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아시아의 역사

  • 천하포무를 위해 네 번 거점을 옮긴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장악술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에서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의 배신으로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지 못한 채 최후를 맞이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그러나 그는 전국시대를 풍미한 영웅으로서 다양한 정책을 펼친 인물이기도 합니다.그중에서도 주목할 점은 거점 이동 전략입니다. 많은 다이묘들이 세력을 확장하면서도 본거지를 바꾸지 않는 것이 상식이던 시대에, 노부나가는 전략에 따라 거점을 과감히 옮긴 선구자였습니다.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은 가이(甲斐)의 츠츠지가사키 관(躑躅ヶ崎館),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은 에치고(越後)의 카스가야마 성(春

  • 야마토 왕권, 야마토 정권, 야마토 조정의 차이점 한눈에 정리

    야마토 왕권은 고훈 시대에 유력 호족들의 연합으로 성립한 정치 세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야마토 정권, 야마토 조정이라는 비슷한 용어까지 더해지면서, 서로 어떻게 다른지 헷갈리기 쉽습니다.야마토 왕권, 야마토 정권, 야마토 조정은 모두 야마토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실제로는 조금씩 다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이번 글에서는 이 세 가지 야마토 용어의 차이를 알기 쉽게 정리해 보겠습니다.왕권·조정·정권의 기본 의미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왕권, 조정, 정권이라는 단어 자체의 뜻부터 짚어 보겠습니다.왕권 = 임금

  • 군부대신 현역 무관 제도는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을까?

    근대 일본사를 공부하다 보면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군부대신 현역 무관 제도입니다. 입시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주제인 만큼, 이번 글에서는 이 제도가 언제, 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일본을 전쟁의 길로 이끌었는지까지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군부대신 현역 무관 제도란? 군부대신 현역 무관 제도(軍部大臣現役武官制)란 육군대신과 해군대신은 반드시 현역 장교(무관)만이 맡을 수 있다는 규정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현역은 현재 복무 중인 군인을 뜻하며, 예비역·후비역 장교나 문관은 대신에 임명될

  • 일본에 총이 처음 전해진 것은 언제, 누구 때문이었을까? – 1543년 종자도에서 시작된 총기 도입의 역사

    총이 일본에 전해지기 전, 일본의 전쟁(일본어로 이쿠사(戦))은 일반적으로 창이나 활로 승부를 냈으며, 설에 따르면 일대일 대결이 기본이었다고 합니다.그러나 16세기, 활보다 훨씬 강력한 무기인 총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전쟁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총기 도입의 배경과 그 파급 효과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총은 언제, 어디서 들어왔을까?총의 도입은 1543년, 화승총이 종자도(種子島)에 전해지면서 시작되었습니다.이것을 계기로 일본의 전쟁 방식은 급격하게 변화하게 됩니다.당시 한 포르투갈 상인이 중국 선박에

  • 헤이조쿄(平城京)와 견당사 – 나라 시대 국제도시의 성립

    645년 을사의 변(乙巳の変)이 일어나 일본에 큰 개혁이 단행되기 전부터, 일본 사회에는 커다란 변화의 조짐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습니다.618년, 동아시아의 정세는 극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여러 학설이 있지만, 이러한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가 일본의 대개혁과 을사의 변 이후의 근본적인 변혁을 불러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당나라에 의한 중국 통일당나라의 건국은 단순한 왕조 교체를 넘어,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수도를 창건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은 거대 강국인 당나라와 대등하게 맞서기 위해서는 천황의 권력과 권위를 높이고,

  • 헤이조쿄를 중심으로 꽃핀 귀족 문화, 텐표 문화

    ※ 이미지는 예시이며, 가마쿠라 대불입니다.율령 체제가 정비되며 중앙집권 국가로 나아가던 나라 시대에는 부와 권력이 헤이조쿄(平城京) 주변에 집중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귀족 문화가 크게 융성했습니다. 특히 쇼무 천황(聖武天皇)의 재위 시절에 개화한 이 시대의 문화는 연호에서 이름을 따온 텐표 문화(天平文化)라고 불립니다.텐표 문화는 견당사(遣唐使)가 가져온 당나라의 문화를 폭넓게 수용했기 때문에 당 문화의 영향이 짙게 드러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고사기·일본서기 등 국사 편찬과 만엽집율령제의 정비와 함께 일본인으로서의 국가 의

  •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유는 무엇일까?

