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아시아의 역사

  • 나라 시대 세금 이야기 – 조·용·조(租庸調)와 백성들의 무거운 부담

    지금도 그렇듯, 나라(奈良) 시대에도 백성들은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이번 글에서는 다이호 율령(大寶律令) 제정 이후 백성들에게 부과된 세금 제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조용조(租庸調)란 무엇인가?율령 국가가 된 일본에서는 약 25명 정도로 구성된 호(戸)라는 행정 단위가 있었고, 호적과 계장(計帳)에는 이 호 단위로 주민이 등록되었습니다. 호적에 등록된 농민들은 구분전(口分田)을 분배받는 동시에 각종 세금과 의무를 지게 되었습니다.이러한 호(戸) 다섯 개가 모이면 오호(五保)라 불리는 집단이 되어 서로 연대 책임을 지게 됩니다

  • 다이호 율령(大宝律令)과 관직·행정 조직 — 율령 국가 일본의 정치 체제

    아스카 시대부터 나라 시대에 이르는 시기, 일본은 의례 중심의 국가에서 법률 국가로 나아가던 때였습니다. 오늘날의 법률과 같은 규칙이 명확하게 정해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입니다.701년에 반포된 다이호 율령(大宝律令)을 통해 일본의 정치 체제는 거의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율(律)은 오늘날의 형법에 해당하고, 령(令)은 행정 조직과 관리의 업무 규정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이번 글의 주제는 율령제도 속 행정 조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나라 시대뿐 아니라 그 이후 시기에도 계속 등장하는 관직 이름이 많으므로, 함께 살펴보겠습

  • 후지와라씨 번영의 초석을 다진 후지와라노 후히토

    후지와라(藤原)씨라고 하면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가문입니다. 그렇다면 선조인 가마타리(鎌足)를 둔 후지와라씨는 어떻게 헤이안 시대에 걸맞은 권세를 쌓아 올렸을까요?예전에 사이메이 천황과 귀신 이야기를 할 때 후지와라씨에 대해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오늘은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후지와라씨의 시조는 나카토미노 가마타리(中臣鎌足)지만, 그의 아들 후지와라노 후히토(藤原不比等)야말로 가문 번영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입니다.후지와라노 후히토의 생애 연표그럼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생애와 관련된 사건들을 연표로

  • 간무 천황의 양대 사업: 도고쿠(東北) 평정

    간무 천황의 두 가지 대표 사업은 나가오카쿄와 헤이안쿄로의 천도, 그리고 도고쿠(동북 지방)의 경영이었습니다.이번 글에서는 그중 도고쿠 경영, 즉 도고쿠 평정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겠습니다.도고쿠 지방의 역사먼저 당시 동북 지방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짚어보겠습니다.도고쿠 지방은 야요이 시대가 시작된 뒤에도 속조몬 시대라 불리는 시대에 머물러 있었으며, 야마토 정권과 일본 열도 서부의 흐름과는 별개의 문화를 이어갔습니다.다이카 개신이 단행되면서 동북 지방에는 도오쿠니(道奥国)라는 국명이 설치되었지만,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것에 불과했고 실

  • 철은 언제 처음 사용되었을까?

    『고분(무덤)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라는 글을 쓰면서 철에 대해서도 함께 조사하게 되었다.이번 글은 일본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을 수도 있지만, 조사하며 느낀 점과 잡학(트리비아)을 정리해 보려 한다.기억에 의존해 작성한 글이므로 연구를 위한 참고 자료 정도로 활용해 주길 바란다. 참고로 이 주제는 일본사에 국한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다.최초로 철을 사용한 나라, 히타이트기원전 1500년경부터 히타이트는 철분을 다량 함유한 운석을 이용해 철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최초로 철을 사용한 나라로 언급된다.이처럼 철분이 풍부한

  • 히미코와 위(魏)나라의 관계 – 야마타이국이 조공을 보낸 진짜 이유

    앞서 야마타이국(邪馬台国)에 관한 글을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히미코가 왜 위나라에 조공을 바쳤는지, 그 이유를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표면적인 이유는 철을 확보하기 위해 한반도 남부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반도로 조공을 보내게 된 배경은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정세를 통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이번 글에서는 히미코와 위(魏)나라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히미코 시대의 중국 대륙 정세히미코가 활동한 시기, 즉 248년 이전의 중국 상황부터 먼저 짚어보겠습니다.239년(『위지 왜인전

  • 아스카 시대 최강 호족 소가 씨(蘇我氏)의 내분 이야기

    아스카 시대를 들여다보면 조정 내부와 유력 호족들 사이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 고대사 최대의 내분으로 꼽히는 임신의 난(壬申の乱)은 매우 유명한데, 호족 간의 항쟁과 황위 계승권을 둘러싼 다툼은 이 시대에 중앙집권 국가를 탄생시켰지만, 그 이면에는 끊임없는 혼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당대 최고의 권세를 누리던 소가 씨의 내부는 어떠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아스카 시대를 대표하는 유력 호족인 소가 씨(蘇我氏)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겠습니다. 소가 씨의 내분 을사의 변(乙巳の変) 당시 중대형왕자

