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고대사

  • 노예 제도의 실체: 시장에서 '상품'으로 팔린 사람들

    1861년경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열린 노예 경매 장면. 개인 소장 • BRIDGEMAN IMAGES노예 무역은 그 어떤 자본주의적 기업과 마찬가지로 비용과 이윤의 논리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아프리카 연안에서는 밀무역업자들이 현지 지도자와 중개인들과 가격을 협상했으며, 때로는 별다른 이득 없이 거래가 성사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아메리카에 도착한 선장은 온갖 상술을 동원해 자신의 상품을 최대한 높은 값에 처분해야 했습니다. 노예 한 명은 구입 가격의 최대 800배에 달하는 금액에 판매될 수 있었지만, 긴 항해에 따르는 비용과

  • 대서양을 건넌 노예선의 참상: 중간 항로에서 벌어진 일들

    세라피크 메리(Seraphic Mary)호의 도면. 낭트(Nantes)의 그뤼엘(Gruel) 씨가 앙골라 항해를 위해 무장시킨 이 배는 선창에는 통을 싣고 갑판 아래 좁은 선실에는 307명의 노예를 빽빽하게 수용했습니다. 판화, 1770년 • WIKIMEDIA COMMONS100만 명의 생명을 삼킨 바다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약 25,000개의 노예 수송 선단이 대서양을 횡단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항해 중 443척이 난파했고, 148차례의 원정이 바다에서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이는 노예선의 선원들에게도 얼마나 험난하고 위험한

  • 크라켄: 바다를 뒤흔든 전설의 거대 오징어

    선박에 막대한 피해를 입혀 모든 뱃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전설의 해양 괴물, 크라켄. 19세기 판화 • GETTY IMAGES중세 기록에 나타난 괴물중세 노르드 연대기와 사가에는 한 섬만 한 크기의 무시무시한 해양 괴물이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사이의 바다를 유유히 돌아다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3세기 아이슬란드의 오르바르 오드 사가(Örvar-Oddr)는 사람과 배, 심지어 고래까지 삼킬 수 있는 바다에서 가장 거대한 괴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섬뜩한 이야기들이 흥미로운 존재는 이후의 문헌에서도 등장합니다. 16세기 스웨덴의

  • 모차르트와 피아노의 마법: 하프시코드에서 포르테피아노까지

    어린 시절에는 바이올린 연주의 재능으로 주목받았지만, 모차르트가 진정으로 음악적으로 꽃핀 무대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하프시코드, 그리고 피아노입니다. 특히 더 강렬하고 유연한 소리를 내는 피아노는 그가 작곡가이자 연주자로서 정점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하프시코드, 귀족의 악기르네상스 시대부터 18세기 중반까지 하프시코드는 현악기 중 가장 격조 높은 위치를 누렸습니다. 발현(撥絃) 방식으로 배음이 풍부하고 화려한 소리를 냈지만, 음의 세기를 점진적으로 조절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모차르트는 불

  • 프랑스 혁명과 여성들 — 열렸다가 다시 닫힌 권리의 문

    1789년 10월 5일, 베르사유 여성 행진 • ISTOCK여성은 자유로이 태어나며, 권리에 있어서는 남성과 평등하게 머문다. 사회적 구분은 오직 공동의 유용성에만 근거할 수 있다. 저명한 올랭프 드 구주가 1791년 집필한 유명한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제1조는 오늘날 성평등 투쟁의 기념비적 출발점 중 하나로 만장일치에 가깝게 찬양받고 있습니다.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정반대의 주장을 펼칩니다. 실제로 적용할 수단 없이 평등이라는 외피만 선포했기 때문에, 혁명기는 오히려 여성들이 구체제(앙시앵 레짐) 아래에서 누리던 특수한

  • 프랑스 혁명의 여성 혁명가, 올림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

    올림프 드 구즈의 생애1748년 5월 7일 프랑스 몽토방(Montauban)에서 마리 구즈(Marie Gouze)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녀는 올림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793년 11월 3일 단두대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녀는 퐁피냥 후작(Marquis de Pompignan)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습니다.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목소리올림프 드 구즈는 주로 저술 활동을 통해 명성을 쌓았으며, 특히 여성, 노예, 흑인 등 억압받는 소수자를 옹호하는 글들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녀

  • 레판토 해전의 기함 '레알': 오스트리아의 후안이 이끈 전설의 갤리선

    16세기 1560년대, 스페인 국왕 필리페 2세는 지중해에서의 작전을 위해 신형 갤리선 50척의 건조를 명령했습니다. 그중 가장 거대한 배가 바로 레알(Real)로, 1568년 바르셀로나 조선소에서 건조되었습니다. 스페인어로 왕을 뜻하는 이 이름처럼 레알은 함대의 자존심이었지만,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메시나로 귀항하던 중 침몰하고 말았습니다.일반 갤리선과 다른 왕실 기함의 규모당시 일반적인 군용 갤리선에는 선원, 목수, 심지어 의사를 포함한 20~30명의 정규 승무원 외에도 약 100명의 전투 병력이 탑

