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유럽의 역사

  • 영국 왕관의 자랑 '흑태자의 루비', 정체는 스페인산이었다

    영국 왕실의 상징, 제국 왕관영국 왕실을 대표하는 상징이라면 단연 제국 왕관(State Imperial Crown)입니다. 1837년 왕위에 오른 빅토리아 여왕 이래, 영국 군주들은 대관식이나 의회 개회식처럼 가장 거룩하고 격식 있는 국가 의전에서 이 왕관을 써 왔습니다.제국 왕관에는 값나가는 보석과 귀금속이 놀랄 만큼 많이 박혀 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 앞면 십자가 자리에 화려하게 박힌 거대한 붉은 보석입니다. 바로 흑태자의 루비(Ruby of the Black Prince)로 불리는 보석인데요. 왕관과 보석 자체는

  • 현자 알폰소 10세가 훗날의 에드워드 1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한 날 — 1254년 부르고스의 숨은 인연

    『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 중세 유럽의 가장 유명한 군주 두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카스티야의 현자(El Sabio) 알폰소 10세와 스코틀랜드의 망치로 불린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입니다. 웨일즈를 정복하고 윌리엄 월리스, 로버트 브루스 같은 스코틀랜드의 영웅들과 맞서 싸운 이 잉글랜드 왕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와 여러 페이지에서 이미 여러 차례 다룬 바 있습니다. 아래 글들을 통해 에드워드 1세가 이룬 위업의 크기를 가늠해 보실 수 있습니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 대 웨일스 왕자 르웰린 에드워드 1세, 웨

  • 웅카스티요의 여영주 타레사 데 베아른, 아라곤의 라미로 2세에 맞선 여성 권력자

    12세기 초반, 이베리아 반도의 그리스도교 왕국들은 국경을 확정하고 정체성을 정립하려 분투하는 동시에, 비시고트 왕조의 후예인 이웃 왕국들과 무슬림이 점령한 옛 히스파니아 영토를 놓고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알폰소 1세의 죽음과 계승 위기 1134년, 전사왕 알폰소 1세가 프라가 전투에서 화살에 맞아 사망하면서 아라곤 왕국은 심각한 계승 위기에 직면했다. 1104년 형 페드로 1세에 이어 즉위한 알폰소 1세는 1076년부터 아라곤과 나바라의 왕위를 겸임해왔다. 그는 카스티야와 무슬림 양쪽으로부터 영토를 빼앗아 1118년 사라

  • 에우독시아 콤네나, 아라곤 왕 알폰소 2세에게 파혼당한 비잔티움 공주이자 '정복왕' 하이메 1세의 할머니다.

    알폰소 2세 금욕왕(El Casto)은 아라곤 여왕 페트로닐라와 바르셀로나 백작이자 아라곤 공(公) 라몬 베렝게르 4세의 아들로, 1164년 아라곤 왕위에 올랐다. 당시 모든 군주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중세 기독교 왕국 간의 왕조 동맹과 우호 조약을 위해 적합한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이었다.카스티야와의 혼약, 그리고 파혼알폰소의 경우, 아버지가 생전에 이미 그의 아내로 카스티야의 산차(Sancha de Castilla)를 지목해 두었다. 산차는 알폰소 7세 국왕의 딸이자 카스티야 군주 알폰소 8세의 자매였다.

  • 카스티야의 엘리자베스, 초대 요크 공작부인이자 영국 두 왕의 증조모

    본 글은 『더 플랜태저넛(The Plantagenets)』이라는 책에서 발췌하여 재구성했습니다.카스티야와 잉글랜드를 잇는 혼맥이전 포스팅에서 우리는 카스티야의 페드로 1세, 그가 마리아 데 파디야(María de Padilla)와 맺었던 관계, 그리고 트라스타마라의 엔리케(Enrique de Trastámara)와 벌인 왕위 다툼에서 잉글랜드와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두 딸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의 두 아들과 혼인시켰던 이야기를 다룬 바 있습니다. 장녀 콘스탄사(Constanza)는 존 오브 갠트(John of Gau

