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고대사

  • 발리 섬에서의 넷째 날 – 신과 악마의 세계, 그리고 자와 섬으로

    새벽 다섯 시, 논가의 차 한 잔으로 시작하는 아침4월 17일에도 역시 새벽 다섯 시경에 잠에서 깼다. 인도 시간으로 환산하면 두 시 반쯤 되는 시각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논밭이 내려다보이는 잔디밭에서 차를 마시며 하루를 열었다. 마침 오늘은 운전기사 푸투가 오지 않는 날이라 한결 마음이 느긋했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노트북을 펴 놓고 지난 사흘간의 여행 기록을 정리해 보았다.열 시쯤 되자 마두가 오늘은 좀 걷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나와 비제이, 마두 셋은 푸라 타만 아윤 사원(Pura Taman Ayun)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타나롯 사원으로 향하며: 발리에서 마주한 신앙과 일상의 풍경

    타만 아윤 사원(Taman Ayun Temple) 관람을 마친 우리는 운전기사 뿌뚜(Putu)와 함께 타나롯 사원(Tanah Lot Temple)으로 향했다. 멩위(Mengwi)에서 약 한 시간 거리, 오후 시간대였다. 우리는 뿌뚜에게 잠시 차를 세워 회의도 겸해 점심을 먹자고 요청했다. 아침에 서비스드 아파트에서 직접 싸 온 음식이 있었다. 뿌뚜는 푸른 잔디가 깔린 길가 정자 아래 차를 세웠다. 나무 기둥 두 개가 놓여 있어 그곳에 앉아 식사를 했다. 마치 소풍을 온 듯 여유롭고 정겨운 시간이었다. 근처에 손수레 두 대가 서 있었

  • 22. 타만 아윤 사원 – 발리 고대 왕조가 남긴 신비의 흔적

    입장료에 깜짝 놀라다 사원에 입장하려면 한 사람당 인도네시아 화폐 2만 루피아의 입장권을 구매해야 했다. 다섯 장을 사니 10만 루피아가 지출되었다. 이 돈을 인도 루피로 환산하면 500루피 정도로 큰돈은 아니지만, 10만이라는 숫자를 듣는 순간 마음이 철렁했다. 이곳은 발리 고대 왕조의 사원이다. 경내에는 옛 초가집을 연상시키는 사원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층수에 따라 1층부터 11층까지 다양하며 메루(Meru)라고 불린다. 높이는 대략 12~15미터에 이른다. 받침과 발코니를 갖춘 가장 아래층이 폭이 가장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 로마 여행 4일차 – 2019년 5월 20일, 콜로세움에서 판테온과 나보나 광장까지

    로마에서의 넷째 날 아침, 우리는 콜로세움 방문을 위해 서둘렀다. 전날 메룰라나 플라조에서 콜로세움, 로마 포럼, 팔라티노 언덕 통합 입장권을 구해두었는데, 콜로세움 입장 시간이 정오 12시로 지정되어 있었다. 오전 9시 30분에 아파트를 나서 포럼과 팔라티노를 먼저 둘러보려 했으나, 출발이 늦어져 오전 10시 15분에야 숙소를 떠날 수 있었다. 버스 환승과 콜로세움 도착 오전 10시 30분, 버스에 올랐다. 이제 로마 남부에서 중심부 또는 북부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첫 버스는 비아 아르헨티나(Via Argentina) 정

  • 1. 세계의 배꼽, 로마를 향하여

    로마는 오랜 옛날부터 세계의 배꼽이라 불려 왔습니다. 물론 지리적으로 로마가 지구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왜 로마를 세계의 배꼽이라 부르는 걸까요?로마는 유럽에 과학과 종교, 철학을 전했고, 법과 규칙을 세웠으며, 음식과 의복의 스타일까지 전파했습니다. 한때는 유럽과 지중해 국가들의 정치가 모두 로마의 영향 아래 놓여 있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로마는 세계의 배꼽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리라.유럽 여행의 목적지, 로마우리 가족은 2017년 인도네시아의 발리 섬과 자바 섬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 원작자의 말: 11일간의 이탈리아 여행이 한 권의 책이 되기까지

    여행은 곧 집필의 과정입니다우리에게 이러한 값비싼 해외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 땀 한 땀 흡수한 뒤 있는 그대로 책의 페이지에 옮겨 적는 정성스러운 작업을 위한 수단입니다. 2019년 여름 우리 가족이 함께 떠난 로마 여행도 바로 그 과정의 한 부분이었습니다.열하루의 여정, 그리고 그 이전의 준비2019년 5월 17일부터 5월 28일까지 이어진 열하루의 여정에서 이탈리아와 각 도시의 문명·문화·역사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만큼, 그 모든 것이 이 책의 페이지에 고스란히