  • 이란은 어떻게 시아파 국가가 되었나

    네 번째 칼리프 알리와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하산 이븐 알리, 후세인 이븐 알리. 페르시아 세밀화, 1837년 © ROLAND AND SABRINA MICHAUD / AKG 사파비 왕조와 시아파의 선택 1736년까지 이어진 사파비 왕조를 개창하며, 신비주의적 기운을 지닌 푸른 눈의 샤라 불린 이스마일 1세(재위 1501~1524)는 시아파를 제국 전체의 공식 종교로 선포하는 과감한 첫 수를 두었다. 그는 이 결정이 종교와 정치의 영속적인 결합을 낳는 동시에, 서쪽의 오스만 제국과 동쪽의 우즈베크가 지배하는 수니파 중심의 무슬림

  • 드니 파팽, 세계 최초의 압력솥을 탄생시키다

    • SEB GROUP1682년, 루이 14세의 궁정에서는 평소 이런 요리에 걸리는 시간의 절반만에 익혀낸 맛있는 스튜를 맛보고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기적은 파리 라 페로네리 거리(rue de la Ferronnerie)의 우드리 씨(Sieur Houdry), 명장 주조공의 공장에서, 당시 잉글랜드에 있던 프랑스 출신 물리학자이자 발명가 드니 파팽(Denis Papin)이 작성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도구 덕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파팽은 소책자를 통해 누구나 이 도구를 구입할 수 있다고 널리 알렸습니다.이것은

  • 1709년 태양왕의 식탁에서 포도주가 얼어붙던 혹한의 겨울

    리하르트 폰 드라셰-바르틴베르크, 「깊은 겨울」(In Deep Winter), 1923년 루이 14세의 통치는 그 길고도 화려한 기간과 궁정·건축물의 웅장함 덕분에 일반 대중에게 프랑스 군주제의 절정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미 수많은 전쟁으로 침체에 빠져 있던 말년 통치기에, 프랑스는 1709년 역사상 가장 참혹한 겨울 중 하나를 겪게 된다. 볼테르는 저서 『루이 14세 시대』에서 이 겨울을 잔혹했다고 표현했다. 기후학자들에 따르면 17세기는 소빙하기를 겪던 시기였기에 이 현상 자체는

  • 500년 전 프랑수아 1세의 테니스장, 빌레르코테레 성 발굴 현장에서 되살아나다

    ▲ 발굴 작업 중 드러난 죠 드 폼(옛 테니스장)의 바닥 타일 ⓒ Denis Gliksman, INRAP / Press Service 왕의 놀이터, 500년 만에 재등장 프랑스 북부 엔(Aisne) 주에 위치한 빌레르코테레(Villers-Cotterêts) 성에서 프랑수아 1세가 직접 사용하던 테니스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프랑스어 국제 도시(Cité internationale de la langue française)로 새롭게 탈바꿈하기 위해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진행 중인 이 성에서는 공사에 앞서 고고학자들의 발굴 조사가

  • 메카에 잠입한 스페인 스파이, '알리 베이'의 비밀 여행기

    빈티지 판화에 담긴 알리 베이의 초상 • 위키미디어 커먼스히즈라력 1221년 두알키다 달, 서기 1807년 1월. 한 명의 순례자가 메카 시내에 들어섰다. 불신자의 출입을 사형으로까지 금하는 이곳은 이슬람 최후의 성지다. 그는 고대 아바스 왕조 칼리프의 후손이라 자칭하는 알리 베이. 병들어 몸져누운 그는 들것에 실린 채 특별히 입성을 허락받았다.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이 여행자의 진짜 이름은 알리 베이가 아니며, 아바스 왕조의 후손도 아니고, 심지어 무슬림조차 아니었다. 이슬람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를 배회하던 이 불신자는 도밍고 바

  • 납관에 담긴 미라: 프랑스 렌 수도원에서 잠든 귀부인 루이즈 드 캉고

    렌 수도원 아래에서 발굴된 납관 두 개의 모습 © INRAP수녀복을 입은 채 발견된 귀부인그녀는 수녀복 차림이었다. 거친 양모로 짠 갈색 소박한 원피스에 리넨 셔츠를 입었고, 코르크 밑창이 달린 가죽 실내화를 신고 있었다. 머리에는 두 겹의 모자와 망토를 쓰고 있었으며, 마주 잡은 두 손에는 십자가가 쥐어져 있었다.바로 이런 모습으로, 브르파야크의 여영주 루이즈 드 캉고(Louise de Quengo)의 거의 훼손되지 않은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녀는 남편 투생 드 페리앵(Toussaint de Perrien)이 세상을 떠난 지 7년

