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고대사

  • 메르겐트하임 전투(1645): 튀렌의 방심을 찌른 메르시의 기습 역습

    결정적 회전은 아니었지만 남긴 교훈은 컸다1645년 5월 2일 벌어진 메르겐트하임 전투는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대규모 회전은 아니었다. 프랑스군 측에는 훗날 명장으로 이름을 떨친 튀렌(Turenne) 원수가, 제국-바이에른 연합군 측에는 로렌 출신의 프란츠 폰 메르시(Franz von Mercy)가 지휘하는, 두 소규모 군대 간의 전술적 충돌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전투는 최고의 지휘관조차 패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명한 사례로 역사에 남았다.바이에른 침공과 깊은 추격1645년 프랑스군은 바이에른으로 진격했다. 바이에른군

  • '테오스탈토스'… 미국 핵 비밀을 '훔친' 소련 스파이 오스카 세보러의 정체

    기밀 해제된 미국 문서들이 1940년대 미국의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에 잠입해 모스크바에 원자폭탄 관련 가장 방대하고 중요한 정보를 넘긴 것으로 평가되는 소련 스파이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오스카 세보러(Oscar Seborer)는 폴란드 이민자 부부의 아들로 유대계였으며, 1921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1942년 군에 징집된 뒤 미국 최초의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극비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배속되었고, 트리니티(Trinity)라는 이름의 인류 최초 핵폭발 실험 현장에도 함께 있었다.

  • 두더지 크리켓 19 작전: 이스라엘, 시리아 방공망과 공군을 단숨에 무력화하다

    작전의 배경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면서 시리아군과의 충돌은 불가피해졌다. 이스라엘은 시리아가 배치한 지대공 미사일 부대를 무력화하기로 결심했다. 소련은 시리아에 수많은 미사일 포대를 공급했으며, 시리아 헬기 한 대가 이스라엘 F-16에 격추된 뒤 시리아는 베카 계곡에 수십 개의 포대를 추가로 배치했다.이스라엘은 직접 공격을 원했지만, 소련의 반응을 우려한 미국의 만류로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한편 1981년 12월 14일 이스라엘이 골란 고원을 공식적으로 합병하자 국제사회의 강한 반발이 일었고, 다마스쿠스는 이를 선전

  • 제1차 세계대전 1916년, 희귀 영상으로 되살아나는 인류 최악의 학살 '베르됭 전투'

    베르됭 전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1916년 2월 21일에 시작되어 같은 해 12월 18일까지 약 10개월간 이어졌으며, 프랑스군과 독일군은 공격과 반격을 거듭하며 서로를 갈아 넣는 처절한 소모전을 벌였다.프랑스군을 출혈시키기 위한 독일의 계획전투는 독일군의 대규모 공세로 시작되었다. 당시 독일 지휘부는 프랑스가 상징적 요새 도시 베르됭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수할 것이라 점치고, 이곳에서 프랑스군의 피를 말리겠다는 이른바 출혈 작전을 구상했다. 만약 독일이 초기 전략대로 작전을 운용했다면 승기를

  • 새로운 군사 명장의 탄생… 1683년 빈 공방전에서 빛난 외젠 드 사부아

    외젠 드 사부아(Eugène de Savoie)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프랑스군에서 복무했고, 외젠 역시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외젠은 부득불 오스트리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선택을 뒷받침해 준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형이 이미 오스트리아군 장교로 복무 중이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1683년 오스만 제국(투르크)의 대군이 빈의 성문 앞까지 몰려왔다는 사실이었습니다.헝가리 반란과 오스만 대군의 침공1682년, 오스트리아 지배 하에

  • "이단자" 율리아누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게르만 연합군을 몰살하다

    355년, 서로마 제국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게르만족(알레만니와 프랑크족)이 라인강 국경을 돌파해 갈리아까지 깊숙이 침입한 것이다. 황제 콘스탄티우스는 생존해 있는 몇 안 되는 친척 중 한 명인 사촌 율리아누스, 즉 훗날 교회로부터 배교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황제에게 상황 수습을 명령했다.그러나 콘스탄티우스가 율리아누스에게 준 병력은 기병 360명에 불과했다. 일련의 작전 기동 끝에 357년 여름, 율리아누스는 알레만니족과 그들의 동맹인 부르군트족을 상대로 진격했다. 이 전투에 대한 주요 사료는 당대의 역사가, 아마도 그리스인이었

  • 미국 독립전쟁, 영국을 위해 싸운 '작은' 독일 국가들의 숨겨진 이야기

    미국 독립전쟁(1775~1783)은 단순히 미국 식민지와 영국 간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의외로 독일인들이 이 전쟁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는데, 가장 역설적인 점은 유럽의 군소 독일 국가들이 자국의 대대와 연대 전체를 영국에 임대하는 형태로 전쟁에 가담했다는 사실입니다.영국의 독일 동맹군 대부분은 헤센카셀과 헤센하나우 출신이었으며,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에서도 많은 병사가 파견되었습니다. 특히 하노버는 당시 영국 국왕의 영지였기 때문에 그 군대는 일종의 영국 왕실 소속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군소 독일 국가들이 영국에