    1945년 8월 6일과 9일,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입니다. 원폭 투하를 상징하는 히로시마라는 표기 히로시마라고 하면 프로야구 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나 모미지 만주를 먼저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히로시마라고 표기되어 있다면 어떨까요?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배운 적이 있다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원폭 피해를 다룰 때 도시 이름을 가타카나로 쓰는 관례가 있습니다. 히로시마라는 표기에

  • 전쟁 전 일본은 미국에 더 가까운 자유 사회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이라고 하면, 현대의 우리는 무심코 자유 없는 군국주의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곤 합니다. 전후의 가치관 속에서 살아온 세대에게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그러나 과연 전쟁 전의 일본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숨 막히는 나라였을까요?이번 글에서는 전쟁 전과 후의 일본이 어떻게 달랐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전쟁 전후의 노동 방식현재 일본 기업의 고용 제도는 기본적으로 종신 고용입니다. 하지만 전쟁 전 일본에서는 미국 사회처럼 이직하는 사람이 많았고, 고용 유동성이 매우 높았습니다.1920년

  • 대항해시대가 일본에 끼친 영향 – 유럽 열강의 도래와 남만무역의 시작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이어진 대항해시대는 유럽 여러 나라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대규모 항해에 나선 시기로, 새로 발견한 땅을 식민지화하려는 목적도 함께 담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주역은 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으며, 그 파장은 먼 동아시아의 섬나라 일본까지 미치게 됩니다. 대항해시대의 시작 15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유럽 각국은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로 향하는 새로운 항로 개척에 나섰습니다. 이 모든 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큰 수요를 자랑하던 아시아산 향신료를, 오스만 제국의 지배

  • 헤이안 시대 국풍문화의 발전 – 가나 문자·문학·정토불교와 귀족 생활

    7세기 이후 일본은 대륙의 우수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지만, 9세기 후반부터 일본과 대륙 간의 관계가 크게 변화하면서 특히 귀족 사회를 중심으로 일본의 풍토와 취향에 맞는 우아하고 세련된 국풍문화가 탄생했다.가나 문자의 발달과 『고킨와카슈』국풍문화를 상징하는 것은 바로 가나 문자의 발달이다.이 시기에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널리 사용되면서 일본 고유의 감정과 정서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일본 문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먼저 와카가 유행하였고, 905년 기노 쓰라유키 등이 편찬한 최초의 칙선 와카집인 『고킨와카슈』가

  • 장원공령제의 성립과 인세이(원정)의 시작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와 요리미치(頼通)가 섭관으로서 후지와라씨의 번영을 자랑하던 섭관정치의 전성기가 지나간 뒤, 고산조 천황(後三条天皇)이 정무를 장악하며 대외기(大江匡房)와 같은 학식 높은 인재를 적극 기용해 국정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연구(延久)의 장원 정리령 고산조 천황은 1069년, 장원이 늘어나면서 공령(公領)을 잠식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 아래 연구의 장원 정리령을 반포했습니다. 장원 정리령은 그 이전에도 902년 다이고 천황(醍醐天皇) 때 처음 실시되었고, 1045년에도 시행되었지만, 실행을 고쿠시(国司)에

  • 기요스 회의: 히데요시는 어떻게 오다 가문을 분할했는가

    야마자키 전투 승리와 기요스 회의의 배경아케치 미쓰히데를 물리친 하시바 히데요시는 야마자키 전투에서 승리한 뒤 오다 가문 본령의 질서를 회복하며, 명실상부하게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로 떠오르게 됩니다.반면 중신 시바타 가쓰이에는 주군의 원수를 갚는 데 뒤처졌고, 다키가와 가즈마스 역시 히데요시의 급부상을 견제해야 할 입장에 놓였습니다.1582년 6월 27일, 오다 가문의 중신들은 기요스 성에 모여 노부나가의 적법한 후계자를 정하는 기요스 회의를 개최했습니다.기요스 회의의 참석자기요스에는 차남 오다 노부카쓰와 삼남 오다 노부타카, 그

  •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과 대외 무역: '고립'이 아니라 네 개의 창이 있었다

    에도 시대의 대표적인 대외 정책으로 쇄국(鎖國)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중국과 네덜란드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과의 교류를 피하고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생활을 했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요?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은 이러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에도 막부의 대외 정책에도 시대 초기에는 주인선(朱印船) 무역을 통해 여러 나라와 교류했습니다. 그러나 무역 질서의 붕괴 우려와 국내 기독교 신자 급증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하면서, 막부는 1641년 무역을 강력히 제한하게 됩니다.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쇄국입니다.이

