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고대사

  • 군데스트루프 가마솥: 덴마크 습지에서 잠들었던 켈트의 은제 신비

    케르눈노스 신(군데스트루프 가마솥 세부 장식, 기원전 1세기) • 위키미디어 커먼즈 1891년 5월 28일, 덴마크 북부 군데스트루프(Gundestrup) 마을 인근의 라에보모센(Rævemosen) 습지에서 이탄을 캐던 22세의 덴마크 청년 옌스 쇠렌센(Jens Sørensen)은 삽이 단단한 금속 물체에 닿는 감촉을 느꼈다. 그것은 지름 69cm의 거대한 은제 원반이었다. 이어진 발굴 작업에서는 13개의 큰 판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지름 25cm의 원형 판 하나, 약 21×25cm 크기의 사각형 판 일곱 개, 그리고 21×44

  • 고고학: 굴복하지 않는 브르타뉴 갈리아인의 초상

    기원전 1세기 귀족의 초상으로 추정되는 이 흉상은 프랑스 코트도르모르 주에서 발굴되었다 ⓒ INRAP / SERVICE DE PRESSE최근 아스테릭스(Asterix) 시리즈 신간 출간만큼 화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브르타뉴에서 이루어진 갈리아 유적 발굴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생브리외(Saint-Brieuc) 인근 트레뮈종(Trémuson, 코트도르모르 주)에서 기원전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석조 조각상 네 점이 발견된 것이다. 물류 플랫폼 건설에 앞서 현장을 조사한 국립예방고고학연구소(Inrap) 고고학자들은 이번 발견

  • 오텡(Autun)에서 발굴된 초기 기독교 네크로폴리스, 갈리아 기독교의 여명을 밝히다

    프랑스 모르방(Morvan) 지역 오텡에서 진행 중인 석관 발굴 작업 ⓒ INRAP / SERVICE DE PRESSE프랑스 손에루아르(Saône-et-Loire) 주의 오텡(Autun), 고대 로마 시대의 이름인 아우구스토두눔(Augustodunum)은 갈리아 지역에서 기독교가 태동하던 시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를 간직한 도시다.1839년, 초기 기독교 교회였던 생피에르레스트리에(Saint-Pierre-lEstrier) 인근에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 언급이 발견되었다. 바로 4세기 대리석 판에 그리스어로 새겨진 펙토리

  • 폼페이 최후의 하루: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이 일어난 날

    1813년 피에르 앙리 드 발랑시엔느가 그린 작품. 분화 피해자들을 구하려다 숨진 장군이자 학자인 대(大) 플리니우스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다. 툴루즈 오귀스탱 미술관 소장 • 위키미디어 커먼스평온했던 마지막 나날들나폴리만에는 며칠째 가벼운 지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서기 62년의 대지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예측할 수 없는 작은 흔들림일 뿐이라 아무도 경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10월의 공기는 여전히 온화했다. 평화로운 해변 휴양 도시 폼페이의 상인들 노점과 저택들의 식당 과일 접시에는 무화과와 호두가 가득 담겨 있었다.수확은

  • 4,700년 세월의 주인공, 조세르 계단피라미드 14년 복원 끝에 재개방

    사카라 인근에 위치한 조세르 피라미드는 계단 형태라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 ISTOCKPHOTO1992년 지진으로 흔들린 최고령 피라미드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인 조세르 피라미드는 약 4,700년 전 사카라(Saqqara) 유적지 근처에 세워졌으며, 대대적인 보수 작업이 필요했다. 1992년 지진으로 크게 흔들린 이 고대의 기념비를 되살리기 위해 무려 14년의 세월이 걸렸다. 아치형 천장과 구조물들이 붕괴될 위험에 처하면서 일반 공개가 중단되었고, 유네스코와의 공동 복원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고왕국의 탄생을 알린 건

  • 코르시카 알레리아에서 발견된 에트루리아 귀족 여성의 지하 무덤

    2019년 코르시카 동부 평야 알레리아(Aléria)에서 발굴된 로마·에트루리아 공동 묘지 • PASCAL DRUELLE/INRAP/SERVICE DE PRESSE1년 전, 프랑스 코르시카 섬의 알레리아에서 풍부한 부장품을 갖춘 에트루리아 무덤이 발견되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연구 결과 이 무덤은 기원전 4세기에 살았던 부유한 여성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프랑스 국립 예방고고학연구소(Inrap)의 고고학자들은 2018년부터 알레리아의 라마존(Lamajone) 유적에서 로마 시대의 대규모 묘지 발굴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이 묘지는

  • 프랑스 나르본, 잠들어 있던 로마 시대 고대 묘지가 다시 살아난다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인 나르본 고대 네크로폴리스의 항공 사진 © INRAP/SERVICE DE PRESSE알프스에서 피레네까지, 로마의 관문 도시기원전 118년 로마가 건설한 식민 도시 나르보 마르티우스(Narbo Martius), 오늘날의 나르본(Narbonne)은 알프스산맥에서 피레네산맥까지 뻗어 있던 갈리아 나르보넨시스 속주의 수도였습니다. 동시에 로마 제국 서부 지중해권에서는 로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항구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이 일대 풍경 곳곳에는 로마가 남긴 흔적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천 개의 무덤1년 전, 프

