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고대사

  • 로마의 비밀 이름을 폭로해 처형당한 호민관 퀸투스 발레리우스 소라누스, 그의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

    퀸투스 발레리우스 소라누스(Quintus Valerius Soranus)는 기원전 140년경 로마 근교 라틴 지방의 자치도시 소라(Sora)에서 태어났습니다. 시인이자 문법학자였던 그는 평민 호민관으로 선출되어 여러 저작을 남겼으나, 오늘날에는 유피테르 신에게 바치는 찬가의 몇 구절만이 전해집니다.이 찬가에서 발레리우스는 유피테르를 남성적이면서 동시에 여성적인 존재로 묘사했는데, 이는 스토아학파와 오르페우스교 교리를 융합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덕분에 이 단편은 신화·종교 연구 분야에서 주목받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대플리니우스

  • 9년간 이어진 로마의 대공성전, 시칠리아 최후의 카르타고 요새 릴리베아 포위전

    제1차 포에니 전쟁을 다룬 글은 이미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다. 그중 에크노무스 곶 해전과 용병 장군 크산티포스의 이야기를 다룬 두 편은 시칠리아 전역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이후 전황을 결정지은 핵심 사건인 릴리베아(Lilybaeum) 포위전을 언급했다. 이 공성전은 무려 10년 가까이 지속된 로마 역사상 가장 긴 포위 작전 중 하나였다.릴리베아는 어디에 있는가릴리베아는 오늘날 이탈리아 시칠리아 트라파니 현의 도시 마르살라(Marsala)의 고대 이름이다. 보에오 곶에 자리한 이 도시는 시칠리아 섬의 최서단으로, 아프리카 대륙(정

  • 부레비스타 왕: 카이사르에 맞서 폼페이우스를 지지한 다키아의 첫 통일자

    1980년, 차우셰스쿠 정권은 이색적인 기념행사를 열었다. 현재 루마니아 영토와 일치하는 추정 국가 다키아의 통일 2,050주년을 기념한 행사였다. 이 행사는 트라키아계의 게타이족과 다키아족을 아우르는 고대 국가의 통일자 부레비스타 왕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차우셰스쿠의 선전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다키아인의 기원과 정체성 다키아인은 현재 루마니아와 몰도바를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다뉴브 강 이남의 모이시아(세르비아, 코소보, 북마케도니아, 불가리아 북부), 북쪽으로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남부, 서쪽으로는 슬로바키아와 헝가리에 이르기

  • 호메로스의 희극 서사시 『마르기테스』 —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패러디한 잃어버린 걸작

    호메로스, 전설에 싸인 음유시인고대 사람들에게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문자로 기록된,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의 기록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그 저자는 호메로스라는 음유시인이었는데, 그가 키오스, 스미르나 혹은 콜로폰 출신이며 눈이 멀었다는 사실 외에는 거의 알려진 바 없었음에도 그의 존재 자체는 의심받지 않았습니다. 그에 관한 모든 것은 신비와 전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그렇기에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뿐 아니라, 이 두 작품과 함께 완전한 서사시 환(Epic Cycle)을 이루는 나머지 여섯 편의 시

  • 사해 두루마리의 숨겨진 비밀, 컴퓨터 분석으로 밝혀진 '두 명의 서기관'

    약 70년 전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Dead Sea Scrolls)는 히브리 성경(구약성경)의 가장 오래된 사본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고대 유대교 문서들을 담고 있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두루마리를 기록한 서기관들은 익명이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오랫동안 알 수 없었습니다. 이제 인문학과 과학을 결합한 흐로닝언 대학교(University of Groningen) 연구팀이 마침내 두루마리 뒤에 숨어 있던 서기관들의 실체를 밝혀내는 코드를 해독했습니다. 익명의 서기관들을 찾아서

  • 기후 위기가 인류 최초의 안정적 국가를 만들었다 — 메소포타미아 1,300년 분석 결과(PNAS)

    청동기 시대의 메소포타미아는 여러 차례 심각한 기후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런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위기가 오히려 더 안정적인 형태의 국가 발전을 촉진하며 지배 엘리트와 비엘리트 계층 간의 협력을 이끌어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Università di Bologna)와 독일 에버하르트 칼스 튀빙겐 대학교(Eberhard Karls Universität Tübingen) 소속 두 학자가 세계적 권위지 PNAS(미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한 연구의 핵심 결론입니다. 연구진은 기원전 3100년부터 17

  • 고대 그리스 최고의 요리사 아르케스트라토스, 철학자들의 미움을 받은 '미식의 아버지'

    고대 그리스인들은 음식에 대해 깊이 사고한 민족이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음식을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연회나 심포지엄, 개인 가정의 모임 등 사회적 교류의 핵심 행위로 여겼습니다.그리스인의 하루 주요 식사는 훗날 로마인들이 케나(cena)라고 부른 저녁 식사로, 하루 중 8시~9시경에 먹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리스인들에게는 수저(고기를 자르는 칼 제외)나 냅킨이 없었고, 수프 등 액체 음식을 제외하면 대부분 손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국물을 떠먹을 때는 속을 파낸 빵 조각을 숟가락처럼 활용했죠.식사가 끝나면 손가락의 기름기를 빵

