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으로 확산된 사티아그라하 운동과 차우리 차우라 사건 사티아그라하 운동은 전국적으로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그 여파로 영국 정부의 통치 기반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곤봉 세례를 감수하며 시위, 농성, 행진, 집회 등 다양한 형태의 항쟁을 벌였다. 비폭력 원칙을 굳게 믿었던 국민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경찰에게 먼저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러나 1922년 2월 5일, 연합주(현재의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차우리 차우라라는 마을에서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평화로운 행진이 열리던 중 참극이 벌어졌다. 경찰서 방화와 21명의 희생자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