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유럽의 역사

  • 그로테 만드렝케(Grote Mandränke): 북해 해안선을 바꾼 1362년·1634년의 치명적 대홍수

    폭풍 해일은 언제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역사와 함께해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1362년과 1634년에 북해 연안을 강타한 두 차례의 파괴적인 폭풍 해일은 그로테 만드렝케(Grote Mandränke)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오늘날의 해안선을 결정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글: Susanne Abolins-Aufderheide제방이 두렵거든 바다에 길을 내주어야 한다. 이 오랜 지혜는 수백 년간 북해에서 통용되어 왔습니다. 겨울철 심해 저기압과 강한 북서풍이 만들어내는 폭풍 해일은 지금도 해안을 위협하고 있습니다.자연 사구가 지켜주던

  • 사자공 하인리히: 바르바로사에 맞선 중세 독일 최강의 공작, 그리고 뤼베크 한자동맹의 탄생

    12세기 중반, 남부 독일 출신의 한 공작이 세력을 북쪽으로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1142년 그는 브라운슈바이크를 손에 넣었고, 1195년에는 자신의 거주 도시였던 브라운슈바이크(Brunswick)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오늘날에도 방문객들은 브라운슈바이크 단크바르데로데 성 앞은 물론, 뤼베크·라체부르크·슈베린의 대성당 앞, 그리고 고슬라르 황궁 앞에서 청동 사자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자공 하인리히(Heinrich der Löwe)는 구엘프 가문(벨프 가문)의 문장 동물인 사자를 남부 독일에서 북부 독일로 가져온 인물이며, 이 사

  • 막스 플랑크: 양자이론을 연 아래, 고전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노벨상 수상 과학자

    절제되고 겸손한 성격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혁명가였던 막스 플랑크(Max Planck)는 고전 물리학의 세계관을 뒤흔들었고, 현대 과학과 기술의 결정적인 토대를 마련한 인물입니다.키엘에서 태어난 음악과 과학의 재능1858년 4월 23일, 막스 플랑크는 법학 교수 빌헬름 플랑크(Wilhelm Planck)의 아들로 키엘에서 태어났습니다. 1867년 아버지가 뮌헨 대학교 민사소송법 교수직에 임용되면서 가족 전체가 바이에른의 수도로 이주했습니다. 뮌헨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플랑크는 막스밀리안 김나지움(Munich Maximiliansgymn

  • 루돌프 유켄: 잊혀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신이상주의 창시자의 삶과 철학

    Astrid Reinberger, NDR.de190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종교철학자 루돌프 크리스토프 유켄(Rudolf Christoph Eucken). 그는 신이상주의(Neuer Idealismus)의 창시자로 평가받지만, 오늘날 유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먼저 그의 아들, 즉 질서자유주의 경제학을 개척한 발터 유켄(Walter Eucken)을 떠올립니다. 아버지 루돌프는 상대적으로 잊혀져 갔습니다.그러나 한 세기 전만 해도 사정은 달랐습니다. 그가 평생 남긴 저술과 논문은 모두 합쳐 약 1,000편에 달했

  • 폐기물 소각의 역사: 함부르크에서 쓰레기가 전기와 열로 바뀌기까지

    19세기 함부르크는 급속한 인구 증가와 함께 하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바로 쓰레기 처리였습니다. 그리고 1896년 1월 1일,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함부르크는 유럽 대륙 최초로 폐기물 소각장을 정식 가동한 도시가 된 것입니다.글: 올리버 디드리히(Oliver Diedrich), NDR.de시의회의 첫 시도와 주민들의 반발사실 이미 1892년, 함부르크 시의회는 폐기물 소각로 건설 안건을 제출한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 문제는 위원회로 회부되며 한동안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쓰레기를 단순히 태워버리는 방식에 반대하

  • '질주하는 롤란드': 뤼겐 섬을 가로질러 여유롭게 전속력으로 달리는 증기열차

    독일 최대의 섬 뤼겐(Rügen)을 가로지르는 소형 철도 라젠더 롤란드(Rasender Roland)의 역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95년 7월 21일, 푸트부스(Putbus)에서 빈츠(Binz)까지 첫 열차가 운행을 시작했으며, 지금까지도 이 협궤철도는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며 섬 전역을 누비고 있습니다.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는 자신의 뤼겐 여행을 고문에 비유했고,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는 열악한 교통 인프라를 두고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 3일간의 화려한 대축제: 독일 황제의 새 운하, 킬 운하가 문을 열다

    1895년 6월, 독일 제국의 최대 국가 프로젝트였던 킬 운하(Kiel Canal)가 성대하게 개통되었습니다. 카이저(황제) 빌헬름 2세는 제국의 위상을 보여줄 만큼 화려한 축제를 원했고, 그 결과 3일간 이어지는 백만 마르크짜리 국가 주관 대축제가 펼쳐졌습니다.축제는 1895년 6월 19일 함부르크에서 시작됩니다. 초청 손님들은 시청에서 축하 연회를 즐긴 뒤 알스터호로 이동해 커피를 마셨는데, 이를 위해 1,600명의 귀빈을 수용할 수 있도록 기둥 760개 위에 6,000㎡ 크기의 인공 섬이 세워졌습니다. 이후 일행은 항구로 향해