  • 여성 화가이자 자유로운 여성,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

    루이즈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의 자화상, 1790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 WIKIMEDIA COMMONS 1790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18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화가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Élisabeth Vigée-Lebrun, 1755~1842)은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걷게 된 망명의 길 위에서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다. 현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볼수록 깊은 매력을 발산하는 그림이다. 왕비의 화가 친구 언뜻 보면 이 아름

  • 혁명의 음악적 영혼,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의 탄생과 논쟁

    처음으로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는 루제 드 릴, 이지도르 필(Isidore Pils)作, 1849년. 스트라스부르 역사박물관 소장 • WIKIMEDIA COMMONS1849년, 즉 사건으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뒤 화가 이지도르 필은 ‘라 마르세예즈’의 전설을 그림으로 정착시켰습니다. 그 전설에 따르면 천재적인 젊은 대위 클로드 루제 드 릴(Claude Rouget de Lisle)이 스트라스부르 시장의 살롱에서 이 찬가를 처음 불렀다고 합니다. 1792년 4월 25일 밤부터 26일로 넘어가는 그날 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 르네상스 시대, 바이올린은 어떻게 춤과 음악의 중심이 되었나

    인류가 처음 만든 악기는 단연코 타악기였고, 그다음은 관악기였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것은 정교한 제작 기술을 요구하는 현악기로, 먼저 현을 튕기는 발현악기가 나오고 이후 현을 활로 문질러 소리를 내는 찰현악기가 탄생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다재다능하고 폭넓게 보급된 악기가 바로 바이올린입니다. 오케스트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뿐 아니라(지휘자가 도래하기 전 준비와 조율은 제1바이올린이 책임집니다), 독주 악기이자 실내악 악기로서의 기능까지 갖춘 바이올린은 수많은 악기군 가운데서도 명문의 자리를 확고히 지키고 있습니다.

  • 커피 한 잔에 흔들린 왕좌: 17~18세기 유럽 카페의 정치사

    1798년 런던의 카페, 윌리엄 홀랜드 그림 ⓒ 위키미디어 커먼즈 1652년, 런던에 최초의 카페가 문을 열면서 도시 전체가 커피의 물결에 휩싸였다. 최초의 카페를 연 사람은 영국 상인의 아르메니아인 하인 파스쿠아 로제(Pasqua Rosee)로, 그는 동지중해 여행 중 이 검은 음료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이 가게는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잉글랜드 유일의 공화정, 즉 청교도 시대에서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포도주나 맥주와 달리 커피는 청교도들이 소중히 여기던 절제의 가치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커피의 각성 효과는 긴 노

  • 1611년, 최초의 의료용 온도계가 탄생하다

    수은 온도계(1714년 다니엘 파렌하이트의 발명품) • 위키미디어 커먼즈17세기 초, 산토리오 산토리오(Santorio Santorio)는 이탈리아 의학계를 대표하는 거장 중 한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크로아티아에 정착해 의술을 시작했고, 이후 베네치아로 옮겨 활동했으며, 1611년부터 1624년까지 파도바 대학교에서 의학을 가르쳤다. 말년에는 다시 베네치아로 돌아가 은거하다가 1636년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측정에 일평생을 바친 그 덕분에 그는 실험 의학의 창시자 반열에 올랐다. 그의 연구 대부분은 자신의 체중, 음식 섭취량, 배

  • 1661년, 스웨덴에서 탄생한 서양 최초의 지폐

    지폐는 다른 많은 발명품과 마찬가지로 그 기원을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9세기부터 지폐가 사용되었으며, 유럽인들은 약 3세기 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통해서야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구대륙(유럽)이 이 제도를 실제로 받아들인 것은 1661년이 되어서였다. 당시 은행가 요한 팔름스트루흐(Johan Palmstruch)가 자신이 설립한 스톡홀름 방코(Stockholm Banco)에 금이나 귀금속을 예치한 사람들에게 서면 영수증을 발급하기 시작한 것이다.은행 공황팔름스트루흐는 라트비아 리가 출신이지만, 그

  •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주의자'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란 『군주론』의 저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정치 논설이 낳은 보편적인 반향 덕분에 그는 지독한 평판을 얻게 되었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로베르 사전(Robert)』에 따르면, ‘마키아벨리적’ 인간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술수를 부리고, 불성실하며,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 자신은 결코 ‘마키아벨리적’이지 않았다. 그의 고향 피렌체와 이탈리아의 현실을 놓고 행한 성찰은 특정한 역사적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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