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고대사

  • 10일 전쟁... 구유고슬라비아 멸망의 시작이 된 슬로베니아 독립 전쟁(영상)

    티토 사후 위태로워진 유고슬라비아티토가 사망한 뒤 유고슬라비아라는 다민족 국가는 위험할 정도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1918~1941년 시절처럼, 자발적으로 유고슬라비아에 합류하지 않았던 민족들이 외부 세력의 부추김 속에 독립을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유고슬라비아는 베르사유 조약이 낳은 산물이었다. 이 땅에는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보스니아 무슬림,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린인, 그리고 티토의 결정으로 탄생한 마케도니아인까지 함께 살고 있었다. 1989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국가의 지도자로 부상하면서 내부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다.

  • 18세기 연발소총…화약 없이 30발 연사한 에어건 '머신건'

    머스킷 시대의 이단아18~19세기는 모든 나라의 군대가 전장식 머스킷을 보병의 주력 무기로 삼던 시대였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티롤(Tyrol) 지방의 한 총기 장인만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가 바로 바르톨로메우스 지란도니(Bartholomäus Girandoni)다.티롤은 전통적으로 오스트리아군 최정예 경보병, 이른바 사냥꾼(예거) 부대를 배출해 온 지역이었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험준한 고산지대에서 사냥을 하며 스스로를 단련했고, 그들에게 총은 마치 손의 연장과도 같은 존재였다.역사상 최초의 연발소총이 오스트리아 발명가는

  • 장교의 명예를 걸고… 독일 황제가 특별히 허가한 영국 포로의 귀환

    임종하는 어머니를 향한 한 통의 편지영국군 포로 로버트 캠벨 대위가 적십자사를 통해 한 통의 편지를 받았을 때, 그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고령의 어머니가 위독하며, 생전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캠벨은 1903년 영국 육군에 입대한 군인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그는 동서리 연대 제1대대 중대장으로 프랑스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벌어진 격전 속에서 캠벨은 생존 장교 중 최선임자로서 대대 지휘권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진행된 독일군

  • 총검 돌격으로 예니체리를 몰살시킨 리므니크 전투… 평원에 흘린 터키의 피

    1789년 9월 22일, 오늘날 루마니아에 해당하는 왈라키아에서 벌어진 리므니크 전투는 유명한 러시아 장군 알렉산드르 수보로프와 오스트리아의 명장 작센코부르크 공작 요시아스가 지휘하는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이, 자신들보다 4배나 많은 오스만 대군과 맞선 전투였다.이 전투는 오스만 제국을 분할하려는 목표 아래 두 기독교 제국이 오스만 제국과 벌인 전쟁이라는 더 큰 맥락 속의 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발발로 인해 이 전쟁은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에게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못했다.10만 대군, 소수 연합군을 압박하다1789년 9

  • 보잉 P-26 피슈터, F/A-18 슈퍼 호넷 이전 보잉의 마지막 전투기(영상)

    보잉 최초의 단엽 전금속 전투기보잉 P-26 피슈터(Boeing P-26 Peashooter)는 미국 전투기 부대에 최초로 정식 배치된 단엽·전금속 구조의 전투기다. 1931년 모델 248이라는 명칭으로 설계가 시작되었고, 시제기는 1932년 첫 비행에 성공했다. 양산형은 P-26A가 최초였으며, 이후 프랫 앤 휘트니 R-1340-33 엔진을 장착한 P-26B 2대가 제작되었고, 카뷰레터 등 여러 개량이 반영된 P-26C가 뒤를 이었다.개방형 조종석과 고정식 착륙장치를 갖춘 이 기체는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식이 되었지만,

  • 비율 20 대 1, 1,500 대 3만… 승리를 위해 희생한 오스트리아 경기병의 전설적 돌격

    7주 전쟁, 보헤미아를 넘어 이탈리아까지1866년에 벌어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일명 ‘7주 전쟁’의 향방은 사실상 사도바(케니히그레츠)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이 거둔 압도적인 승리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보헤미아 한곳에서만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프로이센과 동맹을 맺은 이탈리아가 남쪽에서 오스트리아를 공격하면서, 미치오 강 동안(東岸) 지역에서도 대규모 작전이 펼쳐졌습니다. 이 전선의 승부를 가른 것이 바로 작은 마을 쿠스토자의 이름을 딴 ‘쿠스토자 전투’였고, 그 와중에 기병 전사(戰史)에 길이 남을 한 차례의 돌격이

  • "우리는 강합니다. 적어도 터키 오랑캐를 돕지만은 말아 주세요. 그저 지켜보세요!" — 64세 노장 슈포르크의 기도가 이룬 성 고트하르트 대첩

    운명은 때때로 기이한 방식으로 사람을 시험하며, 무명 속에 묻혀 있던 가치 있는 인물을 명성의 정점까지 이끌어 올린다. 신성로마제국 최고의 기병 지휘관이자 터키인의 재앙으로 불린 요한 폰 슈포르크(Johann von Sporck)가 바로 그런 사례다. 북 치던 소년, 기병대장으로 슈포르크는 1600년 독일 파더보른(Paderborn)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세 형제 덕분에 나쁘지 않은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형제 중 한 명은 지역의 주교이자 통치자 밑에서 일했고, 나머지 둘은 바이에른 군대에서 복무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 '성모 영면의 기적'… 사제, 십자가, 그리고 볼셰비키