  • 킬위크(Kieler Woche) 140년 역사: 소박한 우정 레가타에서 세계 최대 항해 축제까지

    1905년경 킬위크(Kiel Week)의 한 장면: 피요르드의 선박들이 예포를 발사하고 있다.오늘날 세계 최대 규모의 항해 행사이자 북유럽 최대의 여름 축제로 자리 잡은 독일의 킬위크(Kieler Woche). 연간 약 300만 명이 찾는 이 거대한 축제의 시작은 놀랍게도 두 남자의 호기심이었습니다. 140여 년의 시간 동안 황제의 후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시련을 거치며 킬위크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시대별로 살펴봅니다.1881년, 두 함부르크 선원의 호기심에서 시작되다1881년 여름, 킬 포르데(Förde)에서 열린 소규모 우

  • 하노버 왕국의 종말: 1866년 랑엔잘자 전투와 구엘프 가문의 몰락

    독일 튀링겐의 랑엔잘자(Langensalza)에는 19세기 값비싼 전투를 기념하는 기수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기념비가 가리키는 역사의 현장이야말로 하노버 왕국의 운명을 결정짓던 순간입니다.오늘날 니더작센의 역사는 통치 가문인 구엘프(Welf) 가문, 그리고 영국 왕실과의 특별한 연결고리와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북부 독일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때때로 동프리슬란트에서 괴팅겐 일대까지 뻗쳤습니다. 유럽의 질서를 다시 그린 1814~15년 빈 회의에서 이 지역은 영국 국왕 조지 4세의 통치를 받는 왕국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그러나

  • 1864년 독일-덴마크 전쟁: '신의 이름으로' 시작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분쟁의 모든 것

    1864년 2월 1일,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두 공작령의 귀속 문제를 둘러싸고 덴마크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으며, 같은 해 안에 종결되었습니다.글: 카리나 베르너(Karina Werner)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은 덴마크 전역이 독일의 지배에 놓일까 두려워했고, 반면 테오도르 폰타네(Theodor Fontane)는 독일 동포들이 거둔 승리를 축하했습니다. 1864년 2월 1일, 프로이센군과 오스트리아군이 슐레스비히를 침공하면서 전쟁의 막이 올랐습니다. 슐레스비히-홀슈타

  • 175년 전, 함부르크의 거리가 가스 불빛으로 밝아지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함부르크의 거리를 비추는 것은 그을음이 나며 깜빡거리는 기름 등잔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유한 시민들의 주도로 상황이 바뀌는데요, 175년 전인 10월 4일, 도시에는 최초의 가스 가로등이 켜졌습니다.글: 야니네 쿨(Janine Kuehl)어두운 좁은 골목길에서는 발밑의 오물이나 다음 모퉁이에 숨어 있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전반 함부르크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무역 확장과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도시 개편에도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낡은 건물들이 잇달아 철거되었고, 1842년 대화재는

  • 증기마가 달리기 시작한 날: 독일 최초의 국유 철도, 브라운슈바이크 철도의 탄생

    시간의 시험을 견뎌 온 현대 교통의 뿌리는 19세기 증기 기관차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35년, 바이에른의 의사들은 “공중 보건을 위해 모든 종류의 증기 기관을 이용한 이동은 금지되어야 한다. 빠른 움직임은 승객에게 ‘섬망의 분노’라 불리는 정신적 불안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며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이 경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증기 철도는 독일 땅에서 승리의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뉘른베르크의 민영 철도였고, 이어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구간에서 독일 최초의 국유 철도가 문을 열었습니다.북독 철도의

  • 1714년, 독일 왕자가 영국 왕이 되다 — 하노버 왕가(구엘프 가문)의 왕좌 계승 이야기

    왕실 머리 장식: 구엘프 가문의 조지 1세가 착용했던 왕관입니다.독일 출신 인물이 영국의 왕좌에 오른다는 것,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300여 년 전, 이는 실제로 일어난 역사였습니다. 당시 하노버 선제후였던 게오르크 루트비히(Georg Ludwig)는 1714년 10월 20일 영국 국왕으로 즉위했으며, 훗날 조지 1세로 불리게 됩니다. 그의 즉위 기념식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되었습니다.혈통과 종교가 결정한 왕위 계승 서열니더작센 지방의 통치 가문이 세계 제국의 주인이 된 배경에는 일련의 전통적 인연

  • 바켄슈타트 전투: 35,000명이 격돌한 메클렌부르크 최대 야전 전투와 남겨진 미스터리

    2012년 여름, 아마추어 재연자들이 시대 의상을 갖춰 입고 한 차례의 격전기를 생생하게 되살려냈습니다. 이들은 1712년 12월 20일, 메클렌부르크의 가데부쉬(Gadebusch) 마을 성문 앞에서 벌어졌던 극적인 장면을 재현한 것입니다. 당시 약 35,000명의 병사가 온갖 지형 위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고, 총포 연기가 걷힌 뒤에는 스웨덴인·덴마크인·작센인 등 3,000명이 넘는 전사자가 들판 곳곳에 쓰려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메클렌부르크 땅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야전 전투, 바켄슈타트 전투의 희생자들입니다. 그날 과