  • 아그리피나: 황제들의 어머니가 되어 로마를 움직인 여인

    소 아그리피나(기원후 15~59년) 초상화, 작가 미상 • WIKIMEDIA COMMONS아우구스투스의 증손녀, 게르마니쿠스 장군의 딸, 티베리우스의 조카딸, 칼리굴라의 누이이자 클라우디우스의 아내, 그리고 네로의 어머니 — 소 아그리피나는 로마에서 가장 고귀한 혈통을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신분 때문에 그녀는 직접 권력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충분히 남자들을 조종해, 그들 손을 통해 성공적으로 통치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죠.황실, 독사의 둥지소 아그리피나는 기원후 15년 11월 6일 라라 우비오룸(오늘

  • 테오도시우스 1세,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로 선포하다

    테살로니카 칙령과 국교화의 시작동서 로마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가 된 테오도시우스 1세는 380년 2월 28일 테살로니카 칙령을 반포하여, 제국 백성 모두에게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들이 따르는 카톨릭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명했습니다. 이 결정은 단순한 정치적 선택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같은 해인 380년 직접 카톨릭 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제2차 세계공의회 소집그 이전까지 각지의 종교회의(시노드)는 니케아 신경의 교리를 실질적으로 집행하고 그리스도론 논쟁을 종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테오도시우스의 목표는 종교 문제에

  • 유대교와 기독교의 느린 이혼: 한 종교에서 갈라져 나온 수백 년의 긴 여정

    예수의 추종자들은 처음에는 그리스도인, 즉 유대교 안의 하나의 메시아 운동으로 불렸다. 이들이 하나의 독립된 종교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64년, 로마 대화재 무렵의 일이다. 기독교라는 명칭의 창시자는 비유대인(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던 사도 바울로 여겨지며, 바울은 오랫동안 기독교 반유대주의의 원점으로 지목되어 왔다.성전 파괴의 공백을 틈타 번진 기독교기독교화는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132년 예루살렘이 성지로서의 위상을 잃으면서 남겨진 공백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이러한 전제는 기독교인들이 스스로를 참 이스라엘

  • '교황'은 로마 주교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초기 교회의 숨은 역사

    초기 로마의 주교들에 대해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습니다. 미사 경문에 새겨진 이름들, 성벽 밖 성 바오로 대성당에 이어진 초상화 연작, 그리고 카타콤바 속 교황들의 지하 묘소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의 기억은 사실 시기적으로 늦게 형성되었으며, 상당 부분 후대의 창작에 가깝습니다. 검증 가능한 역사는 2세기 중반에서야 비로소 시작됩니다.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던 초기 교회의 리더십 교회 공동체를 이끄는 직분 자체가 로마에서 오랫동안 분명하게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160년경에는 주례자(프레시데스)가 성찬을

  • 순교자들의 시간: 로마 제국의 '대박해'와 기독교인들의 시련

    서기 303년,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격렬하고도 긴 기독교 박해, 이른바 대박해(Great Persecution)가 막을 올렸습니다. 이 박해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수많은 신앙인들에게 어떤 시련을 안겨주었을까요?역사상 가장 길고 격렬한 박해대박해는 일련의 대대적인 박해 가운데 세 번째 사건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된 극심한 폭력을 직접 목격한 이들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동시에 가장 오래 지속된 박해이기도 했습니다. 서기 303년 2월부터 304년 2월 사이에 반포된 네 차례의 제국 칙령으로 시작되어, 이탈리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이미

  • 고대 문화에 열려 있던 초기 기독교

    국제어 그리스어로 전파된 복음기독교는 태초부터 당시 국제어이자 문화의 언어였던 그리스어로 설교되었습니다. 신학은 헬레니즘으로부터 어휘와 개념을 차용하여 이미 풍부해진 상태였던 유대인들의 그리스어 성경 번역본, 즉 칠십인역(셉투아긴타)을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리스어가 결코 기독교인들에게 성스러운 언어로 간주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선교가 진전된 지역의 언어들—라틴어, 시리아어, 콥트어—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현지에 뿌리내렸습니다.지식인들이 이끈 반기독교 논쟁반기독교 논쟁은 정치인보다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되

  • 그리스 신화 속 아마존의 영웅적 여왕들, 펜테실레아와 안티오페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아마존(아마조네스)은 용맹한 여전사들로 이루어진 부족을 가리키며, 그들을 다스리던 여왕들은 대부분 전장에서 영웅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오늘은 트로이 전쟁과 얽혀 비극으로 끝난 두 여왕, 펜테실레아와 안티오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펜테실레아와 아킬레우스스미르나 출신 시인 퀸투스가 지은 『호메로스 사후 이야기(Posthomerica)』에는 트로이의 동맹이었던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아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람의 신의 아내가 선물한 빠른 준마를 타고 전장에 나선 펜테실레아는 그리스군 최강의 전사 아킬레우스