  • 플라자 합의와 일본 버블 경제: 초호황의 탄생과 붕괴

    변동환율제로 이행하면서 환율이 짧은 기간에 크게 요동치자, 선진국들이 환율을 공동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일본은 대미 수출이 급증하면서 세계 최대의 무역흑자국으로 떠올랐습니다. 경영 합리화와 산업구조 전환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크게 강화한 일본은 서방 각국에 공세적으로 수출을 밀어붙였고, 이에 따라 무역 마찰도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플라자 합의(Plaza Accord) 1981년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 강화를 추진했습니다. 그는 기존 정책과 달리 작은 정부(

  • 전후 일본인의 생활 변화, 1945년부터 현재까지

    전쟁이 끝난 뒤부터 오늘날까지, 일본의 생활상은 수많은 변화와 사건을 거치며 극적으로 바뀌어 왔습니다.전쟁이 끝난 1945년 직후만 해도 일본은 미군의 공습으로 산업 시설이 파괴되고 막대한 인명 피해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려, 동아시아 최선진국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황폐한 상태였습니다.그렇다면 전쟁 이후 일본인의 생활은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요? 시대별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전후 직후, 1945년 무렵 일본의 생활공습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통나무를 엮어 지은 임시 가옥에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앞서 언급한 건물이 바로 이런

  • 소련-일본 중립조약, 체결 배경부터 폐기와 소련의 대일 참전까지

    최근 뉴스에서 러시아와의 관계가 자주 화제가 됩니다. 지금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국경이 나뉘어 있지만, 러일전쟁 이후에는 사할린에서 육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러시아의 전신인 소비에트 연방(소련)은 이념 면에서 일본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지만, 메이지 시대에는 오히려 상호 이해관계가 일치해 중립 조약을 체결한 적도 있었습니다.오늘날까지도 자주 거론되는 북방영토 문제와 함께 소련-일본 중립조약의 배경과 내용, 그리고 폐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해 보겠습니다.소련-일본 중립조약이란?소련-일본 중립조약(日ソ中立条約)은 194

  • 소일기본조약이란? 체결 배경과 이후의 일소 관계

    앞서 소일중립조약에 대해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일본과 소련은 그 외에도 소일기본조약과 소일공동선언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왔는데요.근대사 속 일본과 소련의 관계를 이해하면 오늘날 양국 관계를 파악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이번 글에서는 일본과 소련의 기본적인 관계를 규정한 조약인 소일기본조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소일기본조약이란?1925년(다이쇼 14년)에 체결된 소일기본조약은 일본과 소련 간의 기본적인 관계를 정한 조약입니다. 일본의 가토 다카아키 총리와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 명의로 체결되었으며, 실무에서는 시데하라 기주로 외

  • 한일기본조약이란? 체결 배경부터 주요 내용, 청구권 문제까지 총정리

    최근 언론에서 한일 관계 관련 이슈가 연일 보도되면서 한일기본조약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더라도, 그 실질적인 내용까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일 간 현안 문제를 바라볼 때, 전후 한일 관계의 흐름을 이해하면 한일기본조약을 보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질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기까지의 배경, 조약의 주요 내용, 그리고 그 이후의 영향까지 알기 쉽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한일기본조약이란? 한일기본조약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 벼농사의 도입과 야요이 문화의 탄생 <기원전 10세기?~서기 3세기?>

    벼농사의 도입 배경 일본 열도에서 조몬 문화가 이어지던 시기, 중국 대륙에서는 약 기원전 6500년~5500년 무렵 황하 중류 지역에서 조·피 같은 곡물을 재배하는 농경 문화가 시작되었고, 양쯔강 유역에서도 벼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철기 사용이 널리 보급되고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농업이 눈부시게 발전했으며, 기원전 3세기에는 강력한 통일 국가인 전한(서한)이 성립합니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는 이러한 대륙 문명의 영향을 받으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조몬 시대 말기인 기원전 5세기 무렵, 북부 규슈에서 물을 대어 경

  • 고분의 출현과 야마토 정권의 탄생: 일본 고대 국가의 형성

    야요이 시대 후반에는 소국을 다스리던 지배자들의 대형 봉분 무덤이 여러 곳에서 축조되었습니다. 그리고 3세기 후반부터는 주로 서일본을 중심으로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과 같은 더욱 거대한 고분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고분 내부에는 목관을 안치하는 세석축(竪穴式石槨) 계열의 매장 시설이 마련되었고, 수많은 동거울(銅鏡)을 비롯한 다양한 부장품이 함께 넣어졌습니다. 이러한 무덤들은 각지에서 지배자의 무덤으로 축조되었으며, 그중 가장 큰 고분들은 나라현의 야마토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바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Total 2058 -세계사  FirstPage PreviousPage NextPage LastPage CurrentPage:93/103  20-세계사/Page Goto:1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