  • 인도-파키스탄 전쟁의 서막, 갈리부르 전투…대대 vs 여단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은 12월 3일 공식적으로 시작되었고, 그 결말로 방글라데시(당시 동파키스탄)의 독립이 확정되었다. 인도는 주적을 약화시키기 위해 교란 작전을 한층 강화할 명분과 이해관계를 모두 갖고 있었다.그러나 실제 충돌은 공식적인 전쟁 발발보다 훨씬 이른 시점, 즉 1971년 10월부터 국경에서 심각한 무력 충돌이 이어지며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본격적인 첫 대규모 교전은 11월 20일부터 21일까지 갈리부르(Garibpur)에서 벌어졌다. 이곳에서 인도군 1개 대대는 경전차 14대의 지원을 받아 파키스탄군 1개

  • 코펜하겐 공방전: 해자를 넓힌 수비군의 기지, '무적' 스웨덴군의 몰락

    잊혀진 전쟁, 그러나 유럽의 운명을 가른 전투1655년부터 1660년까지 벌어진 제1차 북방 전쟁은 작은 나라 스웨덴을 유럽의 강대국으로 끌어올린 가장 중요한 전쟁 중 하나였지만, 정작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덴마크, 네덜란드까지 여러 나라를 상대로 싸운 스웨덴 국왕 칼 10세 구스타프는 1658년, 덴마크를 거의 전쟁에서 이탈시키는 데 성공했다.일련의 패배 끝에 덴마크가 강화를 요청했지만, 스웨덴 국왕은 평화 협상 대신 덴마크를 유럽 국가 지도에서 지워버릴 야심을 품

  • 인도 해군의 카라치 야습 – 파키스탄 함대를 무너뜨린 '트라이던트 작전'

    전운이 감도던 1971년, 카라치의 운명1971년, 인도와 파키스탄은 다시 한번 전면전에 돌입했다. 당시 파키스탄 해군의 주요 해군기지는 카라치(Karachi)였다. 카라치는 나라 최대 항구이자 상업 중심지였기 때문에, 파키스탄 입장에서 카라치 방어는 그 어떤 임무보다 최우선 과제였다.공식적인 선전포고 이전인 1971년 11월 23일, 고조된 긴장과 이미 벌어진 국경 충돌을 의식한 인도 해군은 막 취역한 비듀트(Vidyut)급 미사일 고속정 3척(소련 오사 I형 기반)을 전방에 배치했다. 그리고 12월 3일, 파키스탄 공군이 인도

  • 체첸 776고지 전투: 91명의 러시아 공수부대가 벌인 러시아판 테르모필레

    그로즈니의 굴욕, 그리고 모스크바의 명예2000년 2월 말, 러시아군은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서 철수하던 강력한 반군 부대를 포위·섬멸하는 작전을 개시했다. 한때 반군에게 그로즈니를 내주며 큰 굴욕을 당했던 러시아에게 이번 작전은 단순한 군사 행동이 아니라 국가의 명예를 건 싸움이었다. 그러나 반군들은 거의 저항받지 않은 채 도시를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고, 이들을 완전히 섬멸하는 일은 모스크바에 있어 명예 회복의 문제가 되었다.2월 29일, 전쟁 종식 선언 직후의 포위2000년 2월 29일, 러시아 국방장관이 체첸 전쟁은 끝났다고 선

  • 모기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을 막았다? 인류 역사를 뒤바꾼 최강의 포식자

    캐나다 출신 역사가이자 미국 콜로라도 메사대학교(MESA University)의 티머시 와인가드(Timothy Winegard) 교수의 신간 『모기: 인류를 죽이는 가장 치명적인 포식자의 역사(Mosquito: A Human History of Our Deadliest Predator)』(더튼 출판사, 2019)는 모기가 매개하는 각종 질병이 인류 역사에 남긴 숨겨진 그러나 지대한 영향을 상세히 조명한다. 저자는 이 질병들이 세계사에서 다른 어떤 단일 원인보다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추정한다.와인가드에 따르면 감염된 모기는 약 520

  • 러시아의 배신 속에 빛난 대승리 – 1770년 아스핀자 전투, 조지아가 오스만 제국을 격파하다

    아스핀자는 현재 약 2,8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조지아 남서부의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1770년, 이곳은 역사상 가장 극적인 전투 중 하나가 벌어진 무대가 되었다. 당시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은 다시 한번 전쟁 중이었고, 예카테리나 2세(소위 대제)와 그녀의 참모들은 튀르크에 맞서 새로운 전선을 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두 개의 전선: 그리스와 조지아한쪽 전선은 그리스였다(오를로프 반란, 즉 오를로비카). 러시아는 이 과정에서 그리스 혁명가들을 팔아넘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 다른 전선은 조지아였다. 튀르크와 러시아 모두 조지아

