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고대사

  • '잃어버린 신발의 전투': 남북전쟁을 구원한 십대 사관생도들의 용맹함

    셰넌도어 계곡을 노린 그랜트의 대공세 1864년 봄, 북군의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은 남부 연합을 항복으로 몰아넣기 위한 대공세에 나섰습니다. 이 작전의 핵심 전략 목표 중 하나는 바로 셰넌도어 계곡의 장악이었습니다. 그랜트는 주력을 이끌고 리 장군이 지휘하는 남군 북버지니아군과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동시에 프란츠 지겔(Franz Sigel) 소장 휘하의 혼성 부대 9,000명을 분리 배치하여 좌익을 확보하고, 가능하다면 셰넌도어 계곡을 통해 리 군의 측면을 위협하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지겔은 버지니아주 스톤턴으로 진격하며 크룩(C

  •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미리 알았던 스파이 '오스트로', 그러나 히틀러는 그를 믿지 않았다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하루 앞두고, 독일 스파이 파울 필트무츠(Paul Fitrmutz), 코드명 오스트로(Ostro)는 곧 벌어질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상륙작전 며칠 전 리스본에 머물던 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암호명인 오버로드 작전(Operation Overlord)의 세부 계획까지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정확한 장소와 규모를 담은 긴급 보고독일군 지휘부와 히틀러가 예상했던 칼레가 아니라, 연합군은 실제로 노르망디 해안에 2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두 단계로 나뉜 공세를 펼칠 예정이었습니다. 오스트로는 이 사실을

  • 제2차 세계대전에서 세 나라 군대로 싸운 한국인 병사, 양경종의 기묘한 운명

    운명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한 장난을 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존 인물이 있다. 바로 한국인 청년 양경종(Yang Kyoungjong)이다. 그는 1938년부터 1944년까지 불과 6년 남짓한 기간 동안 일본군, 소련군, 독일군이라는 세 개의 군대에서 차례로 복무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격랑 속을 떠밀려 다녀야 했다.일본 제국 육군의 강제 징집1938년, 한반도는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시대를 겪고 있었다. 일본은 중국과 만주 전선에 병력을 투입하기 위해 젊은 한국인들을 강제로 징병했다. 당시 18세였던 양경종은 공부하러 서울로 가던

  • 전설적인 칼라브리아 반군 '프라 디아볼로'…저항군의 지도자

    1771년 태어난 미켈레 펜차(Michele Penza)는 경제적으로 평범한 농민 가정의 아들이었다. 어린 시절 심각한 병을 앓았던 그는 지역 성인에 바치는 부모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전해진다. 지역 전통에 따라 부활절 둘째 주 일요일, 회복된 아들에게 수도복을 입혔는데, 장난기가 심했던 이 소년에게 누군가 프라 디아볼로(Fra Diavolo, 악마 수사)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 우연한 별명이 훗날 그가 역사에 남는 호칭이 되었다. 당시 칼라브리아 농민치고는 드물게 읽고 쓰는 법을 익힌 그는 왕국 우편 서비스에서

  • 이라크 전쟁을 촉발한 '대량살상무기' 거짓말 — 부시, 사담, 그리고 이란 공작원

    2003년 이라크 전쟁은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설에 대한 치밀하게 조작된 허위 정보 캠페인 이후 시작되었다.이라크 침공 11개월 전, 당시 미국 부통령 딕 체니의 자택에서 열린 만찬에서 대화의 초점은 사담 후세인의 수니파 독재 정권을 전복하고 민주 정부로 교체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맞춰져 있었다. 이 목표가 달성되면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시리아에서도 같은 방향의 변화가 연쇄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만찬에서 나눈 민주화 구상1979년 3월 26일,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와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아랍 국

  • 잠수함에서 이륙하는 전투기? 미 해군이 몰래 구상한 수중 항공모함 'AN-1'

    1950년대, 미국 해군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 항공모함이라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검토했습니다. AN-1이라는 이름의 이 잠수함은 전투기 8대를 탑재할 계획이었지만, 끝내 건조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실현되었다면 해군사에 한 페이지를 새로 쓸 혁신적인 무기체계였을 것입니다.일본에서 시작된 잠수함 항공모함의 원조항공모함과 잠수함을 결합하려는 발상은 의외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처음으로 실현시켰습니다. 일본 해군은 미국 본토를 폭격하기 위해 항공기를 탑재할 수 있는 대형 잠수함인 센토쿠급(I-400형)을 건조했는데

  • 1809년 오스트리아 방위군, 나폴레옹이 마주한 알려지지 않은 적들

    1792년부터 1815년까지 합스부르크 제국은 프랑스가 직면한 가장 끈질긴 적수였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의 참여와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한 가지 측면이 있다면, 바로 평범한 국민 방위군의 활약입니다.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은 다민족 국가였습니다. 제국의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극도로 보수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시민 무장 조직인 국민방위대 창설을 꺼린 주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카를 대공의 추진과 1808년 칙령1805년 울름과 아우스터리츠에서의 참패 이후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군

