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유럽의 역사

  • 9세 소년왕 헨리 3세의 위태로운 즉위: 내전과 프랑스 침공 속 플랜태저넷 왕조의 생존기

    ※ 본문은 댄 존스(Dan Jones)의 『플랜태저넷』에서 발췌·재구성한 내용입니다.존 왕의 죽음, 그리고 9세 소년에게 남겨진 분열된 왕국악명 높은 무지왕(Lackland) 존은 1216년 10월 19일 뉴어크온트렌트(Newark-on-Trent)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프랑스의 침공으로 유린당하는 분열된 왕국이었습니다. 죽은 왕에 맞선 고귀한 반란 귀족들이 소집하고 프랑스 왕태자 루이(훗날 루이 8세)가 이끄는 군대는 나라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고 있었고, 왕위를 물려받은 아홉 살 아이 헨리 3세에게는 감당하기 어

  • 영국 의회주의의 기원: 헨리 3세와 시몬 드 몽포르, 의회 민주주의는 이렇게 탄생했다

    영국 플랜태저넷 왕조를 다룬 책 『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최근 런던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을 두고 여러 언론은 이를 의회 민주주의의 요람에 대한 공격이라 표현하며 영국 의회 제도의 탄생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플랜태저넷 왕조를 다룬 신간에서 헨리 3세(1216~1272)를 헌정한 장에 마련한 이 주제의 절을 다시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그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1188년 알폰소 9세(Alfonso IX)가 레온에서 소집

  • 알프레드 대왕의 딸, 메르시아의 여주인 애설플래드

    넷플릭스 드라마 바이킹스(Vikings)와 버나드 콘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라스트 킹덤(The Last Kingdom)의 인기로, 앵글로색슨족과 바이킹(데인족)이 잉글랜드의 패권을 놓고 벌인 투쟁사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습니다. 본 블로그에서도 이 역사의 초반부를 다루며 색슨족과 데인족의 관계, 그리고 알프레드 대왕에 대한 글을 다룬 바 있습니다. 메르시아 왕국과 바이킹의 침공 오늘은 알프레드 대왕의 후손들, 특히 그의 딸이자 메르시아의 여주인(Lady of the Mercians)으로 불리는 애설플래드(Æthelflæd)에 초점

  •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여왕, 아키텐의 엘레오노르(1)

    ※ 본문은 저서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1154년 12월, 앙주의 헨리(Henry of Anjou)는 웨스트민스터에서 헨리 2세로서 잉글랜드 국왕 대관식을 거행하며, 이후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일부를 다스리게 될 플랜태저넷(Plantagenet) 왕조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중세를 대표하는 가장 놀라운 인물 중 한 명, 그의 아내 아키텐의 엘레오노르(Eleanor of Aquitaine)가 함께하고 있었다.엘레오노르는 헨리보다 아홉 살 연상

  •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프랑스와 영국의 여왕 (2부)

    도서 『플랜태저넷 왕가』에서 발췌 왕자들의 탄생과 플랜태저넷 왕가의 기반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시리즈 1부는 그녀가 헨리 2세와의 사이에서 첫아들 윌리엄을 낳은 것으로 끝맺었다. 1155년 2월 28일, 부부의 차남 헨리가 태어났다. 장남 윌리엄이 요절하며 느꼈던 슬픔은 연이어 태어난 왕자들로 기쁨이 바뀌었다. 마틸다(1156), 리처드(1157), 제프리(1158)가 차례로 태어났고, 이후 레오노르(1162), 조안(1165), 존(1166/1167)이 뒤따랐다. 이 많은 자녀가 성년까지 생존함으로써 왕위 계승과 갓 탄생한 플랜

  • '스트롱보우' 리처드 드 클레어, 아일랜드를 정복하고 영국 침공의 막을 연 노르만 기사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이야기입니다. 상징에 불과했던 아일랜드의 최고왕 중세 초기부터 아일랜드에는 최고왕(High King)이라는 지위가 존재했다. 다만 섬은 코노트, 아일렉, 에르기알라, 얼스터, 미데, 렌스터, 오소리, 먼스터, 톰몬드 등 독립된 왕국들로 나뉘어 있었다. 최고왕은 다른 왕들 위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라기보다는, 각지의 왕들로부터 봉건 영주로서 의례적인 경의를 받는 상징적 존재에 가까웠다. 각 왕은 자신의 영토 안에서 자율성을 유지했으며, 최고왕의 실제 영향력이 어디

