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유럽의 역사

  • 35년 전 한마디 용기가 그를 카틴 학살의 죽음에서 구해냈다!

    용기는 결국 배신하지 않는다 – 예지 볼코비츠키의 생존 이야기용기에는 대가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폴란드 장교 예지 볼코비츠키(Jerzy Wołkowicki)의 인생은 정반대였습니다. 젊은 시절 내뱉은 단 몇마디의 말이 35년 후, 그를 카틴 학살의 비극에서 구해냈으니까요.쓰시마 해전, 그리고 홀로 남은 반대표많은 폴란드인들과 마찬가지로 볼코비츠키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해군사관학교(1901~1904)에서 교육을 받고 장교 계급을 받았습니다. 그의 첫 실전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시작될 예정이었습니다. 수개월에 걸친 원항 끝에 그가 복무하

  • 『로마 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의 생애

    로마사 연구의 양대 거장, 에드워드 기번후대 로마사 연구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학자는 독일의 테오도어 몸젠과 영국의 에드워드 기번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작 『로마 제국 쇠망사』를 남긴 에드워드 기번의 생애를 짚어보고자 합니다.불운했던 어린 시절기번은 1737년 잉글랜드 햄프셔의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에게는 다섯 명의 남동생과 한 명의 여동생이 있었지만, 무사히 자란 사람은 기번 하나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1720년 남해 거품 사건으로 재산을 잃었으나, 이후 가문은 성공적으로 회복되었고 기번의 아버지는 상속을 물

  • 잉글랜드의 초석을 놓다: 알프레드 대왕의 위대한 업적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자랑했던 나라가 어디인지 아시나요?정답은 바로 대영제국입니다. 우리는 대영제국의 공용어였던 영어를 의무교육 과정에서 배웠고, 영국식 의회 제도 또한 받아들여 왔습니다.그러나 정작 중세 이전 영국의 역사는 교육 과정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1066년 노르만 정복부터 본격적인 영국사가 시작된 것처럼 소개되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보다 앞선 시대를 살린 인물, 바로 알프레드 대왕(Alfred the Great)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앵글로색슨 7왕국 시대로마 제국이

  • 잉글랜드 최초의 왕 애설스탄, 일본에서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영국의 정식 국명은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라는 무척 긴 이름입니다. 영국은 미국을 USA라고 부르듯 UK라는 약칭으로 널리 불리고 있으며, 정식 국명이 사용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영국 축구 대표팀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영국은 여러 나라가 모여 이룬 연합 국가입니다. 일본인에게는 다소 낯선 개념이지만, 인체가 무수한 세포로 이루어진 하나의 몸인 것에 비유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

  • 북해 제국의 왕! 잉글랜드 데인 왕조의 창시자 크누트(Knut)

    대알프레드(Alfred the Great)가 기반을 다지고, 애설스탄(Æthelstan)이 왕국을 세웠으며, 에드거(Edgar)가 잉글랜드를 통일했습니다. 그러나 에드거가 암살당한 뒤 왕위에 오른 것이 바로 훗날 무계획왕(Unready)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애설레드(Æthelred)였습니다.별명 그대로 그는 분별력이 부족했고, 현자 회의(Witan)의 의견도 소홀히 여기면서 귀족들과의 갈등은 점차 깊어져 갔습니다.이 틈을 타고 데인인(덴마크인)들이 다시 잉글랜드를 침공하자, 애설레드는 노르망디 공작 리처드의 누이 엠마(Emma)

  •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지은 왕, 참회왕 에드워드와 노르만 정복의 서막

    데인 왕조의 시조 크누트 대왕이 세상을 떠나자, 잉글랜드에는 왕위 계승 문제가 불거졌습니다.크누트와 노르망디 공작의 딸 엠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하르다크누트가 잉글랜드의 왕위에 올랐지만, 재위 불과 2년 만에 요절하면서 데인 왕조는 3대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그 뒤를 이어 훗날 참회왕(Confessor)이라 불리게 되는 에드워드가 등장합니다.에드워드는 무준비왕이라 불린 앵글로색슨 왕 에델레드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형제 알프레드가 있었는데, 잉글랜드 최대 실력자인 웨식스 백작 고드윈에게 살해당했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고

  • 라이언하트 리처드 1세, 잉글랜드의 사자심왕 이야기

    지금은 해체된 SMAP의 명곡 라이언 하트(Lion Heart)가 발매되었을 당시 대형 광고로 대대적으로 홍보되었기에, 일본에서는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를 아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영국 역대 국왕 중에서도 손꼽히는 무력을 자랑하며 사자심왕(라이언하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플랜태저넷 왕조의 두 번째 왕, 리처드 1세의 생애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플랜태저넷 왕조의 두 번째 왕리처드 1세는 플랜태저넷 왕조의 개창자 헨리 2세와 그의 아내 엘레오노르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헨리 2세와 엘레오노르 사이에는 무려 여덟 명의 자녀가 있었으며,