  • 다키아 전사: '세계의 주인' 로마 제국을 사로잡은 트라키아의 용맹한 적

    다키아인(Dacians)은 오늘날 루마니아 지역에 거주했던 트라키아 계열 민족으로, 세계의 주인이라 불리던 로마를 상대로 오랜 항쟁을 강요한 무시무시한 전사들이었다.다키아인은 북부 트라키아 계통 민족 중에서도 가장 발전된 부류에 속했다. 그들의 사회는 부족 단위로 조직되었으며, 사회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왕이 있었고, 그 아래로 귀족, 자유 농민, 노예가 차례로 이어졌다. 평소에는 주로 농경에 종사하며 부족 간의 다툼을 벌였지만, 때로는 로마를 향해서도 파괴적인 약탈 원정을 감행하기도 했다.로마와의 충돌서기 85년과 87년, 황제 도

  • 네메르츠도르프 학살 1944: 역사 속에 묻힌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

    1944년 10월 21일, 소련 근위 전차군단(2nd Guards Tank Corps) 소속 제25근위전차여단의 부대가 앙게라프 강을 도하하며 동프로이센의 작은 마을 네메르츠도르프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독일군의 즉각적인 반격은 실패했고, 소련군은 마을을 점령했습니다.공습이 시작되자 소련 병사들은 지하실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숨어 있던 독일 민간인 14명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중상을 입고도 간신히 살아남은 게르다 메스쿨라트(Gerda Meskulat)의 증언에 따르면, 한 소련 장교는 부하들에게 민간인들을 대피소에서 끌어내 처형하라고

  • 불과 칼… 제2차 세계대전 크로아티아의 살인 집단 '포글라브니크 경비사단'

    1941년 4월 6일, 나치 독일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했습니다. 크로아티아인들은 이 공격을 자신들의 해방 기회로 여겼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마지못해 가입했던 유고슬라비아에서 벗어날 절호의 순간이라 판단한 것입니다.파벨리치의 귀환, 우스타샤 정권의 탄생1941년 4월 10일 자그레브에서는 파시스트 성향의 크로아티아 분리주의 조직 우스타샤의 수괴 안테 파벨리치가 이탈리아에서 귀환했습니다. 무솔리니의 지원 아래 유고슬라비아 분열을 꾀해온 그는 곧바로 포글라브니크(Poglavnik), 즉 독일의 퓌러(Führer)와 이탈리아의 두체(

  • 대공 카를이 세 번 조직한 의용군단… 장군을 위해 싸운 자원병들

    합부르크가의 대공 카를(Erzherzog Karl)은 생애에 걸쳐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이름을 딴 군단(Legion)을 조직했다. 정규군이 아닌 의용 부대였지만, 이 군단은 배치된 곳마다 프랑스군을 상대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최초의 군단은 1792년, 오늘날의 벨기에 지역에서 탄생했다.첫 번째 군단 – 벨기에 자원병들1792년 창설된 첫 번째 군단은 프랑스에 반대하는 벨기에인 자원병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이 부대 소속 두 개 중대, 총 231명은 1796년 아스펜부르크 전투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쳤다.두 번째 군단 – 보헤미

  • 히틀러를 위해 싸운 프랑스인들…SS 제33사단 '샤를마뉴'의 탄생과 최후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측에는 점령지 국가들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온 수많은 의용병들이 참전했습니다.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과거 적국이었던 독일의 편에 서서 소련과 맞선 프랑스인들이 존재했던 것입니다.프랑스 반(反)볼셰비키 의용군단의 탄생제33무장친위대 척탄병사단 샤를마뉴(Charlemagne)는 1944년 창설되었습니다. 그 핵심은 1941년 조직된 프랑스 반볼셰비키 의용군단이었습니다.이 군단은 연대급 부대로 개편되어 제638보병연대라는 명칭으로 독일 육군 제7보병사단에 배속되었고, 1941~42년 겨울 모스크바 전

  • 오스만 제국을 분쇄하고 프랑스를 굴복시킨 합스부르크 제국군의 비밀

    몬테쿠콜리가 시작한 근대화 개혁 1683년 사보이 공자 외젠(Eugene of Savoy)이 첫 지휘관 자리에 오를 당시, 황제 레오폴트 1세의 군대는 이미 근대적 군대로 평가될 만했습니다. 이러한 근대화는 30년 전쟁(1648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이탈리아 출신 장군 몬테쿠콜리(Montecuccoli)가 착수한 험난한 과업의 결실이었습니다. 몬테쿠콜리는 유럽 최초로 보병의 힘은 돌격이 아니라 화력의 밀도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깨달은 장군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그는 보병 대대당 산병의 수를 정규 병력의 1/5 수준으로 줄였고,