  • 1971년 '파이썬 작전'… 인도 해군이 파키스탄 해군을 바다에 못 나오게 만든 결정타

    결정타를 위한 두 번째 작전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 파이썬 작전(Operation Python)은 인도 해군이 파키스탄 해군에 가한 두 번째이자 승부를 기울린 타격이었다. 물질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사기적으로 치명적인 마지막 일격이었으며, 이후 파키스탄 해군은 다시는 바다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1971년 12월 4일, 인도 해군은 트라이덴트 작전(Operation Trident)을 개시해 카라치 항과 그곳의 유류 저장 시설을 강타했고, 적 함선 4척을 침몰시키거나 쓸모없는 폐철로 만들었다.그러나 유류 저장 시설

  • 대포 없이 거둔 기적의 승리: 마라톤의 밀티아데스 전술을 재현한 프라우슈타트 전투

    전투는 단순히 참여한 병력의 수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그 본질은 적대 세력 간 의지의 충돌이다. 인민의 군대를 꿈꾸는 이들이 종종 간과하는 것은 바로 지휘관이 자신의 의지를 적에게 강요하고, 설령 수적·화력적으로 열세에 처해 있더라도 적을 혼란에 빠뜨리고 압도하는 능력의 가치이다.1706년 2월 13일 벌어진 프라우슈타트 전투(Battle of Fraustadt)(현재 폴란드 서부 프쇼프(Pszów) 인근)는 이러한 사례의 전형이다. 포병 한 문 없이 출정한 소수의 스웨덴군은 두 배에 달하는 적군, 즉 요새화된 진지와 32문의 대포

  • 순양함 샤른호르스트, 침몰 105년 만에 심해에서 발견(영상)

    100년 전의 비극, 심해에서 다시 말하다독일 장갑순양함 SMS 샤른호르스트(SMS Scharnhorst)는 막시밀리안 폰 슈페(Maximilian Graf von Spee) 중장이 지휘하던 독일 동아시아 함대의 기함이었다. 이 배는 제독 본인을 포함해 800명이 넘는 선원들과 함께 파도 아래로 사라졌으며, 탐사단 관계자는 잔해를 발견한 그 순간이 매우 특별했다고 회고했다.폰 슈페 함대는 기함 샤른호르스트를 비롯해 자매함 그나이제나우(Gneisenau), 경순양함 드레스덴(Dresden)·뉘른베르크(Nürnberg)·라이프치히(Le

  • 오데사 학살: 2차 세계대전 수용소 밖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학살

    오데사는 고대 그리스 도시 티라(Tyra)와 올비아(Olbia) 사이에 건설된 흑해 연안의 최대 도시 중 하나로, 오늘날에도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뒤 이 도시는 루마니아군에게 함락되었고, 당시 약 9만 명의 유대인이 도시 안에 남아 있었다.점령 직후, 운명을 바꾼 폭발 사건루마니아군은 두 달간의 격전 끝에 1941년 10월 오데사를 점령했다. 그러나 같은 달 22일, 소련군이 철수하며 남겨둔 지뢰가 루마니아 군정 사령부와 제10보병사단 참모부가 입주해 있던 구 NKVD(소련 비밀경찰) 청사에서 폭발했다.이

  • 공격 전 병사가 느낀 죽음의 예감… 아내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때로 인간은 자신의 운명이 이미 결정되었음을 직감한다. 인생의 절정이든 끝이든, 그 순간이 다가왔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피투성이 참호 속에서 수많은 병사들은 이른바 제6감각이라 불리는 것을 갖게 되었다. 곧 찾아올 행운이든 불행이든 미리 감지하고,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마음의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솜 전투, 서부전선 최대의 공세1916년 7월 1일, 영국군은 서부전선 솜(Somme) 강 일대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최대 규모의 공격을 개시했다. 그 전선에는 노섬벌랜드 퓨질리어스(Northumberland Fu

  • 자국 군대를 궤멸시킨 장군…니벨 공세, 18만 명의 참사

    1917년 4월, 프랑스군은 서부전선에서 당시까지 최대 규모의 공세를 감행했습니다. 이 공격은 그것을 기획한 장군의 구상대로 독일군 전선을 완전히 분단시키고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던 것은 대량의 사상자와 프랑스군 내부의 반란이었고, 그 장군의 이름은 군사 역사상 최악의 재앙 중 하나와 함께 기록되고 말았습니다.포병 장교에서 총사령관으로로베르 조르주 니벨(Robert Georges Nivelle)은 1856년 프랑스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1878년 포병 소위로 군에

  • 러시아군을 무너뜨린 남자… 실수, 부패, 그리고 배신

    무능한 권력자, 수홈리노프 장군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수홈리노프(Владими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Сухомлинов) 장군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 러시아군이 처참할 정도로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 빠지게 만든 핵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야망이 넘치고 자기 과시에 몰두했으며, 아첨과 음모에 능한 그는 욕망의 노예였고 모든 근대화 구상의 적이었다. 평생 화약 냄새나 제대로 맡아 본 적 없는 장군이었지만, 그의 잘못으로 수만 명의 용감한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성과 없는 출세 행보1848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난 수홈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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