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patronage)과 군주·예술의 관계는 오랜 역사를 지니지만, 르네상스기 프랑스, 즉 프랑수아 1세의 시대가 그 가장 완벽한 사례로 자주 꼽힌다. 로아르 계곡의 성들과 당대 최고 예술가들에 대한 의뢰는 발루아 가문을 이상적인 예술 후원 군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물을 수 있다. 그 이후, 더 위대한 후원자 루이 14세가 등장하기까지 프랑스 왕가와 예술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앙리 2세와 예술1547년 프랑수아 1세의 죽음은 궁정, 그리고 그 너머에서 예술의 위축을 의미했을까? 아들 앙리 2세는 즉위하자마자 다른 관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