  • 니콜라 드 라 헤이: 링컨 성의 수호자이자 링컨셔의 첫 여성 보안관

    격동의 시대, 영국의 운명을 바꾼 여인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 잉글랜드는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1189년부터 사자심왕 리처드 1세가 통치했지만, 그는 10년 재위 기간 중 고작 6개월만 잉글랜드 땅에 머물렀다. 십자군 원정과 프랑스 전쟁을 위한 자금 마련에 몰두했던 그는 런던을 살 사람이 있다면 팔아버리겠다고까지 말했다고 전해진다. 왕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과 귀족들의 생존 1190년부터 1194년까지 리처드가 성지와 독일에서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동생 존(후일의 무지왕 존)은 왕위를 찬탈하려 시도했다. 비록 실

  • 헨리 7세, 아서왕 귀환 예언의 성취였을까? 튜더 왕조에 숨겨진 웨일스 혈통의 비밀

    신화 속 아서왕과 그의 고귀한 기사들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돌에 꽂힌 검 엑스칼리버, 멀린의 마법, 아서와 기사들이 처녀를 구하고 괴물과 악에 맞선 카멜롯 성 원탁의 무용담, 성배 탐색, 그리고 기네비어와 랜슬롯의 배신 이야기까지. 전설에 따르면 아서는 바돈산 전투에서 아들 모드레드에게 치명상을 입었고, 멀린의 주문 덕분에 아발론 섬으로 옮겨져 보호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큰 위기가 닥치면 돌아와 조국을 침략자들로부터 구하고 승리로 이끌 것이 약속되어 있지요.이 글의 목적은 아서 신화에서 전설과 현실

  • 에드워드 2세의 죽음, 왜 미스터리로 남았나? 살해설과 탈출 음모론의 진실

    『플랜태저넛(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1326년, 에드워드 2세는 영국의 왕좌에 있었지만 그의 통치는 재앙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버지 에드워드 1세는 윌리엄 월리스를 격파하고 무덤에 스코틀랜드의 망치라는 전설을 새긴 위대한 롱생크(Longshanks)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에드워드 2세의 치세는 프랑스와 스코틀랜드에서의 군사적 패배로 점철되었고, 그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1314년 배녹번 전투였습니다. 이 패배 이후 로버트 1세는 잉글랜드로부터 독립한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위대한 에드워드

  • 사자왕 리처드는 동성애자였을까? 중세 사료로 검증한 찬반 논거

    상단 이미지는 『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입니다.논쟁의 출발점: 단정보다 검증이 먼저평소 블로그와 페이지에 남겨주시는 댓글 대부분은 격려와 긍정적인 반응이지만, 가끔은 글의 주제나 다루어진 국가가 집필자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글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런 논평은 대개 깊이 있는 근거 없이 상식이나 자격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사자왕 리처드(리처드 1세, 코라손 데 레온)와 그를 다룬 글들을 향해 동성애를 명백히 단언하는 댓글 여럿을 접했습니다.영국 왕이 동성애자였는지

  • 브르타뉴의 아르투르, 존 왕의 손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다

    브르타뉴의 아르투르(Arthur of Brittany)라는 이름은 대중에게 그리 친숙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조부모인 아키텐의 엘레오노르(Eleanor of Aquitaine)와 잉글랜드의 헨리 2세(Henry II), 그리고 삼촌인 사자심왕 리처드(Richard the Lionheart)와 무지왕 존(John Lackland)은 역사적으로 훨씬 더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특히 존 왕은 조카 아르투르의 짧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운명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존을 최악의 잉글랜드 군주로 평가하는 역사가들의 주된 근거 역시 이

  • 자유보다 명예를 택한 왕, 런던 사보이 궁에서 최후를 맞은 프랑스 장 2세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 중 발췌선왕(善王)이라 불렸지만, 평탄하지 않았던 즉위선왕(le Bon)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장 2세(Jean II)는 1350년 프랑스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라를 맡은 시기는 결코 좋은 때가 아니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 유럽을 덮치기 시작한 흑사병은 한창 절정에 달해 있었고, 프랑스는 필리프 4세 미남왕 이후 왕조의 급격한 공백으로 내부적으로도 크게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그의 세 아들 — 루이 10세, 필리프 5세, 샤를 4세 — 가 차례로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요

  • 헤이스팅스 전투 950주년: 해롤드 고드윈슨의 윌리엄 충성 맹세, 진실은 무엇인가?

    헤이스팅스 전투 950주년을 맞아, 1066년 전투 이후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을 완성한 결정적 사건들을 되짚어본다. 앞서 1066년, 노르만디의 엠마, 정복자 윌리엄의 대관식, 에드거 애설링, 스베인 포크비어드 등을 다룬 글들에서 이 시기를 조명한 바 있다. 두 경쟁자, 하나의 왕좌 오늘은 헤이스팅스에서 맞붙은 색슨 왕 해롤드 고드윈슨과 노르만디 공작 윌리엄의 대결 2년 전, 1064년경에 벌어진 한 특정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당시 두 사람은 사망한 에드워드 고백왕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었다. 해롤드는 위탄(색슨 자