  • 34. 족자카르타를 떠나며 – 특급열차 '아르고 라우'로 향하는 자카르타 행

    4월 21일, 우리는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수도 자카르타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미리 예약해 둔 고급 열차는 오전 8시 57분에 족자카르타를 떠나 오후 4시 52분에 자카르타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기차역은 숙소에서 겨우 8~9킬로미터 거리였지만, 택시 기사 안토 씨의 조언에 따라 출발 시간을 오전 7시로 잡았다. 그는 출근 시간대에는 차가 많고 정체도 심해서 한 시간 반쯤 걸릴 수 있습니다라고 당부했다.새벽 4시에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침 6시부터 비가 내리더니, 7시가 되자 더욱 거세졌다. 기차 시간은 오전

  • 33. 요가야르타에서의 식량 검색

    라왓 잘란(Rawat Jalan) 우리는 밀가루, 식용유, 우유, 채소를 사야 한다는 뜻을 안토 씨에게 전하고 마트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우리 손에는 버터 기름(기)과 밀가루가 아주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날 저녁은 물론 앞으로 3일 동안 먹을 음식을 미리 준비해 두어야 했는데, 남은 재료로는 턱엔 부족한 형편이었다. 다행히 양념류는 아직 충분히 남아 있었다. 안토 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우리를 대형 쇼핑몰로 데려가기로 했다. 쇼핑몰에 다다랐을 무렵, 아버지의 시선이 로마자로 큼직하게 RAWAT JALAN이라고 적

  • 32. 감비라 로카 동물원 – 자바 숲속에서 만난 동물들

    ‘다가와요, 그저 미소 지어 보세요.’ 코코넛 물 한 잔과 낯선 선율 코코넛을 파는 소녀는 코코넛을 잘라 빨대 두 개를 꽂아 우리에게 건넸다. 이 지역의 코코넛은 인도에서 흔히 보는 것보다 두세 배나 크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그것보다도 훨씬 컸다. 우리는 코코넛 속의 물을 컵과 물병에 가득 채웠다. 한 개에서 약 2리터의 물이 나왔으니, 우리 모두가 한 번에 마시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우리가 코코넛 물을 마시고 있는데 스물 남짓한 자바인 청년 둘이 다가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만난 거지들이었다.

  • 말의 등에 실린 제국의 역사 – 이탈리아 11일 기행의 서문

    불과 바퀴, 그리고 목록에 없는 말의 등인류의 발명과 발견 목록은 언제나 불과 바퀴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목록 어디에도 말의 등은 자리하지 않습니다. 말의 등은 불과 바퀴만큼이나 세계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말입니다. 로마 제국 역시 불과 바퀴만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말의 등 위에서 완성된 제국이었습니다.말이 인간의 동반자가 된 정확한 시점을 특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말과 인간의 동행은 세계 곳곳에 크고 작은 제국들을 탄생시켰고, 로마 제국도 그중 하나였습니다.말의 등에는 검이 실렸습니다. 바퀴는 종처

  • 13. 베네치아 3일차 – 비 내리는 월요일, 배 위 채소 시장과 다 빈치 박물관 (2019년 5월 27일)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밤새 거의 멈추지 않고 내린 비 덕분에 아침에는 꽤 쌀쌀했다. 비제이도 나와 함께 깨어나 차를 끓여주었고, 나는 그동안 어제 여행의 기록을 적기 시작했다. 8시까지 붓을 놓지 않았고, 그 사이 차 두 잔을 더 마셨다. 오늘 일정은 딱 한 곳뿐이었다.비제이가 인터넷에서 본 바로는, 월요일 오전 11시면 운하 위에서 배를 활용한 채소 시장이 열린다고 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볼거리가 되는 곳이라며 우리는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불과 1킬로미터 거리였다. 오전 11시에 서비스 아파트를 나섰는데,

  • 9. 피사의 하루 – 기울어진 탑을 찾아 떠난 여정

    피렌체에서 약 8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망원경을 발명한 갈릴레이가 태어난 도시, 피사가 있다. 그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울어진 탑이 서 있다. 우리 가족은 이날 아침 피사를 다녀오기 위해 피렌체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차표 한 장 얻기가 녹록지 않았다 피렌체에서 피사까지는 30분 간격으로 기차가 운행된다. 기차역 안은 넓은 홀이 여러 개 있었고, 각 홀마다 매표창구가 즐비했다. 그런데 하나의 홀에만 스무 개가 넘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문제는 피사행 표를 어디서 끊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창구마다 안내문이 오

  • 10.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나사렛의 유대인 가정에서 탄생하다예수 그리스도는 기원전 4년경 나사렛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후계자였던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가 위대한 로마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향인 나사렛은 바로 이 광활한 로마 제국의 영토 안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교 경전 탄크(Tanakh)에 예언된 메시아로 믿습니다. 유대교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유대 민족을 구원할 메시아가 강림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갈릴리에서 시작된 설교예

