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유럽의 역사

  • 로마에도 있었던 삼국시대!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 제국의 흥망성쇠

    세계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대를 꼽으라면 단연 후한 말의 삼국시대를 들 수 있습니다. 영화, 만화, 소설은 물론 게임까지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될 만큼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와 함께 두터운 팬층을 자랑합니다.그런데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3세기 로마 제국 역시 중국의 삼국시대와 거의 같은 시기에 세 나라로 분열되었다는 점입니다.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도 등장하지 않고, 게임이나 만화, 영화 소재로도 거의 다뤄지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이번 글에서는 이처럼 숨겨진 로마의 삼국시대

  • 분열된 로마 제국을 구원한 최고의 군인 황제, 아우렐리아누스

    군인 황제 시대는 로마 제국 쇠퇴의 상징으로 자주 언급되지만, 흥미롭게도 이 시기에 폭군이나 암군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폭군과 암군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국가에 여유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국가에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암군이 등장하면 그 나라는 순식간에 멸망하고 마련입니다.대기업은 경영진이 무능해도 당장은 무너지지 않지만, 중소기업은 경영진 하나 잘못되면 급격히 기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다만 군인 황제 시대의 모든 황제가 유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역량이 부족한 황제들이 줄줄이 이어진 것도 이 시대의 특징 중 하나

  • 로마 최대의 스캔들! 사산조 제국의 포로가 된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세계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발레리아누스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군인 황제 시대의 여러 황제들 중에서도 특별히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입니다.그가 유명해진 이유는 단연코 사산조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힌 유일한 로마 황제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발레리아누스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지금부터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명문 귀족의 혈통발레리아누스의 본명은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로, 삼두정치의 일원이었던 크라수스와 같은 리키니우스 씨족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군인 황제 시대에는 주로 군대의 옹립을 받은 인물

  • 최초의 군인 황제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트라키아 출신 거인 황제의 영광과 몰락

    막시미누스 트라쿠스(Maximinus Thrax)는 3세기 위기 시대에 잠시 로마 제국을 통치한 황제입니다. 본명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이지만, 일반적으로 트라키아의 막시미누스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발굴한 천재로마 공화정은 평민에게도 개방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소수 엘리트가 지배하는 과두정에 가까웠고 고위 관직의 상당 부분은 명문 귀족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군인 황제 시대에 이르러서는 출신 배경과 무관하게 누구나 황제가 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막시미누스는 트

  • 로마에 활을 겨눈 팔미라의 여왕 제노비아, 그 화려한 최후는?

    로마 역사에는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카이사르의 어머니 아우렐리아, 그라쿠스 형제의 어머니 코넬리아처럼 현모양처의 모범을 보인 인물도 있지만, 로마사를 가장 요란하게 장식한 것은 단연 악녀 유형의 여성들이었습니다.그 대표적인 예로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아내들이었던 아그리피나와 메살리나를 꼽을 수 있습니다.팔미라 제국의 여왕 제노비아 역시 이러한 악녀 유형에 속하는 인물로 평가받곤 합니다. 그렇다면 로마 제국에 정면으로 맞섰던 그녀의 최후는 어땠을까요?팔미라 제국의 등장서기 260년, 중국에서 삼국시대가 한창이던 무렵 로마 역시

  • 로마 영사를 세 번이나 역임했지만 활동상은 잘 알려지지 않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이야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장인이자,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오른팔이며, 로마의 집정관을 무려 여러 차례 역임한 인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의 이름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로마 공화정 말기의 격변기를 관통한 그의 발자취는, 훗날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거목이 태어나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내전의 시대, 어지럽던 로마 기원전 1세기 전후의 로마는 내전의 시대라 불릴 만큼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남쪽에서는 누미디아 왕 유구르타가 반란을 일으켰고(유구르타 전쟁, 기원전 112~106년)

  • 사산조 페르시아를 제압했으나 벼락에 맞아 죽은 로마 황제 카루스

    벼락을 맞고 최후를 맞은 병영황제, 카루스로마의 병영황제 시대라고 불리는 혼란기의 황제들은 대부분 암살이나 질병 등 뜻밖의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카루스(Carus)는 원정 도중 벼락을 맞아 사망했다는 기록을 남긴, 극도로 이례적인 최후를 맞은 황제입니다.사산조 페르시아를 격파한 황제로마 역사에는 통칭 다섯 번의 굴욕이라 불리는 치욕적인 패배들이 있습니다.첫 번째는 기원전 4세기경 갈리아족이 로마 시의 절반 가까이를 점령한 사건입니다. 당시 로마는 로마의 제2의 건국자라 불리는 카밀루스의 지휘 아래 잃었던 영토를 되

