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유럽의 역사

  • 로마 제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 이야기 – 10월이 왜 'October'라고 불릴까?

    로마 제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누마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높지 않을 것이고, 아마 그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겁니다. 하지만 조금만 알아보면, 이 인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오늘은 로마 왕국의 제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Numa Pompilius)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로물루스의 후계자를 둘러싼 갈등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가 갑작스럽게 사라진 후, 누가 그 뒤를 이을 것인가를 두고 큰 분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로마는 참 흥미로운 나라입니

  • 로마 왕국 제3대 왕 툴루스 호스틸리우스(Tullus Hostilius), 역사를 바꾼 전쟁왕의 이야기

    로마 왕국 시대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교과서에도 거의 등장하지 않고, 후대의 제정 로마처럼 화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이 시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로마 왕국의 세 번째 왕, 툴루스 호스틸리우스(Tullus Hostilius)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다시 라틴인의 왕으로로마의 초대 왕 롬룰루스는 라틴인, 두 번째 왕 누마 폼필리우스는 사비니인이었고, 세 번째 왕인 툴루스는 다시 라틴인이었습니다.재미있는 것은 라틴인이 왕위에 오르면 로마가 전쟁을 좋아하는 국가

  • 로마 왕국 제4대 왕 안쿠스 마르키우스, 숨겨진 업적 총정리

    200년, 단 일곱 명뿐이었던 로마의 왕들로마 왕정 시대는 약 200년간 이어졌지만, 왕은 단 일곱 명뿐이었습니다.로마의 왕은 종신 재임이 특징이며, 각 왕 모두 긴 통치 기간을 누렸습니다.짧은 수명으로 막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던 일본의 막부나 중국의 역대 왕조와는 대조적이며, 불과 50년 동안 20명이 넘는 황제가 교체되었던 로마 군인황제 시대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집니다.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당시 로마가 그다지 크지 않아 권력 다툼이 벌어질 여지가 적었고, 순수하게 유능한 인재가 왕으로 선출되었으며 왕위가

  • 로마 왕정 시대의 야심가,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업적

    이 블로그는 검색량이나 SEO를 의식하지 않고, 쓰고 싶은 때에 쓰고 싶은 내용을 쓰는 것이 유일한 규칙입니다. 그래서 로마 왕정 시대 요약 글처럼 조회수가 기대되지 않는 주제라도 과감히 다뤄보겠습니다.로마 최초의 에트루리아계 왕야마카와(山川) 교과서나 역사 용어집에서는 로마가 에트루리아로부터 독립했다는 서술만 강조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 로마에는 에트루리아 출신의 왕도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그 주인공이 바로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Tarquinius Priscus)입니다.흥미로운 점은 타르퀴니우스가 순수한 에

  • 로마 제6대 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로마 왕국도 이제 생명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방장기(方丈記)』의 유명한 서두인 흐르는 강물은 끊임없고, 그 물은 본래의 물이 아니다라는 구절은 어느 왕조에나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말입니다. 로마는 이미 목가적인 도시 국가의 모습을 벗어나 대국으로 성장해 가고 있었고, 권력을 둘러싼 각축 역시 점차 뜨거워지고 있었습니다.이번 글에서는 로마 왕국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왕인 세르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의 일대기를 살펴보겠습니다.출신 미상의 청년을 알아본 타르퀴니우스의 혜안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출신은

  • 로마의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 로마는 어떻게 공화정으로 전환되었는가?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Tarquinius Superbus)는 오만한 타르퀴니우스라는 뜻으로, 본명은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입니다.그러나 그가 본명으로 불리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남긴 업적이 너무도 적었기 때문입니다.오만한 타르퀴니우스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로마 왕국의 5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친아들이자, 6대 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사위였습니다.원래 5대 왕의 두 아들과 6대 왕의 두 딸이 서로 혼인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배우자들을 잃게 되었고, 그 결과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와 툴리아가 재혼하게 됩니다.그런데

  • 달력의 역사! 영어 달 이름의 유래 – 왜 7월은 July, 8월은 August일까?

