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유럽의 역사

  • 플랜태저넷 왕조(The Plantagenets): 300년 영국 왕좌를 지배한 '영화 속 왕조'의 탄생 비화

    《The Plantagenets》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살라딘, 토머스 베켓, 헨리 튜더, 잔 다르크, 윌리엄 월리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이들 모두는 1154년부터 1485년까지 무려 300년 넘게 영국 왕좌를 지배한 플랜태저넷(Plantagenets) 왕조의 군주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맞서 싸운 인물들입니다.플랜태저넷 왕조의 군주들은 문학, 영화, TV에서 반복적으로 주인공이 되어 왔습니다. 헨리 2세와 그의 아내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사자심왕 리처드, 존 왕(John Lackland),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 저주받은 성, 서들리 성: 소유주마다 불행이 닥친 영국 600년 역사의 현장

    원래 서들리 성(Sudeley Castle) 건물의 유적(사진: 저자 기록 보관소)아름다운 윈콤베(Winchcombe) 마을을 지나 영국 시골길을 따라 약 500미터만 걸으면 서들리 성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이 고즈넉한 성 안에는 역대 소유주들이 수백 년에 걸쳐 겪어온 불행한 운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랄프 보텔러, 잘못된 편을 선택하다서들리 성은 1443년 왕실 재무관으로 임명된 랄프 보텔러(Ralph Boteler)가 15세기에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은 결코 평온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두 왕가의 대립이

  • 폴커크 전투(1298)의 진실: 에드워드 1세 vs 윌리엄 월리스, 로버트 브루스 '반역설' 검증

    ※ 본 글은 『더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을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스털링 다리의 영웅, 윌리엄 월리스의 부상무명의 스코틀랜드 하급 귀족이었던 윌리엄 월리스(William Wallace)는 1297년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을 격파하며 일약 명성을 얻었고, 그 공으로 스코틀랜드 수호자(Guardian of Scotland)로 임명되었습니다.스털링 다리의 승리 이후 월리스가 이끄는 군대는 잉글랜드가 점령했던 스코틀랜드 영토를 거의 모두 되찾았습니다. 나아가 국내에 맞설 잉글랜드군이 없다는

  • 주차장에서 발견된 잉글랜드 왕, 리처드 3세 유해 확인의 전말

    ※ The Plantagenets 책에서 발췌한 항목 주차장 아래 잠들어 있던 왕 2012년, 리처드 버클리(Richard Buckley)가 이끄는 영국 레스터 대학교(University of Leicester) 연구진은 세계 고고학계를 놀라게 하는 발표를 내놓았습니다. 바로 도심 한복판 주차장에서 잉글랜드 왕 리처드 3세(Richard III)의 유해를 찾아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1485년에 전사한 왕의 무덤이 2015년에야 마련되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놀라운 이야기로 남습니다. 리처드 3세는 플랜태저넷 왕조의 마지막 국왕이었습니다

  • 플랜태저넷 가문의 흑양, 무지왕 존(John Lackland)

    플랜태저넷 가문의 흑양, 무지왕 존본 글은 댄 존스(Dan Jones)의 저서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문학과 영화가 그려온 이미지와 달리, 잉글랜드의 무지왕(無地王) 존은 그의 형이자 유명한 사자심왕(獅子心王) 리처드 1세보다 잉글랜드 역사에서 훨씬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존은 리처드보다 오래 재위했을 뿐 아니라 잉글랜드 국정에 더 많은 관심과 헌신을 기울였으며, 약 300년에 걸쳐 거의 모든 잉글랜드 국왕이 존의 후손이었습니다(사자심왕 리처드는 후嗣 없이 사망했습니다).잉글랜드를 등

  • 1362년, 영국 법정에서 프랑스어가 사라지다 – 노르만 정복 300년 만에 선포된 '영어 변론법'

    *『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놀랍게 들릴 수 있지만, 약 3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국의 재판정에 참석한 영국인들은 판사와 변호사가 자기들 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법정에서는 대부분 프랑스어가 통용되었고, 앵글로색슨족이 이 땅에 가져온 영어는 공식 언어의 자리에서 밀려나 있었던 것입니다.1066년 노르만 정복, 프랑스어 통치의 시작이 독특한 법률 관습의 기원은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이 이끈 침공으로 노르만족이 잉글랜드의 지배자가 된 10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

  • 1330년 노팅엄 성 습격 — 17세 에드워드 3세, 비밀 통로로 왕권을 되찾은 실화

    『더 플랜태저네츠(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 노팅엄 성이라 하면 누구나 로빈 후드와 노팅엄 보안관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오늘날까지도 독자들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허구이지요. 그러나 로빈 후드 전설이 생겨난 지 약 200년 뒤, 바로 그 노팅엄 성에서 전설의 궁수 모험에도 부끄럽지 않은 ‘실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한 장면이라 해도 믿기 어려울 만큼 극적인 이야기였습니다. 1327년 잉글랜드의 왕좌에는 에드워드 2세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정무를 총애하던 근신들—피어스 개버