  • 로마를 뒤흔든 최대의 반란! 스파르타쿠스 반란(제3차 노예 전쟁)과 스파르타쿠스의 삶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 『스파르타쿠스』가 말해주는 것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 가장 뛰어난 걸작을 꼽으라면 단연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연출하고 커트 더글러스가 주연을 맡은 『스파르타쿠스(Spartacus, 1960)』를 들 수 있습니다.이 영화는 로마라는 단어를 빼더라도 세계 영화사 베스트 100에 당당히 들어갈 작품입니다. 로렌스 올리비에와 토니 커티스 등 화려한 출연진도 있지만, 무엇보다 스파르타쿠스 반란이라는 소재 자체가 지닌 극적인 힘이 이 영화를 명작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격동의 시대를 살았

  • 로마에 맞선 폰토스의 왕, 미트리다테스 6세와 세 차례의 전쟁 이야기

    야마카와 교과서와 용어집에는 미트리다테스의 반란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미트리다테스는 애초에 로마에 종속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트리다테스 전쟁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적절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그리스 세계와 로마 세계가 정면으로 충돌한 미트리다테스 전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미트리다테스 마누라는 이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는 호칭은 낯설지 않지만, 예컨대 대왕 요한 같은 이름은 다소 어색하게 들립니다. 위대한 왕을 뜻하는 단어는 왕(King)이 아니라 마누(Manu)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훗날 등장하는 카

  • 브루투스, 너도 그런가! 카이사르를 암살한 두 명의 브루투스 이야기

    셰익스피어가 왜곡한 카이사르 암살의 진실 셰익스피어의 영향 때문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브루투스를 카이사르 암살의 배후로 생각하지만, 사실 주모자는 카시우스였습니다. 카이사르 주변 인물들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묘사는 상당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역사관마저 자신만의 색으로 물들인 셰익스피어는 문제지만, 훗날 저명한 평론가 버나드 쇼는 “셰익스피어는 카이사르를 몰랐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차치하더라도, 폼페이우스로서는 참 억울한 처지입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기번이나 맘젠보다 이전 시대의 인물입니다. 마치 인터넷이 없던 시

  • 카이사르 암살의 주범!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의 배신 일대기

    일본에서 배신자 하면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꼽히지만, 서양의 배신자를 말할 때는 유다, 브루투스, 그리고 카시우스가 가장 먼저 거론됩니다.실제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문호 단테는 걸작 『신곡』에서 이 세 사람을 지옥 최심부의 얼음 호수 코키토스에서 악마의 왕 사탄에게 영원히 씹히는 중죄인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만큼 배신은 서양 문화에서 가장 무거운 죄로 여겨진 것입니다.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의 주모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저지른 짓은 암살만이 아닙니다. 오늘은 그의 배신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펴보겠습니다

  • 카이사르에 맞선 마지막 공화파! 소 카토의 고독한 삶과 최후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실패한 이후 약 100년간, 로마는 내전의 세기라 불리는 격동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뒤 지중해를 손아귀에 넣은 로마에는 더 이상 맞설 적이 없었습니다. 인간은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적이 사라지면 스스로 새로운 적을 만들어내곤 하니까요. 외부에 적을 잃은 로마는 결국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내전의 세기 속에서 갈등이 정점에 달한 시기가 바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대립하던 시대였습니다. 바로 그때, 삼두정치 세력에 맞서 끝까지 저항했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 기원전 최대 해전 '악티움 해전', 로마 제국 탄생을 결정짓다

    기원전 31년 9월, 그리스 서해안 악티움 곶 앞바다에서 벌어진 해전은 고대 세계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로마 공화정 최대 규모의 내전이자 기원전에 치러진 해전 중 가장 큰 전투였던 악티움 해전은 지중해의 패권을 걸고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이 격돌한 전쟁이었습니다.이 전쟁의 결과로 공화정 로마는 소멸했고, 이후 500년간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게 될 로마 제국이 탄생했습니다.겉으로는 로마 대 이집트, 실상은 카이사르의 후계자 싸움악티움은 그리스 서부 프레베자 인근에 위치한 곶으로, 약 1,500년 뒤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Marcus Aemilius Lepidus)는 대체 무슨 일을 한 인물일까?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는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와 함께 제2차 삼두 정치를 이끈 인물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 묻는다면,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솔직히 말하면, 그는 역사적으로 두드러진 업적을 남기지 못한 인물입니다.명문 아이밀리우스 가문의 후예레피두스는 소 스키피오 등 수많은 집정관을 배출한 로마 최고의 명문 가문, 아이밀리우스 씨족(gens Aemilia) 출신입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집정관을 지냈는데, 처음에는 술라파에 속했다가 훗날 민중파로 방향을 바꾸었고, 폼페이우