  • 2차 세계대전 최대 스캔들… 히틀러에게 석유를 공급한 스탠더드 오일의 실체

    1941년, 미국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은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였습니다. 사장은 윌리엄 파리스(William Faris), 상무이사는 월터 티글(Walter Teagle)이 맡고 있었죠. 1920년대 중반부터 티글은 독일 내 인맥을 꾸준히 쌓아왔는데, 특히 화학업계 거물 IG 파르벤(I.G. Farben)의 경영진 헤르만 쉬미츠(Hermann Schmitz)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나치 독일과 손잡은 자본가들이윽고 친나치 성향의 영국 사업가 헨리 데터링 경(Sir Henry Detering)과 유명한 반유대

  • 역사에 남은 기병 돌격: 사보이 연대, 이즈부젠스키에서 소련군을 격파하다

    구식 병과였지만 최정예였던 제2차 세계대전의 기병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기병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병과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참전국들이 기병 부대를 육성했고, 실제로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대전이 발발하자 이탈리아 육군은 6개 기병 연대를 운용했는데, 그중 하나가 사보이 제3용기병연대였습니다. 이 연대는 피에몬테 왕가 군대의 동명 연대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부대였습니다.이탈리아 기병 연대들은 두 개씩 짝을 이루어 육군의 3개 신속(첼레레)사단에 배속되었습니다. 각 연대는 명목상 872명의 병력과

  • 하늘을 나는 항공모함... 테스트하고 구현한 '미친' 아이디어

    비행기와 함께 태어난 꿈, 공중항공모함하늘을 나는 항공모함이라는 발상은 비행기가 탄생한 시기와 거의 같은 때 등장했습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 이 아이디어는 실제로 구현 단계에 들어섰는데, 바로 모함의 자기 방어를 위해 기생 전투기(parasite fighter)를 운용하는 공중항공모함 형태였습니다.이 개념은 이후 수십 년간 설계자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습니다. 소련은 실제로 작동하는 공중항공모함 원형기를 제작했는데, 대형 폭격기를 개조해 주익과 동체 하부에 전투기를 탑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습니다.제2차 세계대전

  • '환상의 전쟁': 소국 포르투갈, 프랑스와 스페인 두 강대국을 동시에 격파하다

    7년전쟁(1756~1763)이 시작될 무렵 포르투갈은 중립 노선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 해군이 포르투갈 영해에서 감행한 군사 행동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분노를 샀고, 마침내 1762년 스페인군이 포르투갈 국경을 넘으면서 조용한 이베리아 반도가 전장으로 변모했다. 완전히 무방비한 나라로 여겨진 포르투갈 마드리드와 파리는 포르투갈 육군이 전쟁을 수행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어쩌면 그 평가가 크게 틀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만약 영국이 이 작은 왕국에 한 사람의 인물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가 바로 브라

  • 얼음으로 만든 항공모함? 제2차 세계대전의 기상천외한 발상

    얼음으로 만든 항공모함이라는 기발한 구상1942년, 연합군은 이미 독일로부터 유럽을 해방시키기 위한 계획을 본격적으로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대형 부유식 플랫폼을 활용해 연합군 항공기가 이륙하고, 상륙 부대에 즉각적인 공중 엄호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었습니다.같은 시기 대서양 전투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대양을 횡단하는 연합군 수송선단은 독일 잠수함과 폭격기에 대응하기 위해 반드시 공중 엄호가 필요했습니다. 통합작전본부(Combined Operations)의 책임자였던 마운트배튼 경은 제프리 파이크(Ge

  • 제2차 세계대전 무장친위대 '스칸데르베그' 사단, 히틀러가 만든 알바니아 학살 부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점령한 모든 지역에서 주로 파르티잔 소탕을 목적으로 무장 사단과 부대를 편성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았던 부대 중 하나가 바로 알바니아인으로 구성된 스칸데르베그 사단이었습니다.알바니아는 1939년 4월 이탈리아에 점령되었습니다. 이후 그리스와 유고슬라비아가 차례로 함락되면서 이탈리아령 알바니아는 코소보까지 영토를 확장했고, 이는 알바니아 민족주의자들이 꿈꿔온 대(大)알바니아라는 야망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이탈리아의 보호 아래 알바니아인들은 그리스인, 세르비아인, 몬테네그린인에

  • 무명의 전사들… 성 요한 기사단의 보병대 (18세기)

    역사 속 성 요한 기사단은 1530년 로도스섬에서 추방된 뒤 몰타에 정착했습니다. 이곳을 거점으로 기사단은 약 2세기에 걸쳐 오스만 제국과 그 동맹 세력에 맞서 싸웠지만, 1798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보여준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몰타 보병 연대의 탄생 (1776년)1776년, 당시 기사단 총장 프란시스코 히메네스 데 텍사다는 몰타 보병 연대 창설을 결정했습니다. 이 연대는 사실상 외인부대로, 유럽 각지에서 온 남성들로 구성될 예정이었습니다. 기사단 관계자들은 아비뇽, 코르시카, 마르세유 등지를 돌며

Total 12455 -세계사  FirstPage PreviousPage NextPage LastPage CurrentPage:385/623  20-세계사/Page Goto:1 379 380 381 382 383 384 385 386 387 388 389 390 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