    영어 달 이름은 사실 모두 라틴어에서 유래했습니다.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이라 불리는 달력인데, 그 이전에는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이 사용되었습니다.율리우스력의 율리우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영어로는 줄리어스 시저)에서 가져온 것으로, 7월을 뜻하는 영어 July 역시 여기서 유래했습니다.율리우스력이 채택되기 전에는 로마 왕정 시대 제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가 도입한 달력이 사용되었고, 그보다 더 이전에는 한 해가 10개월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이번 글에서는 이

  • 로마의 제2의 아버지 카밀루스, 다섯 차례의 위기에서 로마를 구원하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Marcus Furius Camillus)는 로마의 제2의 아버지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일반 역사 교과서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어 대중에게는 낯선 존재이기도 합니다.이번 글에서는 로마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카밀루스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다섯 번이나 독재관에 선 남자공화정으로 전환한 뒤 로마의 정치 체제는 두 명의 집정관과 원로원이 함께 통치하는 형태였습니다. 이 체제는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긴급 상황에서 신속하게 결정을 내

  • 고대 로마의 유일한 성문법 '12표법', 제정 배경부터 현대 법에 미친 영향까지

    로마 공화정을 이야기할 때 12표법(Lex Duodecim Tabularum)이라는 법의 존재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용어를 단어로만 기억할 뿐,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12표법이 무엇인지, 왜 제정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12표법의 원문은 사실 현대에 전해지지 않는다12표법이 역사 교과서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로 다뤄지는 이유는, 로마 최초이자 유일한 성문법이기 때문입니다. 법은 크게 관습법, 성문법, 판례법으로 나뉘는데, 12표

  • 로마 민주화의 전환점,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 법(Lex Licinia Sextia)이란?

    기원전 494년, 로마에는 평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관직인 호민관(트리부누스)이 설치되었습니다. 물론 전설로 전해지는 일화일 뿐 확실한 기록은 아니지만, 이 제도는 이후 로마 정치의 중요한 축이 됩니다.평민회에서 선출된 호민관은 원로원과 집정관(콘술)의 결정에 대해 거부권(베토)을 행사할 수 있는 특권을 지녔습니다. 처음에는 2명이었으나, 기원전 449년부터는 정원이 10명으로 늘어났습니다.이번 글의 주제는 바로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 법입니다. 이 법안을 주도한 리키니우스와 섹스티우스는 모두 호민관 출신 인물들이었습니다.리키니우

  • 로마 공화정의 핵심, 집정관(콘술) 제도 완벽 해설!

    공화정으로 전환된 이후의 로마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집정관(콘술, Consul)입니다. 현대 어느 나라의 정치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직제였던 만큼, 로마 정치만의 특색을 만들고 거대 제국으로 발전시킨 비결 중 하나로 꼽힙니다.집정관은 항상 두 명, 임기는 1년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왕이 가지고 있던 권한이 그대로 집정관에게 이양되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집정관은 군사권과 재정권을 포함해 국정 전반에 대한 결정권을 가졌으며, 항상 두 명이 선출되고 임기는 1년으로 고정되어 있었습

  • 독재자의 어원! 로마 공화정의 '딕타토르' 제도 완벽 정리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 중 하나인 『위대한 독재자』는 히틀러를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독재자라는 단어가 지닌 이미지가 매우 부정적인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일 것입니다.독재자의 이미지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로마 공화정 말기부터였을 겁니다. 하지만 로마가 평시와 비상시 모두에서 강대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이 독재관(딕타토르) 제도가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오늘은 이러한 로마의 독재관 제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임기는 6개월, 인원은 단 1명, 그러나 권한은 절대적로마 공화정

  • 프라이토르, 콰이스토르, 아에딜리스, 켄소르까지! 로마 공화정의 핵심 관직 완벽 정리

    로마 공화국의 관직은 서열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관료제처럼 체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었는데, 그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최상위: 독재관 (Dictator) 1위: 집정관 (Consul) 2위: 프라이토르 (Praetor, 법무관) 3위: 아에딜리스 (Aedile) 4위: 호민관 (Tribunus Plebis) 5위: 콰이스토르 (Quaestor, 재무관) 그렇다면 각 관직이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프라이토르 (Praetor, 법무관) 프라이토르는 흔히 법무관으로 번역되지만, 실