  • 나폴레옹의 패배를 부른 바다의 결전! 넬슨 제독이 활약한 트라팔가 해전 쉽게 이해하기

    세계사에는 수많은 영웅이 등장합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번개처럼 나타나 유럽을 휩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세계사를 대표하는 영웅 중 한 명입니다.그리고 또 한 사람, 영국 왕립해군의 넬슨 제독 역시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영웅입니다.최강 대 최강, 천재와 천재의 대결천재와 천재의 대결은 고대 로마의 한니발과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대결 이후로 세계사의 화두였습니다. 그리고 19세기 초, 나폴레옹과 넬슨이라는 두 영웅이 드디어 바다에서 격돌합니다.이미 한번 격돌했던 두 사람나폴레옹과 넬슨의 대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두

  • 전형적인 캐리비안 해적! 기사 작위까지 받은 사략선단 사령관 헨리 모건

    부커니어: 카리브해의 해적들부커니어(Buccaneer)라고 불리는 해적들이 있었습니다.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에 걸쳐 영국의 묵인 아래 스페인 선박을 공격한 이들은 카리브해의 해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나라로부터 공인받은 해적이라는 의미에서 사략선(privateer)이라고도 불립니다.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단연 17세기 카리브해를 휩쓴 헨리 모건(Henry Morgan)입니다.카리브해의 해적1635년 잉글랜드 웨일스에서 태어난 모건은 카리브해의 바베이도스로 건너가 5년간 플랜테이션 노동을 한 뒤, 자메이카로 가서 해적 생활

  • 『보물섬』부터 『원피스』까지, 해적 캡틴 윌리엄 키드의 실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이나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벌레』처럼 해적이 숨겨둔 보물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 시초는 바로 캡틴 키드의 보물 전설입니다.시대의 파도에 휘둘린 사나이, 캡틴 키드윌리엄 키드(William Kidd), 흔히 캡틴 키드로 불리는 그는 1640년대 스코틀랜드의 항구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우리는 흔히 영국을 하나의 나라로 생각하지만, 실은 여러 지역이 하나로 묶인 연합 왕국이며, 특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왔습니다.종교 문제가 특히 컸습니다. 성공회를 중심으로 한

  • 사략선(私掠船) — 원피스 '칠무해'의 모티브가 된, 대영제국을 키운 국가 공인 해적

    세계사 속 영국사가 특히 독특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16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존재했던 사략선(私掠船)이라는 제도 때문일 것입니다. 국가가 해적을 보호하는 방식 해적의 존재는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왜구가 큰 문제가 되었고, 로마 제국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베네치아와 제노바 역시 지중해 무역에서 해적에게 시달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아덴만 해역에서 해적이 큰 골칫거리가 되었으며, 미국 건국 초기에도 바르바리 전쟁이라 불리는 해적과의 전쟁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

  • 시대의 격동 속을 살아간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

    잉글랜드 튜더 왕조의 마지막 군주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잉글랜드의 왕위는 스튜어트 가문으로 넘어갔고, 이로써 잉글랜드에 스튜어트 왕조가 열리게 됩니다.스튜어트 왕조의 초대 국왕은 제임스 1세였지만, 사실 그의 어머니인 메리 스튜어트는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처형당한 비운의 인물이었습니다.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태어나다영국 역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본래 별개의 왕국이었다는 사실을 쉽게 잊곤 합니다. 혹은 아예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고대 로마 시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브리튼 섬에 장

  • 잉글랜드 스튜어트 왕조의 초대 국왕, 제임스 1세

    튜더 왕조의 끝, 그리고 스튜어트 왕조의 시작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 결혼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로써 튜더 왕조는 그녀와 함께 막을 내렸고, 튜더 왕조의 시조 헨리 7세의 혈통을 잇던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새롭게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로 즉위하게 됩니다.오늘날 우리는 흔히 잉글랜드라는 이름으로 두 나라를 하나로 묶어 부르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본격적으로 합병된 것은 17세기 전반의 일입니다. 제임스 1세가 즉위하던 당시에는 여전히 별개의 나라였습니다.따라서 이 시기를 단순히 잉글랜드라고 부르기보다는 잉글랜드–