  • 잉글랜드 플랜태저넷 왕조의 피를 이은 카스티야의 엘리자베스 1세, 가톨릭 군주의 숨겨진 혈통

    요즘은 TV 드라마 덕분에 이사벨의 모습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가톨릭 군주로 불리는 카스티야의 엘리자베스 1세(이사벨 1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한 가지 이야기를 짚어보려 합니다. 바로 그녀의 혈관에는 유명한 잉글랜드 왕조 플랜태저넷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혈연 덕분에 문학, 영화, TV에 자주 등장하는 잘 알려진 인물들이 그녀의 가계와 얽히게 됩니다.플랜태저넷 왕조에는 아키텐의 엘레오노르(Eleanor of Aquitaine, 매우 유명한 인물)의 남편 헨리 2세의 아들들, 즉 사자심왕

  • 카스티야 '잔혹왕' 페드로 1세가 평생 사랑한 여인, 마리아 데 파디야의 비밀 결혼과 운명

    카스티야의 페드로 1세와 평생을 함께한 마리아 데 파디야적들에 둘러싸인 왕, 페드로 1세의 통치잔혹왕(El Cruel)으로 알려진 카스티야의 페드로 1세는 아버지 알폰소 11세가 서거한 직후인 1350년 카스티야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통치는 왕국 안팎의 수많은 적들과의 끊임없는 대립, 그리고 격정적인 연애사로 특징지어집니다.왕국 내부에서 가장 두드러진 적은 이복형제들이었습니다. 트라스타마라 백작 엔리케가 이끄는 이들은 알폰소 11세와 도냐 레오노르 데 구스만 사이에서 태어난 친자녀들이었죠. 여기에 사촌인 아라곤의 유아들, 특히

  • 제임스 본드의 원형이 된 남자, '스파이 에이스' 시드니 라일리의 실화와 미스터리한 죽음

    잉크를 아낌없이 쏟아낸 스파이가 있다면 단연 시드니 라일리(Sidney Reilly)를 꼽을 수 있습니다.이안 플레밍이 인정한 본드의 원형제임스 본드 소설 시리즈의 작가이자 한때 영국 비밀 요원으로 활동했던 이안 플레밍(Ian Fleming)은, 전설적인 스파이 캐릭터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당대 가장 유명했던 모험가 시드니 라일리에게서 부분적으로 영감을 받았다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 라일리의 모험 파트너였던 R.H. 브루스 록하트(R.H. Bruce Lockhart) 역시 1932년 회고록을 출간하며 두 사람이 함께한 모험들과, 자신

  • 프랑코가 직접 훈장을 수여한 KGB 두더지, 킴 필비의 이중 생활

    킴 필비(Kim Philby)는 소련을 위해 활동한 영국 스파이 중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오랫동안 영국 정보기관의 요직에 있으면서도, 손에 쥔 거의 모든 정보를 소련 측에 넘기며 완벽한 이중 생활을 이어갔다.그러나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바로 스페인 내전 당시 필비가 프랑코 총통 본인으로부터 군사공로십자훈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소련 스파이에게 적진의 최고 지도자가 훈장을 수여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유례없이 짙은 대목이다.NKVD의 장기 침투 작전, 케임브리지 서클1930년대 초, KGB의

  • 선한 마그누스(Magnus the Good), 노르웨이 출신의 덴마크 왕(1042~1047)

    중세 북유럽 삼국인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의 역사는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덴마크의 국왕이 스웨덴, 그리고 무엇보다 노르웨이의 왕위까지 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한 마그누스(Magnus the Good)의 경우는 독특합니다. 그는 노르웨이 사람으로서는 유일하게 덴마크 왕위에 오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노브고로드에서 자란 왕자 1024년에 태어난 마그누스는 노르웨이 국왕 성왕(聖王) 올라프 2세(Olav II the Saint)와 정부 알브힐드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였습니다. 1028년 아버지가 러시