  • 임신의 난(진신전쟁)의 배경과 원인 – 덴지 천황 사후 벌어진 황위 계승 전쟁

    임신의 난이란 무엇인가?오늘 살펴볼 주제인 ‘임신(壬申)’은 672년, 덴지 천황이 세상을 떠난 뒤 벌어진 일본 역사상 최초의 황위 계승 전쟁, 즉 임신의 난을 가리킵니다.전쟁의 당사자는 덴지 천황의 동생 오아마 황자(大海人皇子, 훗날 덴무 천황)와 덴지 천황의 아들 오오토모 황자(大友皇子)였습니다. 숙부와 조카가 황위를 두고 맞선 셈인데, 과연 이 내란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 하나씩 짚어 보겠습니다.임신의 난의 원인오랫동안 덴지 천황을 보필해 온 동생 오아마 황자와, 천황의 아들 오오토모 황자 사이에서 임신의 난이 벌어졌습

  • 신의 분노로 멸망한 아사쿠라 궁, 아사쿠라 다치바나 히로바미야의 전설

    백강 전투를 다룬 글에서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그 전초 기지가 되었던 궁궐 아사쿠라 다치바나 히로바미야(朝倉橘広庭宮)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흔히 아사쿠라미야라고도 불리는 곳입니다. 전설이 얽힌 궁궐인 만큼,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아사쿠라 다치바나 히로바미야의 위치 후쿠오카현 아사쿠라시에는 다치바나노히로바 공원(橘広場公園)이라는 공원이 있습니다. 이 일대에 아사쿠라 궁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공원 안에서는 아사쿠라 궁과 관련된 석비와 신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석비 근처 안내판에는 다

  • 일본 역사 속 '오니(鬼)' 이야기 – 고문헌에 기록된 귀신의 기원과 정체

    지난 글에서는 사이메이 천황(齊明天皇)과 연관된 아사쿠라 도치바나노 히로니와 궁(朝倉橘広庭宮)을 다루면서 오니(鬼)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번에는 그 오니가 무엇이었는지 조금 더 깊이 파헤쳐 보려 한다.일본사의 본류에서 다소 벗어난 주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최초로 전해진 오니의 뉘앙스를 이해하면 당시 사람들이 어떤 대상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짐작할 수 있다.오니의 어원과 기원오니의 어원은 오누(隠ぬ), 즉 숨겨진 존재, 경멸받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니라는 호칭 자체는 헤이안 시대 말기에 정착한 것

  • 아스카 시대 일본의 토지 제도와 장원의 탄생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항상 장원(莊園)이라는 용어를 마주하게 됩니다. 장원이라 하면 귀족이나 사찰이 소유한 사유지에서 농민들이 벼농사를 강제로 지어야 했다는 막연한 이미지가 떠오르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누가, 어떤 방식으로 토지를 지배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가마쿠라 시대의 지두(地頭)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아스카 시대의 토지 상황부터 순서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아스카 시대의 토지 상황장원이 성립하기 전 토지의 소유자 ⇒ 조정(국가·천황)이것이 가장 큰 전제입니다.(그 이전 야마토

  • 구마다 수취 방식의 붕괴와 장원의 발전

    지난 글에서는 아스카 시대의 토지 제도에서 비롯된 초기 장원(初期荘園)에 대해 다루었습니다.이번 글의 주제는 장원의 발전과 구마다(名田) 수취 방식이 왜 유지되지 못했는가입니다.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구마다 수취 방식의 붕괴먼저 농민과 논의 관계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나라 시대에 간덴에이넨시자이 호(墾田永年私財法)가 제정된 이후, 농민 간의 빈부 격차가 크게 벌어졌습니다.부유한 유력 농민 중에는 농업 경영을 더욱 확장하려는 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귀족의 가신이 되거나, 심지어 허가 없이 승려가 되는

  • 조약 개정의 주역! 코무라 주타로의 경력이 너무 대단하다는 것에 대해

    코무라 주타로요? 아, 그 조약 개정한 사람이죠? 코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郎)라는 이름을 들으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사실 저도 일본사에 그리 밝은 편은 아니어서 똑같은 막연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미야자키현 오비시에 있는 코무라 주타로 기념관을 직접 방문하고 나서 인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의 경력을 하나씩 짚어보면, 왜 그가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꼽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코무라 주타로의 놀라운 경력 먼저 코무라 주타로의 발자취를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1855년:

  • 문무를 겸비한 오다 가문의 제2의 인재, 니와 나가히데의 생애와 평가

    일본 역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체로 사카모토 료마나 오다 노부나가가 1위로 꼽힙니다.오다 노부나하는 출신이나 사상을 불문하고 오직 실력에 따라 부하를 평가하고 보상하는 인물로 유명한데요.이번 시간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들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무장, 니와 나가히데의 생애를 살펴보겠습니다.문무를 겸비한 오다 가문의 충신전국시대, 시바 씨와 오다 씨는 나고야 일대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권력 다툼을 벌였습니다.오다 노부나가의 집안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 오다 노부히데가 직접 세 번째