  •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 대 웨일스 왕자 르웰린: '웨일스 왕자' 칭호의 탄생과 웨일즈 정복

    ※ 본 글은 『더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웨일즈 정복은 오랜 세월 잉글랜드 왕들의 숙원이었지만,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정면 야전 회피를 기본 전략으로 삼던 웨일스인들의 게릴라전과 험준한 지형은 침공군을 괴롭히는 커다란 장애물이었습니다.1257년 헨리 3세가 감행한 침공 역시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귀네드(Gwynedd)의 르웰린(Llywelyn)이 이끄는 웨일스인들은 잉글랜드군의 공격을 격퇴했을 뿐만 아니라, 이듬해에는 시몬 드 몽포르와의 대립(루

  • 에드워드 1세와 아서왕 전설: 잉글랜드가 웨일스에 보낸 상징적 메시지

    이 글은 『플랜태저넛(The Plantagenets)』이라는 책에서 발췌·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웨일스와의 불안정한 균형 지난 글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 대 웨일스의 리웰린에서 우리는 1277년 성탄절, 웨스트민스터에서 리웰린이 에드워드 1세 앞에 무릎을 꿇고 신하의 예를 올리는 장면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그 이후 몇 년 동안 리웰린과 그의 형제 다피드에게 남겨진 축소된 영지와 잉글랜드군이 웨일스 땅에서 차지한 정복지 사이에는 불안정한 균형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에드워드 1세는 웨일스에 씌운 굴레를 풀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 잉글랜드 왕위 계승자는 왜 '웨일스 왕자'인가? 에드워드 1세의 웨일스 정복과 칭호의 유래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 영국의 웨일스 정복을 다룬 연작 시리즈의 마지막 편(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 웨일스의 리웰린 왕자, 아서왕 전설에 관한 앞선 글 참조)에서 언급했듯이, 1282년 3월 잉글랜드 지배 하의 웨일스에서 새로운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봉기가 일어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는 조직화된 연합 운동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봉기의 지도자가 명목상의 웨일스 왕자 리웰린(Llywelyn)이 아니라 그의 동생 다피드(Dafydd)였다는 사실입니다

  • 십대 왕의 시련: 잉글랜드 리처드 2세와 '농민 반란'(1381)

    1377년, 불과 열 살의 나이에 리처드 2세는 할아버지 에드워드 3세의 사망으로 잉글랜드 왕위에 올랐다. 그의 아버지 흑태자 에드워드가 할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손자인 리처드가 왕위를 계승하게 된 것이다. (이 두 인물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의 별도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어린 왕을 둘러싼 복잡한 정세 어린 왕의 처지는 순탄치 않았다. 삼촌 랭커스터 공작 존 오브 곤트(John of Gaunt, 스페인어식 표기 후안 데 간테)가 이끄는 궁정 파벌을 중심으로 한 섭정 기간의 권력 다툼이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는

  • 루이스 전투(1264년)와 시몬 드 몽포르: 영국 의회 민주주의의 기원이 된 결정적 순간

    『더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입니다.2014년 5월 14일, 영국은 루이스 전투(Battle of Lewes, 1264년) 750주기를 기념했습니다. 많은 영국 국회의원들은 이 전투를 오늘날 민주주의의 직접적인 선례가 되는 역사적 이정표로 평가합니다. 이 전투가 지닌 의미와 역사적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로부터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1199년, 사자심왕(Lionheart)이라 불리던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가 사망하고 그의 동생인 존이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대중적인 통념과 달리

  • 헨리 1세의 계승 위기와 플랜태저넷 왕조의 탄생

    본 글은 『더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이라는 책에서 발췌·재구성한 내용입니다. 노르만 정복 이후, 운명을 바꾼 결혼 1066년 노르만인들의 잉글랜드 정복은 영국 역사의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 왕좌에 앉으면서 노르만 왕조가 개창되었고, 그 뒤를 이어 두 아들 차례로 즉위했습니다. 먼저 윌리엄 2세가, 그다음에는 헨리 1세가 왕이 되었지요. 헨리 1세에게는 윌리엄과 마틸다라는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적장자 윌리엄이 있었기에 왕위 계승은 안정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 척의 배가 침몰하면서