  • 1797년 우스터 대성당에서 발견된 '무지왕' 존 왕의 유해, 로빈 후드 전설과 얽힌 진짜 이야기

    『더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예상치 못한 발견이 만드는 역사고고학 발굴 현장에서는 때때로 뜻밖의 장소에서 중요한 인물의 유골이 발견되어 언론의 주목을 받곤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잉글랜드 왕 리처드 3세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발견 자체보다 그 과정이 더욱 흥미롭습니다. 영국 우스터 대성당 한가운데에 놓인 왕의 무덤에서 유해가 발견되면서, 그 소식은 당시 잉글랜드 전역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제단을 가로막은 왕의 무덤, 성직자의 결정1797년 여름, 영국 우스터. 대성당을

  • 영국 성공회는 헨리 8세의 이혼만으로 탄생했을까? 위클리프와 틴데일이 뿌린 종교개혁의 씨앗

    성공회 분열은 헨리 8세의 변덕으로 하룻밤에 태어난 것일까?성공회(잉글랜드 국교회)의 탄생과 로마와의 단절을 다룬 여러 글에서 자주 제기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영국 성공회는 과연 헨리 8세가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볼린과 재혼하려는 개인적 욕망 때문에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진 것일까? 앞서 은총의 순례(Pilgrimage of Grace)를 다룬 글에서 우리는 이미 1536년이라는 시점을 근거로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습니다. 오늘은 그 답을 더 깊이 파고들어 보겠습니다.대륙을 바꾼 두 가지 무기: 번역된 성경과 인쇄술로마

  • 헨리 4세 '볼링브로크', 잉글랜드 왕위를 찬탈한 남자

    이 글은 역사학자 댄 존스(Dan Jones)의 저서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어린 나이에 즉위한 리처드 2세1399년, 잉글랜드는 리처드 2세의 통치 아래에 있었다. 그는 아버지인 흑태자(블랙 프린스)의 요절로 인해 할아버지 에드워드 3세가 서거하자 왕관을 물려받았다.리처드는 1376년 즉위 당시 겨우 열 살이었고, 어린 나이부터 1381년의 소위 농민 반란(Peasants Revolt)과 같은 시련에 직면해야 했다. 즉위 초기 그는 아버지의 동생들인 에드먼드와 존 오브 곤트(John

  • 라이온하트 리처드: 전설과 역사 (1부)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이라는 책에서 발췌한 글입니다.라이온하트 리처드, 즉 사자심왕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눈앞에 그려지는 것은 제3차 십자군에서 살라딘과 맞서 싸운 잉글랜드의 위대한 전사이자 명성 높은 왕의 기사도적인 모습입니다. 로빈 후드나 아이번호 같은 전설적 인물들의 모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그의 이미지 또한 함께 떠오르지요.그러나 이 유명 인물의 역사적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가면, 전사이자 군 지휘관으로서의 라이온하트 리처드와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1세를 구분해야 합니다. 전자로서의 그는 명성에

  • 사자심왕 리처드: 전설과 역사(2부)

    본 글은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이라는 책에서 발췌·정리한 내용입니다.위험천만한 귀국 여정1부에서는 1192년 9월, 사라딘과 3년 휴전 협약을 체결하고 잉글랜드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순간까지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귀환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성지에서 잉글랜드까지 바다를 건너는 항해는 한 해 중 가장 위험한 시기에 해당했고, 육로 역시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리처드는 옛 적과 새로운 적들의 영토를 지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두 사자왕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막고 싶어 하는 인물들이었습니

  • 1066년, 정복자 윌리엄의 런던 폭력적 대관식

    이 글은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이라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1066년, 잉글랜드 역사의 기로앞선 글에서 우리는 1066년이 잉글랜드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음을 다룬 바 있습니다. 나라의 운명은 단 며칠 사이에 벌어진 세 번의 전투에서 결정되었습니다. 풀퍼드 전투에서는 색슨 왕의 동생 토스티그의 지원을 받은 노르웨이 왕 하랄 하르다라가 색슨군을 격파했고,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에서는 하럴드 고드윈슨 왕이 이끄는 색슨군이 노르웨이군을 물리치고 하랄과 토스티그를 죽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 '더블린의 왕' 램버트 심넬, 초대 튜더 왕 헨리 7세의 왕좌를 흔든 왕위 수수께끼

    본문은 『플랜태저넷(Plantagenet)』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잉글랜드의 왕이 런던이 아닌 더블린에서 즉위했다는 것은 지극히 기묘한 일입니다. 게다가 런던에는 이미 즉위하여 통치 중인 군주가 있었다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1487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훗날 더블린의 왕으로 불린 이 남자가 사기꾼이었는지, 아니면 잉글랜드 왕위의 적법한 후계자였는지에 대한 추측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먼저 장미 전쟁을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요크 가문과 랭커스터 가문이 잉글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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