  • 초등·중등 역시험 필수 개념! 로마의 삼두정(三頭政) 총정리

    세계사 교과서라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삼두정(Triumvirate)입니다. 초등 과정에서든 중등 과정에서든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만큼, 오늘은 삼두정의 탄생 배경부터 몰락까지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삼두정은 라틴어 트리움비라투스(Triumviratus)에서 유래한 단어로, 말 그대로 세 사람의 지배를 뜻합니다. 당시 로마의 최고 기관이었던 원로원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삼두정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 원로원의 변천로마 공화정은 근대 의회 민주주의의 모태로 평가받으며, 실제로 현대 영어에서 상원을 가리키는

  • 로마 공화국의 위기! 격동의 '내전 1세기' 완벽 정리

    로마 내전 1세기, 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가중국의 삼국시대, 일본의 전국시대, 그리고 로마의 내전 1세기. 많은 역사 애호가들이 가장 열광하는 시대로 꼽히는 이 세 시대에는 놀랍도록 명확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외부의 적이 아니라 같은 민족끼리 피 튀기는 싸움을 벌였다는 점입니다.“어떤 국가도 오래도록 안전할 수 없다. 밖에 적이 없으면 안에서 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이 경구는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 뼈아픈 상처를 안겨 준 한니발 바르카가 남긴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말처럼, 로마는 숙적 카르타고를 정복한

  • 황제의 오른팔!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의 뛰어난 재능과 그의 일대기

    군사적 재능이 없었던 옥타비아누스카이사르의 뒤를 이은 옥타비아누스는 사실 군사적 재능이 없었습니다. 그의 지휘 능력은 로마 역사상 인물들을 통틀어 거의 최하위권으로 평가되며, 그가 직접 지휘한 전투에서는 대체로 패배를 거듭했습니다.그렇다면 옥타비아누스는 무능한 인물이었을까요? 답은 아니다입니다.카이사르는 만능의 천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직접 군을 지휘해 연전연승을 거두며 로마 역사상 최강급 인물인 폼페이우스마저 격파했고, 정치 능력 또한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갈리아 전쟁기를 지금도 서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 수수께끼에 싸인 남자, '후원(메세나)'의 어원! 황제의 왼팔 가이우스 마에케나스 이야기

    기업 채용 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인 메세나 활동의 어원은 바로 이번 글의 주인공인 가이우스 마에케나스(Gaius Maecenas)입니다.마에케나스(Maecenas)를 프랑스어로 읽으면 메세나(Mécène)가 되며, 여기서 문화·예술을 후원한다는 뜻의 일반 명사로 굳어졌습니다.메세나 활동이란 기업이 문화·예술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투자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에케나스가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 같은 당대 최고의 시인들을 보호했던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황제의 왼팔군사와 정치 분야에서 활약한 아그리파가 황제의 오른팔이

  • 로마 제국의 시작, 프린시파테(원수정) 완전 해설! '카이사르'는 어떻게 황제의 이름이 되었나?

    로마 제국은 크게 두 시대로 구분됩니다.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연 프린시파테(원수정) 시대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개창한 도미나테(군주정) 시대입니다. 이번 글의 주제인 프린시파테, 즉 제1기 로마 제국을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프린시파테 자체가 일종의 장대한 속임수였기 때문입니다.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교묘하게 보여준 하나의 환상이었던 셈입니다. 앞서 동양과 서양의 황제 개념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동양의 황제 개념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시작한 도미나테에 가깝고, 프린시파테는 어느 의

  • 로마 전제정(도미나투스)이란? 프린키파투스와의 비교로 보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대개혁

    프린키파투스의 한계와 도미나투스의 등장 군인황제 시대가 지나면서 프린키파투스(원수정) 체제를 유지하기는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로마 평화(Pax Romana)의 시대는 저물었고, 영토 곳곳에서 해적과 산적, 강도들이 들끓었으며 황제들은 원로원, 병사들, 그리고 근위대에 의해 하나둘 살해당했습니다. 바로 이런 혼란의 시대에 등장한 인물이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입니다. 그는 로마 제국의 상황을 두고 볼 때 전통적인 프린키파투스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국가원수라는 지위에서 전제군주로의 대전환을 단행했습니다. 원로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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