  • 오다 노부나가의 첫 번째 후견인, 하야시 히데사다 — 배신과 25년 뒤 찾아온 대가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하야시 미마사카노카미(林美作守)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물의 본명이 하야시 히데사다(林秀貞)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하야시 히데사다는 오다 노부히데가 아들 노부나가를 위해 임명한 네 명의 숙로(宿老) 중 한 명이자, 노부나가의 초대 수석 후견인이었다. 그런데 이 노신은 결국 주군을 배신하고 말았고, 25년 뒤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도산만이 알아본 천재, 그러나 하야시는 포기했다전국의 흰눈깔비라 불리는 사이토 도산은 단 한 번의 대면에서

  • 오다 노부나가의 스승 히라테 마사히데, 할복으로 끝낸 안타까운 최후

    오다 노부나가는 어린 나이에 나고야 성의 성주가 되었지만, 당시 아버지 노부히데는 어린 상속자를 보좌하기 위해 네 명의 숙로(宿老)를 곁에 붙여주었습니다.그 첫 번째가 하야시 히데사다였고, 이번 글의 주인공인 히라테 마사히데는 그다음가는 제2의 필두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노부나가와 마사히데의 관계어린 노부나가는 하야시 히데사다보다 히라테 마사히데를 더 신임했으며, 그를 지이(爺, 할아버님)라 부르며 흠모하고 따랐다고 전해집니다.우츠케(大うつけ)라 불리던 문제아 소년 노부나가와 마사히데의 관계는, 마치 친손자와 할아버지처럼 깊고 정겨

  •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 가가 백만 석의 창시자, 마에다 도시에의 생애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 가가 백만 석의 창시자, 마에다 도시에마에다 도시에(前田利家)는 오와리국 아이치군 아라코의 영주 마에다 도시하루(前田利春)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태어난 집안이 특별히 유리하지 않았고, 가문을 계승할 서열도 아니었으며,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것도 아니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가 백만 석(加賀百万石)의 창시자가 됩니다.이번 글에서는 누구보다 담력이 커서, 육천마왕으로 공포의 대상이던 오다 노부나가에게조차 간에 털이 돋은 사내라고 평했던 마에다 도시에의 생애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창의 마타자(槍の又左

  • 위진남북조의 미친 군주들! 스스로를 '우주대장군'이라 칭한 후경(侯景) 이야기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권력이 클수록 한번 미쳐 날뛰면 막을 수 없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며, 권력이 한곳에 집중된 국가에서는 기괴한 군주가 등장하는 일이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그중에서도 중국과 로마 황제들의 광기는 남다릅니다. 단순한 폭군 수준이 아니라, 미친 황제들의 행진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입니다.이번 시간에는 특히나 광기 어린 군주들이 많았던 위진남북조 시대에서 등장한 우주대장군 후경(侯景)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혼란스러웠던 위진남북조위진남북조는 중국 역사에서 미친 군주들이 가장 많았

  • 어쩔 수 없는 나라들 – 위진남북조 시대의 '양(梁)'이라는 나라를 아시나요?

    위진남북조 시대에 존재했던 나라 양(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건국된 지 약 50년 만에 멸망한 단명한 국가였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무려 일곱 명의 황제가 배출된, 이르자면 어쩔 수 없는 나라였는데요.역사 교과서에서 남조(南朝)에 송(宋)·제(齊)·양(梁)·진(陳) 네 왕조가 있었다는 사실만 알고, 각 나라가 어떤 나라였는지는 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남조 네 왕조 중 하나인 양(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양의 황실은 제(齊)와 같은 소씨(蕭氏)소씨(蕭氏)는 초한전

  • 육조의 마지막 왕조 '진(陳)'이 들려주는 나라의 역사!

    중국 역사에서 삼국시대의 오(吳)를 시작으로 동진(東晉), 송(宋), 제(齊), 양(梁), 진(陳)까지, 건도를 난징(建康)에 둔 여섯 왕조를 통틀어 육조(六朝)라고 부릅니다.이 시기는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서(蘭亭序)』가 탄생할 만큼 문화적으로 크게 꽃피웠지만, 정치적으로는 혼란이 거듭되면서 명운이 짧은 왕조들이 이어졌습니다.오늘은 그 육조의 마지막 왕조인 진(陳)의 역사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우주대장군을 무찌른 영웅이 세운 나라진은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기인(奇人)인 우주대장군 후경(侯景)을 토벌한 무장 진패선(陳霸先)이 세운

Total 2058 -세계사  FirstPage PreviousPage NextPage LastPage CurrentPage:100/103  20-세계사/Page Goto:1 94 95 96 97 98 99 100 101 102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