  • 덴마크의 마가렛 여왕과 칼마르 연합(1397): 스칸디나비아 삼국 통일의 숨은 설계자

    중세 시대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라는 스칸디나비아 삼국 사이의 관계는 긴밀했지만, 늘 우호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전 글에서 이런 삼국 관계를 다룬 적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장면은 단연코 소위 칼마르 연합(Kalmar Union), 즉 세 왕국을 하나의 왕관 아래 묶은 통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적 업적은 무엇보다 한 여성의 정치적 역량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바로 덴마크의 마가렛 여왕입니다.어린 나이의 결혼, 그리고 운명의 시작1353년에 태어난 마가렛은 덴마크 국왕 발데마르 4세와 왕비 헬비히의 딸이었습

  • 플랜태저넷 왕조와 장미 전쟁 — Tercios Viejos 서점 역사 강연 풀 버전 공개

    중세 잉글랜드 역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께 좋은 소식을 전합니다. 어제 역사 전문 서점 Tercios Viejos에서 플랜태저넷(Plantagenets) 왕조와 장미 전쟁(Wars of the Roses)을 주제로 한 강연을 성공리에 마쳤습니다.이번 강연에서는 백년전쟁 이후 혼란기를 맞아 요크 가문과 랭커스터 가문이 왕위를 두고 벌인 장미 전쟁의 배경과 전개 과정, 그리고 플랜태저넷 왕조의 운명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강연 전체 녹음은 현재 유튜브와 iVoox에 업로드되어 있으며, 아래 링크에서 지금 바로 청강하실 수 있습니다.▶ iV

  • 보스워스 전투와 스탠리 경의 딜레마: 잉글랜드 왕조를 바꾼 단 하루, 1485년 8월 22일

    오늘인 1485년 8월 22일, 잉글랜드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은 전투가 레스터셔의 보스워스 논에서 벌어졌습니다. 바로 장미전쟁(백년에 걸친 요크 가문과 랭커스터 가문의 왕위 다툼)의 마지막 격돌, 보스워스 전투(Battle of Bosworth Field)입니다.이날 요크 왕조의 마지막 국왕 리처드 3세는 전장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잉글랜드 역사상 전투에서 전사한 마지막 국왕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헨리 튜더가 새 왕으로 즉위하며, 이후 100여 년간 잉글랜드를 통치할 튜더 왕조의 막이 올랐습니다.왜 보스

  • 『플랜태저넷』 개정·확대·삽화판 발매 — 지도·가계도로 더 깊어진 중세 영국 왕조사

    『플랜태저넷』 개정·확대·삽화판, 10월 1일 발매중세 영국 왕조사의 대표작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의 새로운 개정·확대·삽화판이 10월 1일부터 정식 판매에 들어갔습니다. 아래에 안내된 방식으로 지금 바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이번 신판은 무엇이 달라졌나?이번 에디션은 왕조의 군주들과 그들이 이룬 사건에 관한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한 점이 이전 버전과 가장 큰 차이입니다. 여기에 저자 소장 아카이브의 풍부한 그래픽 자료가 더해졌고, 플랜태저넷 왕조와 얽힌 장소들을 직접 찾아간 영국 현지 답사의 결실인 지도와

  • 베르나르드 코넬과 '더 라스트 킹덤' — 우베다 역사소설 콘테스트 팟캐스트 특별 협업 에피소드

    얼마 전 저는 우베다 역사소설 콘테스트(Ciudad de Úbeda Historical Novel Contest)의 공식 팟캐스트에 출연해, 제가 가장 아끼는 역사소설 작가와 가장 사랑하는 역사적 시대에 대해 이야기할 특별한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작가는 바로 베르나르드 코넬(Bernard Cornwell)입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그의 사가 『색슨족, 바이킹, 노르만인』의 첫 번째 소설, 즉 드라마 더 라스트 킹덤(The Last Kingdom)의 원작이 된 작품에 초점을 맞춥니다.이 자리에는 작가와 소설에 대한 깊은 열정을 공유하