  • 아리스토파네스와 함께 웃다: 신랄하게 무는 풍자의 조각들

    고대 그리스 희극의 거장 아리스토파네스는 권력자, 철학자, 전쟁까지 아테네 사회의 모든 것을 웃음거리로 삼았습니다. 그의 희곡 속 날카로운 풍자는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해지며, 당대 아테네의 정치와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아테네의 거물, 솟아오른 가죽공장 주인의 아들 클레온클레온은 부유한 가죽공장 주인의 아들로, 페리클레스 사후 아테네 정치 무대에 등장해 스파르타와의 전쟁을 부추겼습니다. 뛰어난 웅변으로 시민들을 교묘히 조종하던 이 호전적인 정치인은 아리스토파네스가 가장 즐겨 공격한 대상이었습니다.공격

  • 사카라의 '석관 광산'에서 깨어난 2,500년 전 관 59구

    사카라의 우물(수직 매장 갱)에서 발굴된 관들은 2,500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보존 상태를 보여준다 • AFP / KHALED DESOUKI이집트 고고학자들은 밧줄에 몸을 맡긴 채 깊이 12미터에 이르는 좁은 매장용 수직 갱 속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중 한 곳에서, 카이로 남쪽 사카라 유적에서 보존 상태가 탁월한 관 59구를 발견한 것이다. 이집트에서 중요한 발견이 있을 때마다 그러하듯, 관광·유물부 장관 칼레드 엘아나니가 직접 현장에 나서 이 소식을 공식 발표했다. 발굴된 목관은 약 2,500년 전, 기원

  • 러시아에서 발굴된 2,500년 전 여전사 무덤, 스키타이 '아마존'의 실체

    러시아에서 발굴된 아마존 무덤 중 하나가 발굴 조사되고 있는 모습 • INSTITUTE OF ARCHAEOLOGY RAS / PRESS SERVICE약 2,500년 전, 오늘날의 러시아 땅에 자리한 고대 묘지에 네 명의 스키타이 여전사가 무기와 장비를 온전히 갖춘 채 하나의 무덤에 안치되어 있었다.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소속 고고학자들이 보로네시 지역 데비차 마을 인근에서 이들의 유해를 최근 발굴하면서, 신비로운 아마존에 대한 단서들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이 유적지는 총 19기의 분총(무덤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000년대

  • 본디오 빌라도: 예수와 바라바 사이, '인민의 선택'의 역사적 진실

    복음서 속 두 개의 선택지: 예수와 바라바정경 복음서에서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감옥에 갇혀 있던 정치적 활동가 바라바(Barabbas)를 풀어줄 것인지, 아니면 예수를 풀어줄 것인지 선택할 기회를 제안합니다. 흥미롭게도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담은 bar-abbas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의 분신처럼 보이게 하며, 동시에 그의 반면교사적 모델로 기능합니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교부들은 이 이름을 스승의 아들이라는 뜻의 bar-rabbi로 수정하려 하기도 했습니다.마르코 복음이 그리는 바라바의 모습71년부

  • 본디오 빌라도와 예수의 대면, 외경 ‘빌라도 행전’이 기록한 재판 현장

    빌라도 행전, 재판의 기록서기 320년대부터 380년대 사이에 편찬된 『빌라도 행전』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기록한 문헌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책을 실제 사건과 같은 시대에 작성된 공식 기록물로 여겼습니다. 『니고데모 복음』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예수의 시신을 매장하도록 빌라도를 설득한 니고데모에게서 비롯된 호칭입니다. 이 재판 기록의 핵심 목적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돌리고, 빌라도의 죄를 덜어주는 데 있습니다.빌라도, 예수를 앞으로 불러들이다예수는 ‘왕’으로서 소환되며, 이는 유대인들의

  • 칼리굴라의 마지막 아내 밀로니아 카에소니아, 폭군과 운명을 함께한 여인

    칼리굴라가 끝내 버리지 않은 여인 로마 황제 칼리굴라는 세 번째 결혼에서 밀로니아 카에소니아(Milonia Caesonia)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녀는 칼리굴라의 여러 아내 중 유일하게 폐출당하지 않고 끝까지 곁에 남은 인물이었습니다. 카에소니아는 귀족 출신도 아니었고, 미모나 젊음도 갖추지 못한 여인이었습니다. 가벼운 평판을 가진 데다 이미 세 딸을 둔 어머니였습니다. 그럼에도 칼리굴라가 그녀를 사랑한 이유는 자신만큼 방탕하고 타락한 여자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반면 일부에서는 카에소니아가 칼리굴라에게 영구적으로 제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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