서 출발해 독일 남부로 진격했다. 1945년 4월 29일 아침, 그들은 뮌헨 근교 다하우에 있는 강제수용소의 닫힌 대문 앞에 도착한다. 국방군은 이미 철수한 뒤였고, 친위대(SS)는 수용소를 정리해 둔 상태였다. 미군이 수용소에 들어섰을 때 마주한 광경이 바로 이것이었다.그들이 목격한 광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나무 받침 위에 쌓인 수백 구의 시신과 열린 화물열차 안에 방치된 시신들, 발진티푸스에 걸린 채 반쯤 죽어 있는 해골 같은 수용자들—그나마 제 힘

  • 독일과 제2차 세계대전: 수치의 역사로부터 75년

    1945년 4월 30일 오후, 소련 붉은 군대는 이미 베를린 중심부에 진입해 총리 관저 바로 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소련군의 손에 넘어지기를 거부한 히틀러는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충성파들은 총통과 그의 아내 에바 브라운의 시신을 불태운 뒤 대피소 출구 근처에 묻었다.유럽에서의 전쟁 종식과 천년 제국의 몰락은 5월 8일, 국방군 지도부가 독일의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하면서 확정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전쟁이 9월 2일까지 이어졌으며, 일본은 미국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이후 마침내 항복했다.

  • 기독교 에티오피아의 생존 전쟁: 소말리아·터키 이슬람 연합군을 무너뜨리다

    기독교 왕국의 위기수 세기 동안 아비시니아로 불린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 중 하나로, 강한 기독교적 정체성을 지닌 나라였다. 그러나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고대 왕국은 존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아달 술탄국의 광신적인 이맘 아흐마드 그란(왼손잡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흐마드)이 이끄는 무슬림 연합군이 에티오피아를 몰아붙였고, 그 배후에는 대제라 불린 오스만 술탄 술레이만의 지원이 있었다.아달 술탄국은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무슬림 국가였다. 사실상의 지도자인 광신도 아흐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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