  • 레 에스파뇰 쉬르 메르(1350): 윈첼시 해전 – 카스티야 함대가 플랜태저넷 왕가를 거의 전멸시킬 뻔한 날

    댄 존스의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백년전쟁을 이끈 명군주, 에드워드 3세 에드워드 3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한 명으로 손꼽힙니다. 열일곱 살이 채 되기 전에 통치권을 장악했고, 백년전쟁을 주도했으며, 크레시 전투와 푸아티에 전투라는 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물론 노력 없이 이룬 성과는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이 마주한 수많은 난제를 하나씩 해결해 냈습니다. 전임자들과 달리 의회와 귀족들과 협력하며 국정을 운영했고,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라면 병약했던 장남이자 후계자

  • 투르 조약(1444): 백년전쟁의 에필로그이자 장미전쟁의 프롤로그

    『더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글입니다.두 전쟁을 잇는 숨은 연결고리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백년전쟁(1337~1453)과 장미전쟁(1455~1485)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두 전쟁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두 전쟁이 벌어진 시기를 보면 거의 겹쳐 있고, 첫 번째 전쟁의 끝이 두 번째 전쟁의 시작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두 전쟁의 관계는 단순한 시간적 연속성을 넘어섭니다. 그 관계를 설명해 주는 연결고리가 바로 1444년 5월 22일 체결된 투르 조약(Treaty of Tours)입니다.아쟁쿠르

  • 카스티야의 가스코뉴 영유권 주장: 알폰소 8세와 1205년 원정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이라는 책에서 발췌피레네를 넘어선 플랜태저넷 제국앙주 제국 또는 플랜태저넷 제국으로 불린 이 왕조의 영토는 스코틀랜드에서 피레네 산맥까지 이르렀습니다. 잉글랜드의 헨리 2세가 된 앙주의 헨리는 어머니인 황후 마틸다와 아버지인 앙주 백작 조프루아에게서 물려받은 영지(잉글랜드, 노르망디, 앙주, 멘, 투렌)에 더해, 아내 아키텐의 엘레오노르가 가져온 아키텐 공국(가스코뉴 공국과 푸아투 백작령 포함)을 합쳤고, 이후 아들 조프루아의 혼인을 통해 브르타뉴 공국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플랜태

  • 잔다르크가 바꾼 운명, 영국과 프랑스 왕위를 동시에 차지한 소년 헨리 6세

    본문은 저서 『플랜태저넛』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헨리 6세는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그는 단 한 사람으로서 잉글랜드 국왕과 프랑스 국왕으로 동시에 대관식을 치른 유일한 인물이었죠. 하지만 그의 대관식은 급하게 준비될 수밖에 없었고, 어느 나라에서도 평화롭게 통치하지 못했으며, 결국 두 왕관을 모두 잃고 런던탑에 유폐된 상태에서 의문스러운 정황 속에 생을 마감했습니다.태어나기 전부터 왕이 될 운명헨리 6세는 1421년 12월 6일 윈저 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였고, 어머니는 프

  • 헨리 5세: 아쟁쿠르의 영웅이자 영국과 프랑스 왕관 통합이라는 깨어진 꿈

    이 글은 『플랜태저넷가(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출생과 가문의 배경 헨리 몽머스(Henry of Monmouth)는 1387년 9월 17일, 같은 이름의 몽머스 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헨리 볼링브로크(훗날 헨리 4세)와 메리 드 보훈(Mary de Bohun)의 아들이다. 본래 그의 가문은 영국 왕위를 이을 운명이 아니었다. 에드워드 3세의 셋째 아들인 곤트 공작 존(John of Gaunt)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태어났을 때 왕위는 에드워드 3세의 장손이자 흑태자 에드워드 우드스탁(Ed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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