  • 로마 공화국의 초석, 호민관(트리부누스) 제도의 모든 것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부와 권력을 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의 계급 투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로마 공화국의 역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귀족(파트리키)과 평민(플레브스)의 대립이야말로 로마 공화국 정치사의 핵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로마를 다른 어떤 국가 체제와도 구별 짓는 특징이 있다면, 바로 귀족에 맞서 평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호민관(트리부누스 플레비스) 제도입니다. 오늘은 이 독특한 직제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임기 1년, 평민회에서 선출되다 로마의 정치 구조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합니다. 귀족

  • 로마가 최강 국가가 된 열쇠! '로마 시민권'의 모든 것

    영어 단어 시민권(citizenship)이 로마 시민권을 뜻하는 라틴어 키비타스(civitas)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로마 역사를 논할 때 로마 시민권이 어떤 제도였는지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주제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로마 시민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로마를 최강의 나라로 만든 시민권 제도 로마의 정치 체제는 오늘날 정치 시스템의 모범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상 로마보다 영토가 넓었던 나라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대의 역사에 로마만큼 큰 영향을 남긴 나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

  • 로마 역사를 바꾼 호르텐시우스 법, 그 의미와 제정 배경을 알아봅니다!

    세계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필자는 문과 계열이긴 하지만, 문학부가 아니라 법학부 출신입니다. 한동안 변호사가 되는 것을 진지하게 목표로 삼았지만, 적성에 전혀 맞지 않아 금방 좌절하고 말았죠. 그래서인지 저는 법률에 관한 글을 읽고 쓰는 일을 몹시 싫어합니다. 고통스럽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직 써 보진 않았지만, 파르살루스 전투나 악티움 전투처럼 드라마틱한 주제라면 글을 쓰는 것도 분명 재미있을 것입니다. 반면 호르텐시우스 법 같은 법률 이야기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에게 그다지 즐겁지 않을 수 있겠죠.

  • 인품이 곧 실력!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진정한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대체 어떤 인물일까?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안토니누스 피우스라는 이름 자체는 세계사 교과서에 등장하고 시험에도 자주 출제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사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바로 안토니누스 피우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비로운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오현제(Five Good Emperors)로 불리는 다섯 황제 중 네 번째 인물입니다. 물론 오현제라는 평가는 후대가 내린

  • 로마 제국을 지켰지만 '실업자'로 생을 마감한 막시미아누스 황제

    막시미아누스 황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세운 전제정치(도미나투스) 체제 안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보좌하며 사두정치(테트라르키아)를 실현시킨 인물입니다. 동양에서는 그의 인지도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사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테트라르키아를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막시미아누스 덕분이었습니다. 그 점을 고려하면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번 시간에는 막시미아누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제2의 황제막시미아누스의 젊은 시절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판노니아 출신이며,

  • 로마 제국 갈레리우스 황제 이야기 – 그는 카리스마를 잇는 다리였을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시작한 사두정치(테트라키아) 체제에서 갈레리우스는 동방의 부제(副帝)로 임명되어, 전임 황제들이 은퇴한 뒤 정식 황제로 즉위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기독교 박해자라는 오명과 함께 회자되곤 하는데, 과연 그는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일까요?디오클레티아누스의 부제로 임명되다디오클레티아누스는 처음에 막시미아누스를 서방의 공동 황제로 세워 제국을 통치했지만, 광대한 제국을 두 사람만으로 다스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에 293년 체제를 확장해 각 황제 아래에 부제를 하나씩 두는

  •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왜 세계사의 분수령이 되었나?

    일본의 세계사 교과서 어디에도 파르살루스 전투—로마 역사상 최대의 전쟁—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니케아 공의회를 다루지 않는 교과서는 단 한 권도 없습니다. 로마의 운명보다 기독교 교리를 확정한 회의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세계사에서 이 회의가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세력은 흔히 WASP라고 불립니다. White Anglo-Saxon Protestant, 즉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의 약자입니다. 영국과 미국을 지배해 온 집단이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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