  • 고대 문명의 마지막 보고(寶庫), 콘스탄티노플 제국 도서관의 천년 역사

    고대 세계 마지막 거대 도서관, 콘스탄티노플 제국 도서관중동과 근동, 메소포타미아, 중국, 아나톨리아, 그리스·로마 세계에는 오늘날 사라진 훌륭한 기록 보관소와 도서관들이 있었습니다. 그 위대한 도서관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까지 명맥을 이어온 곳이 바로 콘스탄티노플의 제국 도서관입니다.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창건과 필사실의 설립제국 도서관은 서기 330년에서 336년 사이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건설했습니다. 다만 성장은 더디었고, 황제가 서거할 당시 소장 도서는 7,000권에 불과했습니다.도서관에 결정적 전기를 마련한 인물은 서기 337년

  • 고대 그리스인들은 숫자를 어떻게 썼을까? 아티카 숫자와 밀레시안 체계의 모든 것

    로마 숫자(I, V, X, L…)는 누구나 한 번쯤 접해 봤을 만큼 익숙합니다. 소수나 음수를 표현할 수 없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매우 큰 수를 다루는 경우가 아니라면 생각보다 단순한 체계이기 때문입니다.핵심 원리는 간단합니다. I는 1, V는 5, X는 10, L은 50, D는 500, M은 1000을 나타내며, 기호의 위치에 따라 값을 더하거나 빼는 방식으로 조합합니다. 다만 매우 큰 수를 표기하려면 새로운 기호를 계속 도입해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이었습니다.흥미로운 사실은, 이 로마 숫자 체계가 에트루리아인에게서 유래했고, 에

  • 신화 속 장소가 실존했다! 아킬레스를 무적으로 만든 그리스 최고 높이의 '스틱스 폭포'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부, 현재 아카이아 지역에 속한 고대 아카디아에는 아로아니아(Aroania) 산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산맥에는 해발 2,355m의 봉우리가 솟아 있으며, 그리스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으로 꼽힙니다.산에서는 북쪽과 남동쪽으로 여러 강이 흘러나오는데, 그중 크라티 강은 해발 약 2,100m의 첼모스 봉우리에서 발원하여 가파른 절벽을 따라 떨어지며 웅장한 폭포를 만듭니다. 바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스틱스 폭포입니다.신화 전통에 따르면, 영웅 아킬레스의 어머니인 님프 테티스는 아들을 무적의 존재로 만들기

  • 피라미드·오벨리스크·불사조의 원형! 헬리오폴리스 태양신전의 신성한 돌 '벤벤'의 비밀

    고대 이집트의 종교는 서로 다른 기원을 지닌 다양한 신앙과 관습이 한데 융합된 복합적이고 정교한 체계였습니다. 각 지역은 저마다 고유한 창조 신화와 그에 귀속된 신들을 숭배했지만, 흥미롭게도 모든 지역에서 세계(보다 정확히는 이집트)가 놀랄 만큼 유사한 방식으로 탄생했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창조 신화들이 공유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세계가 누(Nu)라 불리는 원초의 혼돈 물에서 솟아올랐다는 믿음이며,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벤벤(Benben)이라 불리는 피라미드 형태의 봉분이라는 설입니다. 바로 이 최초의 언덕 위에서 라(Ra)

  • 재산을 통째로 맞바꾸겠다고? 고대 아테네 부자들의 세금 회피 제도 '안티도시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초기부터 시민에게 부과된 유일한 세금은 재산세였습니다. 당시 아테네에서 측정 가능한 부의 원천은 사실상 재산뿐이었고, 그래서 이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부유한 시민들뿐이었습니다.두 가지 재정 부담: 에이스포라와 리투르기아아테네 시민에게 부과된 부담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전쟁 등 극도로 급한 상황에서만 임시로 부과되던 세금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부와 재산을 신고한 시민 약 6,000명이 납부 대상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매년 폴리스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 300명에게 돌아가는 리투르기

  • 마라톤 전투에 사제 복장으로 참전한 아테네 최고 부자 칼리아스, 페르시아 전쟁을 종식시킨 조약을 체결하다

    기원전 511년경 태어난 칼리아스(동명의 할아버지·손자와 구별하기 위해 칼리아스 2세라 불림)는 아테네 라우리온(Laurión) 광산의 노예들을 관리하며,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손꼽히던 인물이었습니다. 21세이던 기원전 490년, 그는 아테네 군과 함께 마라톤 전투에 참전했는데, 이때 사제 복장을 갖추고 나섰습니다. 당시 그가 엘레우시스 밀교(신비 의식)의 다두코스였기 때문에 이는 사치가 아니라 그의 직분이었으며, 군사 장비 위에 종교적 복장을 더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두코스(문자 그대로 횃불 운반자)는 엘레우시스 밀교

  • 알렉산더 대왕은 어떻게 난공불락의 두로 섬을 반도로 만들었을까?