    역사의 긴 여정 속에서 모든 민족은 수많은 영웅적인 인물들을 배출해 왔다. 그러나 일부 국가들은 불리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다른 선택지조차 없었다. 폴란드가 바로 그런 나라다(그리스 역시 마찬가지다). 폴란드인은 18세기 말부터 세 개 제국의 지배 아래 신세를 부려야 했다. 그중 가장 넓은 영토는 러시아 제국에 점령당했다.차르 체제가 붕괴하자 폴란드는 자유를 되찾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후계국인 소련은 볼셰비키 정권이 확립되자마자 인민 혁명을 수출하기로 결심한다. 이에 따라 1920~21년 소련-폴란드 전쟁이 벌어졌고, 소련군은 바

  • 단 28명이 12,000명 오스만 대군에 맞서다 — 크루파 성 공방전, 불멸의 최후 돌격

    두 제국이 부딪히는 국경 요새, 크루파크루파(Krupa)는 오늘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1565년 당시 이곳의 상황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크루파는 아직 쉴레이만 대제가 통치하던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제국 사이를 가르는 국경 요새였기 때문이다.휴전 협정을 파기한 쉴레이만 대제1564년 헝가리·크로아티아의 왕이자 합스부르크 가문의 페르디난트 1세가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은 1562년에 맺어졌던 휴전 협정을 단숨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명분은 트란실바니아 공 얀 지기스문트 자폴리아와 페르디난트의

  • 1821년: 그리스 혁명의 운명을 가른 먼 곳의 전쟁

    1821~1823년 오스만-페르시아 전쟁은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두 강대국 사이에 벌어진 국경 분쟁으로 촉발되었다. 러시아는 터키를 압박하기 위해 이 분쟁을 은근히 부추겼다. 같은 해인 1821년에는 그리스 혁명이 발발하여, 그리스인들은 중요한 승리를 거두며 주요 지역들을 해방시켜 나갔다.혁명 진압에 나서지 못한 오스만 제국반군에 비해 터키 측은 압도적으로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22년 드라말리 원정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은 혁명 진압에 특별히 큰 병력을 배치하지 못했다.그 이유는 러시아

  • 베인브리지에서 줌왈트까지, 미국 구축함 100년 진화의 역사 (영상)

    어뢰의 등장이 낳은 필연의 산물, 구축함구축함은 당시 해전에 새롭게 등장한 무기인 어뢰(torpedo)에 대응하기 위해 탄생한 필연적인 함종입니다. 적의 어뢰정을 격침하는 임무를 맡은 이 신형 함선들은 그리스어로 어뢰 방지라는 이름을 얻었고, 영어로는 디스트로이어(Destroyer)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시간이 흐르면서 어뢰 위협은 점차 확대되어, 어뢰를 운용하는 잠수함마저 함선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구축함은 적 잠수함을 추적하고 제압하는 대잠 임무도 함께 수행하게 되었으며, 이 역할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 블라우 뷔르츠부르크 연대: 프리드리히 대왕에 맞선 제국군의 소규모 엘리트

    7년 전쟁(1756~1763) 당시 뷔르츠부르크 주교 겸 프랑켄 공작 아담 프리드리히(Adam Friedrich)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이끄는 프로이센군에 맞서 오스트리아군과 함께 싸울 두 개의 보병 연대를 창설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중 두 번째로 탄생한 부대가 바로 소위 블루(Blue) 뷔르츠부르크 연대였습니다.연대의 창설과 초기 활동연대는 1756년 말 창설 작업에 들어가 1757년 5월까지 두 개의 보병 대대를 편성했습니다. 각 대대는 융병(fusilier) 6개 중대(중대당 136명)와 척탄병(grenadier) 1개 중대(1

  • 기독교군 전사자는 단 20명, 오스만군은 수천 명 학살… 1684년 바츠 전투

    빈에서의 패배는 끝이 아니었다 1683년 비엔나에서 터키(오스만 제국)가 겪은 패배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계기였다. 그러나 이 승리가 곧바로 전쟁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신성로마제국(독일민족의 신성로마제국)은 승리에 힘입어 터키를 헝가리에서 완전히 몰아내겠다는 목표 아래 반격에 나섰고, 페스트(Pest) 탈환 이후에는 부다(Buda) 해방이 다음 목표가 되었다. 로렌 공작 샤를(Charles of Lorraine)이 지휘하는 제국군은 오늘날 부다페스트 북쪽 35km 지점에 있는 작은 도시 바츠(Vác)를 향해 진군했