  • 제버와 미스 마리아: 독일 '마리엔슈타트'를 지배한 마리아 폰 예버의 생애와 도시의 역사

    예버 성 근처에 세워진 동상은 이 마을의 창립자이자 영원한 통치자, 마리아 폰 예버(Maria von Jever)를 기리고 있습니다.제버(Jever)에서는 미스 마리아(Miss Maria)를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녀는 400여 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 제버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면 1575년 이후 자취를 감췄을 뿐입니다 — 지금도 도시 곳곳에 살아 숨 쉽니다. 거리 이름과 기념물은 물론 고등학교와 교회 종까지 그녀의 이름을 따릅니다. 1536년 사순절 첫 번째 수요일(재의 수요일), 제버에 도시권을 부여한 인물도 바로

  • 농민이 왕을 꺾었다! 헤밍슈테트 전투(1500), 디트마르셴 농민 공화국의 승리 비결

    1500년 2월 17일, 독일 북부의 농민 공화국 디트마르셴(Dithmarschen)은 패색이 짙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덴마크 왕 요한 1세(John I.)가 군대를 이끌고 철수를 시도하던 바로 그 순간, 디트마르셴 사람들은 기습 반격에 나섰습니다. 헤밍슈테트 전투에서 왕의 군대는 약 1만 2천 명에 달하는 병력을 말 한 마디 없이 잃었습니다. 이 전투는 전설이 되었고,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디트마르셴 사람들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형성한 역사적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헤밍슈테트 전투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 디트마르셴 주립

  • 하노버의 도살자, 프리츠 하르만: 1924년 독일을 뒤흔든 연쇄살인 사건

    1924년 봄, 독일 하노버 라인 강변에서 놀던 아이들이 사람의 두개골을 발견하면서 도시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다. 이후 며칠 동안 최소 22명의 시신에서 나온 500여 점의 신체 부위가 추가로 수습됐다. 피해자는 모두 젊은 남성이었다. 이는 동성애자 연쇄살인범의 소행일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사라진 젊은 남성들, 그리고 용의자 하르만 이미 1918년부터 하노버 경찰에는 실종된 아들을 찾는 부모들의 신고가 잇따랐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의 혼란기, 하노버 중앙역은 부랑자, 장물아비, 매춘부들의 집합소가 되었고, 이곳에서 프리츠 하르

  • 함부르크의 '사기꾼 왕', 바름베크 경: 율리우스 아돌프 페터센의 흥망성쇠

    1920년 전후, 율리우스 아돌프 페터센(Julius Adolf Petersen)은 함부르크에서 가장 악명 높은 도둑 왕이었다. 1922년 4월 20일, 이 부지런한 범죄자는 49건의 범행을 자백했다. 그의 생애는 훗날 바름베크 경(Lord von Barmbeck)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마르크-올리버 레어만(Marc-Oliver Rehrmann), NDR.de 우리 집안에서는 항상 바름베크 경에 대해 좋게 이야기했어요. 2015년 NDR과 만난 아스트리드 마이어(Astrid Mayer)는 1920년대 초 전설적인 도둑

  • 독일인가 덴마크인가? 1920년 슐레스비히 국민투표가 그어낸 국경의 역사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덴마크 사이의 국경이 확정되었고, 그 경계는 오늘날까지 유효합니다. 두 차례에 걸친 국민투표 끝에 1920년 3월 14일 최종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1920년 봄, 바다와 맞닿은 이 땅은 격랑에 휩싸였습니다. 소위 슐레스비히 문제를 두고 독일계와 덴마크계 주민들이 대규모로 동원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독일 제국의 최북단 지역에서 두 민족은 서로 옆에 살며 다채롭게 뒤섞여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한때 덴마크 왕실의 영토였으며, 슐레스비히를 둘러싼 분쟁은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결국 1920년 3월

  • 반유대주의 노조 본부에서 할리우드 세트장까지 — 함부르크 브람스 콘토르의 90년 역사

    1930년 여름, 함부르크 최대 규모의 건설 현장이 본격 가동되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마치 시카고나 뉴욕에 온 듯한 착각을 받을 만큼, 뮤직홀 맞은편에 엘리베이터 8대, 자체 공압식 튜브 시스템, 텔렉스와 전화 교환기를 갖춘 유럽 최고 수준의 철골 구조 고층 빌딩이 우뚝 솟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약 1,000명의 직원이 사용할 채광이 풍부한 개방형 사무실과 수백 제곱미터 규모의 아르데코 스타일 웅장한 라운지가 건설되고 있었습니다. 12층, 높이 50m를 넘는 이 건물은 홀스텐발(Holstenwall)을 따라 기존 관리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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