    레바논 남부에 위치한 두로(티레, Tyre)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꼽힙니다. 기원전 3000년경 시돈 인근의 정착민들이 처음 건설한 이 도시는 페니키아에서 이집트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정치적으로 독립했고, 이윽고 시돈을 제치고 페니키아 최대의 무역 중심지이자 항구로 부상하며 지중해 전역과 교역망을 형성했습니다.난공불락이라 믿어졌던 섬 도시오늘날 두로는 레바논 해안에서 약 2km 육지 쪽으로 뻗어 나온 작은 반도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 두로는 본토에서 0.5km의 바다로

  • 카이사르 혜성: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신격화를 알린 고대 최고로 유명한 혜성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과 하늘에 나타난 신호기원전 44년 3월 15일,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원로원 의원들의 손에 암살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로마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궁극적으로 로마 제국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그로부터 4개월 뒤인 기원전 44년 7월 20일부터 23일 사이, 로마에서는 루디 빅토리아에 카이사리스(Ludi Victoriae Caesaris) 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 축제는 카이사르 본인이 기원전 46년에 제정한 이래 거행되던 행사였습니다.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축제가 시작되

  • 단 10일 만에 라인강 위에 세운 카이사르의 다리, 18일 만에 스스로 무너뜨린 이유

    기원전 55년 초여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정복에 나선 지 3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당시 새로 정복한 영토의 동쪽 경계는 라인강에 닿아 있었고, 강 동쪽에 웅크리고 있던 게르만 부족들은 이 자연 방벽을 등에 업고 서쪽으로 끊임없이 습격해 왔습니다.그러나 강 건너편에는 유비오스(Ubii)처럼 로마와 동맹을 맺은 부족도 있었습니다. 유비오스는 군단이 강을 건너 게르만족을 응징할 수 있도록 카이사르에게 배를 제공하겠다고 나섰습니다.그러나 카이사르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대신 강 위에 다리를 놓기로 결정합니다. 이 결정에는 두 가지

  • 트로이에서 유래했다는 시캄브리족 전설, 메로빙거 왕조 프랑크족의 기원을 추적하다

    트로이에서 온 백성들: 시캄브리아 건국 전설기원후 727년에 작성된 익명의 문헌 『프랑크족 역사서(Liber Historiae Francorum)』에 따르면, 트로이가 멸망한 후 프리아모스와 안테노르가 이끄무 12,000명의 트로이인들이 아조프해 연안의 판노니아 지방으로 피신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타나이스(돈강) 강변에 정착하여 시캄브리아(Sicambria)라는 도시를 건설했습니다.이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놀랍고 믿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고고학적 증거가 전혀 없고 시캄브리족 자신들이 남긴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 신화 속 툴레 섬의 정체는 아이슬란드? 그리스인이 바이킹보다 천 년 먼저 발견했다는 언어학적 증거

    그리스인들은 바이킹보다 천 년 먼저 아이슬란드에 도달했을까? 스페인 나바라 대학교(University of Navarra)의 언어학 교수 앤드류 찰스 브리즈(Andrew Charles Breeze)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기원전 4세기 북방 항해를 떠난 그리스 탐험가 피테아스(Pytheas)가 아이슬란드를 발견했으며, 이후 툴레(Thule)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땅이 바로 그곳이라는 것입니다.그리스 언론 그리스 리포터(Greek Reporter)에 따르면, 브리즈 교수는 언어학 학술지 The Housman S

  • 콘스탄티노플 건국 기념물 중 유일하게 남은 콘스탄티누스 기둥

    단독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새 수도의 선택서기 324년, 콘스탄티누스는 동방 황제 리키니우스를 격파하며 로마 세계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이 승리로 사두정치(테트라키아) 시대는 막을 내렸고,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이후 처음으로 제국을 단독으로 다스리는 황제가 되었습니다.흥미롭게도 리키니우스(콘스탄티누스의 누이 콘스탄티아와 결혼한 인물)가 최종적으로 패배하고 항복한 장소는 바로 보스포루스 해협 입구에 자리한 고대 그리스 식민지 비잔티움이었습니다. 이곳은 동유럽, 발칸반도, 에게해, 지중해를 잇는 항로를 장악할 수 있는 전략

  • 승리의 제단: 로마 원로원에서 기독교인과 이교도 의원 사이에 벌어진 '조각상 전쟁'의 전말

    후기 로마 제국이 감당해야 할 전선만으로도 벅찼던 4세기,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전선이 열렸다. 무려 100년 가까이 지속된 이 분쟁은 외부 적이나 내부의 반란이 아닌, 원로원 의사당(쿠리아) 안의 단 한 구의 여신상을 두고 기독교도와 이교도 원로원 의원들이 벌인 치열한 논쟁이었다. 후세 역사가들은 이를 조각상 전쟁(War of the Statues)이라 부르지만, 실상 이 전쟁의 유일한 주인공은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Victoria)의 상(像) 하나였다. 전쟁의 여신, 빅토리아: 그리스의 니케에서 로마의 수호신으로 빅토리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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