  • 체펠린 슈타켄 R.VI: 제1차 세계대전의 초대형 중폭격기, 영국의 악몽

    제1차 세계대전의 거대 폭격기, 체펠린 슈타켄 R.VI체펠린 슈타켄 R.VI(Zeppelin Staaken R.VI)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운용한 가장 성공적인 중폭격기였다. 이미 1914년 말, 독일군 지휘부는 영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고 항속거리가 긴 폭격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비행선 전문 기업이었던 체펠린은 이 도전을 받아들여 당시 기준으로도 대형이었던 폭격기 설계에 착수했다.유명한 페르디난트 폰 체펠린(Ferdinand von Zeppelin) 백작이 이 구상을 받아들였고, 1915년 4월에는 페르주흐스

  • 800명으로 9,000명을 무찌르다… 칼 12세의 그로드노 기습, 표트르 대제의 최대 굴욕

    대북방전쟁(1700~1721)은 1700년, 러시아·작센-폴란드·덴마크가 스웨덴과 그 새 국왕 칼 12세를 상대로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젊은 스웨덴 국왕은 적들의 계산에 조금도 협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 군사사에서 가장 뛰어난 지휘관 중 한 명으로 부상하며, 적군을 하나씩 차례로 격파해 나갔다.1708년 그로드노에서 그는 속도와 전술적 유연함, 그리고 뛰어난 책략의 정점을 찍었다. 바로 정면으로 러시아 차르 표트르 대제와 자신보다 11배나 많은 적군을 마주한 순간이었다.그로드노, 1708년의 겨울

  • 세르비아 의용군단, 나치 독일 편에 선 제2차 세계대전의 '반역자' 부대

    유고슬라비아의 붕괴와 배신자들의 시대1941년 4월, 유고슬라비아는 여러 가지 이유로 독일의 침공에 거의 저항하지 못했다. 세르비아 측에서는 그 원인을 크로아티아인들의 이탈에서 찾았지만, 실상은 모든 것이 어긋나 있었다. 무엇보다 유고슬라비아군의 병력 집결 계획 자체가 잘못 세워졌던 것이다. 게다가 독일의 승리를 바란 것은 크로아티아인만이 아니었다. 똑같은 소망을 품은 세르비아인들도 존재했다.즈보르(ZBOR)에서 태어난 의용군단세르비아 의용군단의 뿌리는 1935년 설립된 국가사회주의 성향의 단체, 즉 유고슬라비아 국민운동 즈보르(Z

  • 비밀리에 추진된 MiG 701 계획, 실현되지 못한 MiG-31의 후계자

    미그 설계국의 극비 프로젝트 7.011980년대 소련 미코얀-구레비치(미그) 설계국이 내부적으로 추진한 프로젝트 7.01, 이른바 MiG 701은 기존의 MiG-31을 대체할 다목적 장거리 요격기를 개발하기 위한 극비 계획이었다. 당시 미국이 차세대 전술 전투기(ATF) 프로그램을 통해 F-22를 개발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소련 역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신형 전투기가 절실했다.미그 설계국의 설계진은 MiG-31보다 훨씬 큰 초대형 전투기를 구상했다. 가장 파격적인 특징은 엔진 2기를 동체 후방 상단, 즉 수직 안정판 양

  • 왕을 잡으러 온 독일 낙하산 부대, 미츠코겐에서 좌절하다

    노르웨이 침공과 왕 실종 1940년 4월 9일, 나치 독일은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독일군은 노르웨이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상륙 및 공수 작전을 개시했으며, 스칸디나비아 소국의 군주인 하콘 7세 국왕의 생포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습니다. 독일 지도부는 국왕만 손에 넣으면 노르웨이는 즉각 항복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슬로 방면의 침공은 초기부터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이 덕분에 노르웨이 왕실과 정부는 철수할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엘베룸(Elverum) 시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국왕을 쫓는 정예 낙

  • 플루토 프로젝트: 냉전 시대의 핵추진 초음속 크루즈 미사일 'SLAM'

    플루토 프로젝트(Project Pluto)는 냉전 시대 적국을 전멸시키기 위해 개발된 수많은 계획 가운데 하나였다. 그 목표는 원자로로 구동되는 램제트 엔진에 의해 아주 오랫동안 비행할 수 있는 비행체 겸 미사일, 즉 드론을 개발하는 것이었다.핵으로 데우는 램제트 엔진1957년 초, 미 공군은 로렌스 방사선 연구소(Lawrence Radiation Laboratory)에 핵열 램제트(nuclear-heated ramjet) 개발 연구를 의뢰했다. 램제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V-1 비행폭탄에 사용된 엔진과 유사한 방식으로,

  • 32km 방벽 위의 전투… 영웅 대장과 225명의 부하들

    바다를 가로막은 32km의 방벽네덜란드 국토의 상당 부분은 해수면보다 낮다. 네덜란드인들이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축조해 온 것이 바로 물을 막는 댐과 제방이다. 그중 하나가 아프슬라위트데이크(Afsluitdijk), 즉 최종 방벽이라 불리는 거대 방파제다. 길이 32km에 달하는 이 댐은 바다를 가로막으며 프리슬란트 해안에서 시작되는데, 네덜란드군은 이곳에 코른베르더잔(Kornwerderzand) 요새를 구축해 두었다.방파제 위에는 네덜란드 북동부와 암스테르담을 연결하는 도로가 지나간다. 독일군이 노린 것은 바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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