  • 보스워스 전투(1485): 리처드 3세의 최후, 플랜태저넷 왕조의 마지막 돌격

    『더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1485년 8월 22일, 잉글랜드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전투가 보스워스에서 벌어졌습니다. 리처드 3세의 왕실군과 헨리 튜더의 반군이 정면으로 충돌한 이 전투에서 리처드 3세는 패배하고 전사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300년 넘게 잉글랜드 왕좌를 지켜온 플랜태저넷 왕조의 종언을 의미했으며, 승리한 헨리 튜더는 새로운 튜더 왕조를 개창했습니다. 이 왕조는 훗날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처럼 영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군주들을 배출하게 됩니다.보스워스 전투에 대한 가장 널

  • 백년전쟁의 기원: 프랑스와 잉글랜드를 116년간 갈라놓은 갈등의 뿌리

    단행본 『플랜태저넛(The Plantagenets)』에서 발췌·재구성한 글입니다.백년전쟁: 116년에 걸친 프랑스–잉글랜드의 대결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무려 116년(1337~1453) 동안 맞서 싸운 전쟁이 바로 백년전쟁(Hundred Years War)이다. 크레시 전투, 푸아티에 전투, 아쟁쿠르 전투 같은 유명한 회전이 벌어졌고, 헨리 5세, 에드워드 흑태자, 잉글랜드 장궁병처럼 후대의 많은 관심을 받은 인물들도 등장했다. 셰익스피어 시대 이후 이 전쟁은 수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의 소재가 되어 왔다.그

  • 요크의 엘리자베스(Elizabeth of York): 장미전쟁을 끝내고 플랜태저넷과 튜더를 잇다, 헨리 8세의 어머니

    이 글은 도서 『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장미전쟁과 요크 가문의 승리15세기 잉글랜드에서 요크 가문과 랭커스터 가문이 벌인 장미전쟁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트에서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 1471년 테우크스버리 전투 이후 요크 가문은 경쟁 가문을 제치고 왕위 주장자 에드워드 4세에게 왕관을 확실히 씌우는 데 성공했습니다.에드워드는 미망인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하여 열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중에는 왕위 계승자 에드워드, 그의 동생 리처드,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가 있었

  • 로빈 후드의 원형이 된 색슨 영웅, '헤리워드 더 웨이크'의 반란

    『더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로빈 후드가 셰리우드 숲에서 노팅엄 보안관과 왕위를 빼앗긴 존 왕(John Lackland)의 노르만 군대를 괴롭히는 이야기는 문학과 영화를 통해 오랜 세월 사랑받아 온 고전적 서사입니다.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 역시 12세기 말 잉글랜드에서 벌어진 색슨족과 노르만족 간의 투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요.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로빈 후드 전설과 스콧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들보다 100여 년이나 앞서, 이미 또 다른 색슨 영웅이 노르만의 통치에

  • 조안나 플랜태저넷(Joanna Plantagenet): '무지왕' 존의 친딸이자 웨일즈 대군주 리웰린의 아내

    『더 플랜태저넛(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 역사 속 잉글랜드 왕 존(Juan Sin Tierra, 무지왕)은 형 사자심왕 리처드(Ricardo Corazón de León)를 배신하고 그가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음모를 꾸민 악명 높은 인물로 기억됩니다. 실제로 리처드는 십자군 원정 귀국길에 오스트리아의 포로로 잡혀 있었고, 이러한 이미지는 『로빈 후드』나 『아이반호(Ivanhoe)』 등 소설과 영화를 통해 한층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결점 투성이었던 이 존 왕은, 잉글랜드 땅에 머문 기간이 통치 기간 중

  • 왕관을 쓰지 못한 백년전쟁의 영웅, '흑태자' 에드워드의 승리와 비극

    『더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잉글랜드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군주가 될 뻔했으나 왕관을 쓰지 못한 인물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우드스톡의 에드워드(Edward of Woodstock), 즉 흑태자(The Black Prince)로 더 잘 알려진 웨일스 공입니다. 그는 백년전쟁 초기 프랑스군을 연파하며 잉글랜드를 정점으로 끌어올렸고, 그러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후 1세기 넘게 조국의 운명을 근본적으로, 그리고 유혈로 물들인 격변의 서막이 되었습니다.그는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의 장남이었습니다

  • 영국 에드워드 3세의 기나긴 왕위 계승기와 그 통치가 남긴 거대한 그림자

    이 글은 저서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유리 종잇장 위의 황태자훗날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는 에드워드 3세에게 인생은 처음부터 순탄해 보였습니다. 그는 당대 가장 위풍당당했던 두 군주의 손자였고,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의 장남이자 확고한 후계자였습니다. 아버지가 자연사하기만을 기다리면 왕위를 물려받아 후손들에게 밝은 미래를 남길 수 있을 것처럼 말입니다.할아버지들의 위상아버지 쪽 할아버지는 롱섕크스(Longshanks, 긴 다리)라 불리고 스코틀랜드의 망치(Hammer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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