  • 삼국 전쟁을 일으키고 결국 처형당한 잉글랜드의 찰스 1세

    세계사의 수많은 사건 가운데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오르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그 몇 안 되는 예외 중 하나가 바로 찰스 1세 시대에 일어난 청교도 혁명이다.이번 글에서는 청교도 혁명 도중 처형대에 오른 비운의 군주, 찰스 1세의 생애를 살펴보고자 한다.아버지 제임스 1세와 정반대였던 소년찰스 1세는 1600년, 스튜어트 왕조 잉글랜드의 초대 국왕인 제임스 1세의 아들로 태어났다.찰스에게는 원래 왕세자였던 형이 있었지만, 1612년 형이 천연두로 요절하면서 찰스가 차기 왕으로 확정되었다.찰스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며 훌륭하게 성장

  • '게으른 왕'으로 불린 잉글랜드의 찰스 2세, 왕정 복고의 시대

    삼왕국 전쟁(잉글랜드 내전)이 끝난 뒤, 잉글랜드에서는 왕정이 다시 부활했습니다.복위된 인물은 찰스 1세의 아들이자,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의 여동생 앙리에타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찰스였습니다. 그는 즉위하며 찰스 2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왕정 복고와 브레다 선언1660년,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찰스 2세는 귀국과 동시에 브레다 선언(Declaration of Breda)을 발표했습니다.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혁명에 가담한 사람들에 대한 대사(宥赦)종교의 자유 보장혁명 기간 중 소유권이 이전된 토지의 현

  • 나치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한 천재, 앨런 튜링의 기묘한 운명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의 주인공 모델이 된 앨런 튜링(Alan Turing)은 나치 독일의 암호 에니그마(Enigma) 해독에 성공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ASD 천재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앨런 튜링은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그는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인 학생이었지만, 고전(클래식) 과목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뉴턴도 다녔던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의 장학금은 받지 못했고, 대신 같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킹스 칼리지에 입학하

  • 세기의 사랑! 왕관보다 여자를 택한 영국의 에드워드 8세

    영국 역사에는 왕위에서 물러난 국왕이 여럿 있습니다. 그중 세 명은 음모에 의해 왕좌에서 쫓겨났지만, 오직 스스로의 의지로 왕관을 내려놓은 유일한 인물이 바로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에드워드 8세입니다.그가 퇴위한 이유는 단 하나, 사랑이었습니다.왕좌를 건 사랑. 글로 적으면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실제 상황은 과연 어땠을까요?내가 죽으면 저 아이는 곧 망할 것이다에드워드 8세는 1894년, 조지 5세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한마디로 타고난 국왕입니다.당시 영국에는 빅토리아 여왕이 아직 생존해 있었고, 잉글랜드 국왕은 동시에 인도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의 왕, 영국 조지 6세의 생애

    경마 세계에는 킹 조지 6세 & 퀸 엘리자베스 스테이크스(King George VI & Queen Elizabeth Stakes)라는 레이스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Prix de lArc de Triomphe와 함께 세계 최고 권위의 경주로 꼽히는 이 대회에는 전 세계의 명마들이 명예를 걸고 출전합니다.일본 경마인들의 오랜 숙원이기도 한 이 레이스에서 일본산 말은 아직 우승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빅 레이스의 이름은 바로 영국 국왕 조지 6세에게서 유래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선천적으로 말더듬이 있었고, 장남이 아닌 차남이

  • 영국 역사의 전환점, 성공회를 창시한 왕 헨리 8세

    모든 나라의 역사에는 전환점이 되는 인물과 시대가 존재합니다. 영국 역사에서 그러한 전환점을 꼽으라면 단연 헨리 8세(Henry VIII)의 시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결별하고 잉글랜드 국교회(성공회)를 세움으로써 영국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 놓은 인물입니다.르네상스 시대의 젊은 왕1491년, 헨리 8세는 튜더 왕조의 헨리 7세와 왕비 엘리자베스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원래 왕위는 형 아서가 물려받을 예정이었고, 실제로 아서는 왕세자로 책봉되어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이 되었습니다.

  • 나폴레옹도 결코 이길 수 없었던 남자! 세계 역사상 최강의 제독,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육군 최고의 지휘관은 누구일까요?이것은 논쟁이 꽤 치열한 질문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육전이 주를 이루었고 무적에 가까운 지휘관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에 최강을 가리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그렇다면 해군 최고의 지휘관은 누구일까요?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연코, 나폴레옹조차 한 번도 이겨 보지 못한 제독 호레이쇼 넬슨일 것입니다.역사상 최강의 제독육군 지휘관을 흔히 장군(General)이라 부르듯, 해군 지휘관은 제독(Admiral)이라 불립니다.훗날 역사에 이름을 남긴 호레이쇼 넬슨은 1758년 잉글랜드 동부 노퍽에서 목사 집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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