  • 로마 공화국의 도덕적 쇠퇴: 노예제와 검투사, 그리고 몰락의 서막

    공화국에 대한 로마 시민들의 환멸카르타고가 멸망한 뒤, 패전국에서 끌려온 노예들이 배에 가득 실려 로마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부유한 대지주들은 이 노예들을 값싸게 사들여 자신의 농장에 부렸습니다.그 결과 로마의 부자들은 더욱 부유해진 반면, 일반 시민들은 여전히 빈손으로 서 있어야 했습니다. 주머니는 텅 비었고 마음은 초라했으며, 로마 공화국에 대한 경멸과 증오만이 가슴에 자리 잡았습니다. 원로원 선거에서 벌어지는 매수와 부패는 이미 모두가 아는 공개된 비밀이 되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원로원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검투

  • 4. 고대 로마의 종교: 인도유럽 다신교에서 황제숭배까지

    인도유럽 종교인도 문명과 문화의 맥락에서 보면, 유럽의 문명과 문화 역시 수천 년의 깊은 역사를 지닌다. 리그베다의 편찬 시기에 대해서는 서구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어 왔지만, 현대 인도 학자들이 발굴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면 리그베다는 약 기원전 4000년에서 기원전 3000년 사이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유럽에서 종교와 철학의 사상적 전통은 대체로 기원전 6세기경 또는 그보다 앞선 어느 시점부터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그러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종교는 베다 후기 성현들의 시대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로마와 그리

  • 유럽의 인도라 불리는 나라,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왜 유럽의 인도라고 불릴까?이탈리아는 흔히 유럽의 인도라고 불린다. 이 명칭에는 뚜렷한 근거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두 나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 숨겨진 이유들이 저절로 드러난다.인도와 이탈리아의 유사점이탈리아 사람들의 피부색은 인도의 펀자브, 히마찰프라데시, 우타라칸드 등지에 사는 백색 인종과 닮아 있다. 체격도 펀자브 사람들과 비슷하여 이탈리아인들은 대체로 중간 정도의 신장에 단단하고 건장한 몸매를 지녔다. 유럽인의 머리카락이 보통 금발에 가까운 반면, 이탈리아인의 머리카락은 인도인처럼 짙은 검은색을

  • 20. 대로마 제국 2부 – 로마의 분열과 교황령의 탄생

    이탈리아의 분열 서기 493년, 동로마 제국 황제 제노의 명을 받은 그의 신하 테오도릭이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로마의 통치자 오도아케르를 살해한 뒤 스스로 로마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테오도릭은 게르만계 동고트족의 수장이었지만, 로마 황제 제노가 깊이 신뢰하던 측근으로 여겨지던 인물이었습니다. 테오도릭은 로마 황제의 직접적인 명령에 따라 로마를 접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의 부유한 귀족들은 로마인의 혈통이 아닌 자를 통치자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이탈리아는 급속히 분열의 길

  • 18. 교황의 출현과 그의 권력 확대

    초기 수세기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전파한 기독교 사상은 다양한 분파를 낳았고, 이는 훗날 기독교의 가장 큰 약점이 되었습니다. 이들 분파 간에는 피비린내 나는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라틴 계열의 기독교는 로마에서 더 큰 인기를 얻었는데, 라틴 분파 중 일부는 마리아를 비롯한 여러 성인의 우상을 만들어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을 숭배한 반면, 같은 분파 내의 다른 이들은 우상 숭배에 반대했습니다.로마 주교의 영향력 상승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로마를 떠나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면서, 베드로 교회의 주교가 로마 시민들에게 미치는

  • 17. 기독교의 갈등 – 신성 논쟁과 분열의 역사

    기독교는 탄생 이래 끊임없는 갈등에 휩싸여 있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가장 훌륭한 제도, 가장 위대한 사상, 가장 완성된 창조물이나 체계라 할지라도, 그 정교함은 갈등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어떤 대상과 관련해 일어나는 사상은, 그 자체로 더 이상 다듬을 여지가 없을 만큼 완벽하지 않다.예수의 신성을 둘러싼 논쟁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주님의 아이라고 칭했을 뿐, 결코 신성(神性)을 주장한 적이 없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원수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빌었다. 따라서

  • 16. 동로마 제국 – 콘스탄티노플이 이어받은 로마의 유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길 무렵, 그의 어머니는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의 예수 무덤 근처에 웅장한 성당을 세웠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은 라틴어를 사용했지만 동방 제국에서는 그리스어가 통용되었고, 두 지역의 문화 역시 크게 달랐습니다.로마 문화는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여겨 비잔틴 지역의 문화를 억누르려 했지만,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새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무슬림 세계에서 룸(Rûm), 곧 로마로 불렸으며, 이 명칭은 수백 년간 통용되어 오늘날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이 땅을 룸 혹은 로마니아라고 부릅니다.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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